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4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병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예비후보가 28일 오후 서울 상계동의 한 식당에서 취재진들과 간담회를 갖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안철수 서울 노원병 예비후보가 어제 상계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기자들이 스스로 밥값을 내야 하는 이색적인 자리였다. 정당 공천을 받았다면 대변인실 홍보비로 쓸 수 있었겠으나 그가 무소속이기 때문에 향응 접대 등 선거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 ‘더치 페이’를 했다.

안후보는 간담회에서 “여야가 경제와 안보분야에 대해 초당적으로 협력을 구축해야 한다”며 ‘대선공약실천여야합의체’ 구성을 제의했다. 박근혜 정부 내각의 거듭된 인사 실패에 대해서도 “소통부재나 밀실인사의 결과라는 언론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가 내세운 ‘새 정치’란 구호에 대해서는 “새 정치는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며 “서민과 중산층의 목소리를 대신 내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새 정치”라고 강조했다. 이번 재보궐 선거의 의미는 “국민과 함께 정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며 설명하면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치를 했다면 실수를 많이 할 뻔 했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선 “이번 선거에서 또다시 단일화를 앞세운다면 정치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잘 담아내기 힘들 수 있다”며 “굳건한 생각은 새 정치 기치를 앞세우고 정면승부하고 싶다”라며 선을 그었다.

안철수 후보의 발언을 분석하면 새 정부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새 정치’의 내용을 지난 대선 당시의 정치쇄신안을 넘어서 ‘서민과 중산층의 목소리를 대신 내는 민생정치’라는 사회경제적 문제의 직면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당 중심의 야권연대에 휩쓸려 들어가는 단일화 논의에는 경계심을 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분명히 지난 대선 당시의 행보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귀국 비행기에서 굳이 최장집 교수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을 읽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다만 안후보도 “저도 지금은 말로 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듯이 그 새 정치 내용의 각론까지는 아직 제출하지 못한 상황이다.

또 지역선거에서 이와 같은 중앙이슈를 말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는 대목이다. 비록 중앙이슈에 많은 영향을 받는 수도권의 선거이긴 하지만, 다른 후보들은 지역공약으로 대응할 것이기에 상대적 경쟁력에서 뒤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안후보는 ‘낮은 정치’를 표방하며 한 명의 유권자라도 더 만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안후보의 출마선언에 “부산 영도로 갔다면 더 좋지 않았겠나”라고 반응하기도 했지만, 안후보의 생각의 흐름을 좇는다면 그의 ‘새 정치’는 수도권에서 먼저 시도해보는 것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지난 대선 ‘안철수 현상’의 양대 축은 기존의 정치구도에 싫증을 느낀 수도권 청장년층과 ‘반노’ 성향의 호남 유권자들이었다.

즉 ‘안철수 현상’이 아직까지 유효한지, 그것에 안 후보가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을지를 시험해보려면 수도권에서 다시 한번 시작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부산 영도에나 가지”라는 이죽거림은 “PK를 공략해야 지역주의 넘어설 수 있다”는 민주당의 지역주의 타파 전략을 안후보에게 강요한 것에 불과하다.

또 안 후보는 부산 영도가 아니라 노원병에서 출마했기 때문에 단일화 논의에 선을 그을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안 후보가 각론 부족과 여전한 애매모호함으로 폭발적인 지지율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자구도 자체가 극복할 수 없는 결정적 장애요인은 아니라는 사실도 여론조사에서 드러난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안철수 후보와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가 출마한 3자구도에서나 통합진보당 정태흥 후보까지 출마한 4자구도에서나 민주당 주자였던 이동섭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5자구도에서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를 살피면 이동섭 후보까지 출마할 경우에도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을 뺏어가는 것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정태흥 후보의 지지율을 뺏어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4.24 재보선을 계기로 정치행보를 재개한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문 의원은 민주당의 선거는 물론 ‘대선 때 빚이 있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할 용의가 있으며 당과 논의해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무공천에만 머물 뿐 안 후보를 돕기 위해선 야권 단일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 의원이 민주당의 입장과 별개로 활동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더구나 문 의원의 지원 유세가 안후보의 정치적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미소짓고 있다. 문의원은 4.24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정치행보를 재개하며 안철수 후보를 돕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뉴스1

여러모로 따져볼 때 안철수 후보는 다자구도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록 지난 대선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그의 현재 지지율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다자구도에서 어떻게든 승리하여 원내 입성을 한다면 그것은 또 한 번의 돌풍을 만들어낼 여지가 있다.

앞선 기사에서도 지적했듯 진보정의당과 안철수 후보 사이에 ‘정치적 거래’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거는 최소한 3자구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4자구도나 5자구도도 가능할 것이다. 만약 이렇게 여권 후보 1인과 야권 후보들이 난립한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승리한다면 ‘반새누리 비민주’의 정서를 가진 유권자들을 또 한번 규합하는 결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여기서 그가 낙선할 경우 민주당이 무공천한 상황에서 그가 제대로 된 정치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정치적으로 재기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가능하다. 그런 경우엔 단일화 논의를 회피한 것조차 정치력 부재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약간의 지지율 변동이 선거 이후의 정국을 극과 극으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정치인 안철수’의 성공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

▲ 오늘자 조선일보 5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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