KBS 보도본부 간부들이 "천안함 3주기 특집뉴스를 왜 이렇게 많이 다루느냐?"는 KBS 기자협회장의 지적에 '편집권 침해'라며 연대성명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 3월 26일 KBS <뉴스9>의 '천안함 피격 3년 특집 오프닝' 방송화면 캡처

KBS <뉴스9>은 천안함 3주기를 맞은 지난달 26일 방송 세트를 아예 군부대 내로 옮겨 특집 방송을 진행했다. '천안함 피격 3년 특집 오프닝'을 시작으로 당일 천안함 관련 리포트는 <"제2의 천안함 피격은 없다"…서해 기동 훈련> <북 "천안함 날조극" 되풀이…국가급 군사훈련> <천안함 이후 북 도발 양태 다변화…의도는> 등 총 12개 방송됐다.

당일 전체뉴스(스포츠 뉴스 포함)의 3분의 1에 달하는 양이며, 천안함 1주기(5꼭지)와 2주기(3꼭지) 당시와 비교할 때 과도하다는 지적이 KBS 내부에서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함철 KBS 기자협회장은 당일 오전 편집회의에 참석해 "천안함 3주기 특집뉴스를 왜 이렇게 많이 다루느냐?"고 문제제기를 했고, KBS 보도본부 국장ㆍ부장단 일동은 1일 연대 성명을 통해 "편집권 침해는 용납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KBS 보도본부 간부들이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발언을 문제삼아 연대 성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1년 제정된 KBS편성규약에 따라, 기자협회장은 제작 실무자 대표의 자격으로 일일 편집회의에 참석해 공식적으로 의견을 제기할 수 있으며 취재 및 제작 책임자는 실무자와 성실하게 협의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보도본부 국장ㆍ부장단 일동은 성명에서 "보도위원회 운영세칙상의 '편집회의 참석'을 빌미로 9시뉴스 편집에 간섭하려는 기자협회장의 시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며 "기자협회장이 편집회의에서 뉴스기획과 편집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편집권의 침해 정도가 아니라 초법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보도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으면 방송 후에 정해진 절차를 밟아 논의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면 되는 것이지 사전에 방향을 제시하고 간섭하려는 듯한 언동을 하는 것은 방송법이 보장한 편집권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보도 및 편집에 관한 책임을 지고 있거나 그로부터 위임받은 책임자 외에 어떤 내, 외부도 특히 공영방송 수탁원리의 최상위 개념인 편집권의 독립을 침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차제에 헌법과 방송법 정신에 비춰 편집권 침해요소를 안고 있거나 과도하게 도입된 불합리한 규정들을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는 데 국ㆍ부장들이 의견을 모으고 이를 보도본부장에게 요청하기로 했다"며 "협회장은 독단의 언동이나 소수 기자들의 목소리만 반영해 기자사회를 분열시킨다거나 해사행위 내지 정파적 행동에 부화뇌동하는 일을 이제는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회장은 이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며 "기자들의 권익과 취재 제작환경 개선, 회원 간의 친목도모, 보다 나은 KBS뉴스를 만들기 위한 기자들의 역량강화 방안 강구, 지원 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함철 KBS 기자협회장은 국ㆍ부장단 일동의 성명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함철 회장은 천안함 보도와 관련해 "리포트 숫자가 과도했고, 내용면에서도 굉장히 호전적이었다. 공영방송 뉴스라면 냉철하게 가야 하는데, 굉장히 흥분된 보도가 주를 이뤘다"며 "이에 대해서 편집회의에서 문제제기를 했을 뿐인데 '편집권 침해'라고 하니 황당하다"고 전했다.

국ㆍ부장단 일동이 이화섭 보도본부장에게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참석 관련 규정의 개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노사합의 사항이기 때문에 회사가 바꾸고 싶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바꿀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KBS 새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역시 2일 성명을 내어 "몇몇 수뇌 간부들이 무소불위의 편집권을 행사하겠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방송법을 위반한 것이다. 가히 쿠데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새 노조는 "보도 수뇌부의 이번 행위를 편성규약을 위반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기자협회장이 보도국 일일 편집회의에 들어가는 것은 편성규약이 보장하는 제작실무자의 정당한 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를 방해하는 것은 편성규약 제정의 한 당사자인 노동조합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새 노조는 2003년 편성규약이 개정될 당시 사측 간사가 길환영 KBS 사장(당시 제작본부 주간)이었음을 밝히며, "'지난해 대선보도가 불공정했다'는 평가가 나온 상황에서 이를 반성하고 자숙해야 할 수뇌부들이 오히려 위법적인 주장을 하면서 제작자율성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것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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