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사건이 아니라 오수와 오영 두 사람의 감정을 작은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고 쫓아왔던 터였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벌써 2회만 남겨두고 있지만 이제 와서 새삼 이 드라마의 결말이 크게 궁금하지 않은 것은 흥미롭다. 드라마의 결말 따위 작가에게 맡기려는 착한 시청자가 된 것만 같다. 그게 아니면 어떤 결말이든 이 드라마가 끝나간다는 사실보다 더 슬플 수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묘하게도 <그 겨울>은 여느 드라마들처럼 독한 소재들이 널려있는데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을 정화시킨다. 오영과 오수가 딱 그렇다. 오영은 오수에게 용서를 마지막으로 선물했다. 그런 오영에게 오수는 진심을 남기고 떠났다. 특별한 이별의 모습도 아니지만 오수와 오영 아니 조인성과 송혜교이기에 특별해질 수 있다. 아픈데도 막 아프기만 하지 않고, 덤덤한 척 하는데 결코 그럴 수 없는 이별의 자세를 연출했다. 그렇게 내내 이별의 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 막아뒀던 어딘가가 풀려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게 <그 겨울>이 부리는 마법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오영은 짐을 챙겨 떠나는 오수에게 “사랑했어” “너의 거짓은 무죄야”라는 두 마디를 건넸다. 물론 오영이 자기 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은 것은 아니다. “옆에 두고 사랑할 수는 없지만”은 진심이 아니다. 옆에 두고 사랑하고 싶다는 반어법이다. 그럼에도 오수를 보내는 것은 용서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용서하지 못해서가 아니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닌 이별을 오영은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명호와 파혼하면서도 회사는 맡기고, 왕비서에게도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고 회사 지분도 그대로 주면서 집은 떠나게 하는 것처럼 오영은 오수를 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은 것 같았다. 오영이 그렇게 자기 주변을 정리하는 이유는 수술을 받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사막이 우물을 숨기고 있어 아름답다면 오영은 눈물을 숨기고 있어 아름답고 슬픈 정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영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쫓아냈다. 그러고도 울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더 쓸쓸하게 비친 것은 오수와 함께 봤던 영화 <봄날은 간다>를 혼자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이었다. 아무도 없으니 눈물을 흘릴 만도 한데 오영은 거꾸로 어쩌면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사랑의 기억을 슬프게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그런데 이별이란 손에 박힌 가시처럼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콕하고 아린 순간이 아픈 법이다. 오영과 오수 두 사람은 그렇게 뜻 모를 순간에 서로를 떠올리게 된다. 오수는 택시를 잡기 위해서 팔을 흔들다 차마 들을 수 없었던 종소리에 가슴이 아려진다. 오영은 잠들기 전에 창문을 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듣는다.

오수와 오영 같은 사랑은 해본 적 없어도 그렇게 사소한 것 때문에 이별이 아파졌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오수와 오영이 거창하지 않게 아파하는 모습은 오히려 이별의 진정성이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다. 풍경소리와 종소리가 어떤 복선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서로 가슴에 박힌 가시처럼 아파하는 모습은 새삼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시청자로 하여금 충분히 아프게 한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 겨울>의 OST보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더 어울렸다. 겨울이 다 지나고 봄이 지척에 다가온 즈음의 <그 겨울>은 넌지시 연애를 권하는 것 같다. <그 겨울>이 끝나면 진짜로 애인과 헤어진 것처럼 밤이 쓸쓸해질 것이 틀림없다. 믿고 싶지 않지만 분명 그럴 것이다. <그 겨울>의 마법에 한동안 헤어나지 못하겠지만 고통이 아니라 치유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정화가 될 것이다. 한국 드라마에 문학이 죽었다는 말은 당분간 하지 못하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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