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교수는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화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라고 글머리에서 말했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고 있고, 인터넷에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세상이 왔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이런 세상에 왜 지구한쪽에서는 스님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에 나섰을까?

다른 나라들도 이런 고민을 하는 모양이다. 10월 8일 EBS <다큐-10> '왜 민주주의인가' 중국편도 이런 결과물 중의 하나다.

이날 방송된 다큐는 제목을 이해하는게 중요하다. 우선 '왜 민주주의인가'는 스텝스 인터내셔널에서 제작한 총 10편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전 세계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과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 세계 43개 공영방송사들이 동시에 방송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고 EBS는 10편 가운데 5편을 선정해 <다큐-10> 시간에 방송하는 중이다.

방송이 시작되면 또 다른 제목이 나온다. '세계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을 것인가?'이며 '초등학교 반장 선거'라는 제목이 후에 이어진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다. '왜 민주주의인가' 시리즈는 다음과 같은 10가지 질문이 프로그램을 만든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질문은 ▲신은 민주적인가? ▲ 여성이 남성보다 민주적인가?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 ▲독재자도 이로울 수 있는가?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테러리즘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득이 되는가? ▲왜 꼭 투표해야 하는가? ▲ 정치가들이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을까?이다.

즉 8일 방송편은 '세계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다.

이제 방송얘기다. 제작진은 중국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투표에 대한 의미를 물었다. 학생들은 모두 모른다고 답했다. 아직 한번도 선거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면은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반장을 선출하는 교실로 돌아간다. 제작진은 이후 한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카메라를 교실과 반장선거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만 고정시켰다. 나레이션이 끝까지 한번도 없었다.

반장선거에는 세명이 나왔다. 이들은 개성이 뚜렸했다. 루오레이는 2년 동안 반장을 했던 경험이 있어 경쟁력이 강했다. 대신 친구들에게 폭력을 쓴다. 쳉쳉은 엄마와 아빠가 적극적으로 선거를 돕고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샤오페이가 제일 밀리긴한다. 혼자 여자인데다가 엄마는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어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마음이 약한 편이다.

선거에 나온 세명은 물론이고 같은반 학생들은 생전 처음하는 경험들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샤오페이가 가장 먼저 울었다. 연설을 시작하자 친구들이 밥을 늦게 먹는다고 놀리기 시작했다. 말을 잇지 못하더니 결국 눈물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는 반학생들의 마음도 편치않다. 한두명이 따라 울더니 반전체가 거의 울어버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쳉쳉은 처음에는 잘나갔다. 친구들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부모는 관중을 휘어잡는 연설을 하는 법까지 가르쳐줬다. 그러다가 쳉쳉은 그를 돕던 조수가 자신을 배신하는 아픔을 겪는다.

루오레이는 친구들을 때리는 습관이 있어 약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화술이 뛰어났다. 후보간 1:1 대화에서도 기죽지 않고 상대방과 대결했다. 투표일에는 반전체에게 선물을 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결과는? 루오레이였다. 하지만 누가 반장이 됐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제작진이 던진 질문, '세계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만든다. 이들의 선거과정에는 어른들의 세상과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반 전체를 사랑하고 학급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지만 진심은 아닌듯했다. 누군가 써준 글들이라 심지어 외우지도 못했다. 이들의 진심은 '반장이 되고 싶다'는 마음하나 뿐이었다.

서로를 비방하고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광경이 나왔다. 쳉쳉과 루오레이는 남자화장실 안에서도 신경전을 벌인다. 루오레이는 금권선거를 했으나 이는 부모의 아이디어였다. 아들이 선거에 불리할 것 같자 미리 선물을 준비해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루오레이도, 반친구들도 저항하지 않았다. 교사가 이를 저지하는 반전도 없었다. 선거 후의 모습도 비슷했다. 루오레이는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고, 패자들은 서럽게 운다. 결과나 나온후 서로들 악수와 포옹을 나눴지만 각자 다른 마음이었다.

아이들은 선거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루오레이는 과연 반장을에 적합한 인물이었을까? 만약 괜찮은 인물이라면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불법행위는 용서될 수 있을까?

강한 카리스마로 반을 휘어잡는 루오레이, 심약하고 자라는 환경도 나쁜 대신 약한 친구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것 같은 샤오페이, 뛰어난 부모 덕분에 아무것도 부족해 보이는 것 없는 쳉쳉 중 누구일까? 어른들이라면 누구를 선택할까?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대통령을 선택할까?

아이들이 어른들은 왜 지금의 대통령을 선택했냐고, 앞으로는 어떤 대통령를 뽑을 것이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까?

앞서 말했듯이, 제작진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수십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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