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현대 스포츠와 미디어의 관계는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스포츠는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보는 것이다. 스포츠의 매력은 동적 다이내믹함에도 있지만, 정적 집중력을 발휘하는 순간에도 작렬한다. 모든 스포츠 가운데 야구는 미디어와 가장 먼저 ‘거래’한 스포츠이다. 야구의 중계역사는 무려 189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웨스턴 유니언이 야구 경기 상황을 술집 등에 전송(전신 중계)해주는 권한을 갖는 대가로 내셔날리그에 돈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세기의 일이었다. 당시, 일부 구단들은 경기내용을 생중계 할 경우 팬들이 야구장에 오지 않을 것이라 심각하게 우려했었다고 하는데, 이런 우려는 완벽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야구는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급성장했고, 1939년 야구의 텔레비전 중계 시대가 열렸다. (참고로 국내 스포츠 중계의 역사도 역시 야구로부터 시작된다. 1928년 8월 전국 중등학교 조선야구 예선전이 최초로 라디오 중계되었다고 한다.)

2013 프로야구가 개막을 앞두고 있다. 700만 관중을 돌파한 기세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초유의 9구단 체제가 흥미를 돋우고 있다. 700만 관중의 돌파 이유는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역시 지난 2008년 프로야구 전 경기가 스포츠전문 채널을 통해 생중계 된 이후 야구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증폭되어왔단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프로야구는 현재 국내 미디어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중문화 장르 가운데 하나이다. 야구는 6개월간 이어지는 가장 지속적인 콘텐츠인 동시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가장 변화무쌍한 드라마이다. 2013 프로야구 시즌을 맞아 <미디어스>가 떨리는 가슴으로 3회에 걸쳐 시즌을 논한다.

① 동병상련의 3강, 우승의 키워드 ‘불펜’
② 1위보다 치열할 4위, 9위 경쟁
③ 2013 프로야구를 보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올 시즌 프로야구의 판도를 ‘3강 3중 3약’으로 구분하고 있다. 기아, 삼성, 두산이 3강이고 SK, 롯데, 넥센이 3중, 엘지, 한화, NC가 3약에 속한다. 그러나 시즌 전 예측은 재미를 위한 전망, 논의의 확장을 위한 클리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아가 시범경기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이긴 했지만, 시범경기 1위 팀이 정규리그 1위를 한다는 보장은 없고 예고편은 어디까지나 본편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삼성이 시범경기에서 부진했다고 한들 올 시즌 삼성을 하위권으로 구분한다면 ‘어서와, 야구는 올해가 처음이지’란 고백의 다름 아닐 것이다. 두산 역시 매해 우승권으로 분류되는 팀이고 올 시즌은 전력의 완성도가 높다고 하지만 끝내 우승은 늘 하지 못하는 뭔가 부족한 팀 컬러를 갖고 있다.

우승을 위해 중요한 것은 전력의 완성도이다. 우승권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선발과 타선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단 말과 같다. 삼성, 기아, 두산은 각각 각기 다른 강점이 있고, 압도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페넌트레이스는 긴 승부이고, 우승을 가로막는 궁극의 장벽은 타 팀과의 경쟁이 아닌 스스로의 약점을 어느 정도로 관리하느냐의 여부에서 갈린다. 각 구단이 어느 정도 평준화를 이룬 이후 이른바 ‘맞춤형 전술’이라고 하는 약점을 집중 공략하는 전술이 매우 익숙한 것이 된 상황에서 우승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약점을 최소화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올 시즌 재밌는 점은 3강으로 분류된 팀이 모두 같은 약점을 앉고 있단 것이다. 3팀 모두 6회 이후가 문제, 그러니까 불펜이 불안하다. 리그 최고의 불펜으로 2연패를 이뤄낸 삼성은 '여전히 리그 최강'이란 평가 속에 아닌척하지만 올 시즌 완전히 다른 불펜 구성을 갖췄다. 기아의 불펜 불안증은 수년 째 아예 고질적인 것인데, 올 시즌 역시 의문점이 찍혀 있다. 부상 선수의 복귀 등으로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는 두산이지만 우승을 위해선 초보 마무리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 등 반드시 불펜의 안정화를 이뤄야 한단 숙제를 안고 있다.

빈자리 커 보이는 삼성 불펜, 새로운 체제는 성립될 것인가?

▲ 삼성이 3연패를 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안지만의 활약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스1

삼성 불펜의 약화는 역시 안지만-권오준-정현욱으로 이어지던 강건한 체제의 붕괴이다. 안지만은 수술 이후 회복 중이고, 권오준은 올 시즌에는 기약이 없다. 정현욱은 아시다시피 LG로 떠났다. 워낙 빈자리가 크기에 류중일 감독은 역설적으로 “작년에도 정현욱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며 “좋은 투수가 많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여전히 롯데와 함께 리그 최강'이란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은 어디까지나 과거, 호언을 액면가 그대로 믿긴 어려운 상황이다.

기아의 흑역사 시절 ‘소금’ 같은 존재였던 신용운이 트레이드 후 재활에 성공하고, 심창민, 백현정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며 역시 기아에서 데려온 김희걸이 조금 더 완숙해졌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2연패를 할 때와 비교할 때, 지속성과 무게감 그리고 임팩트에서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불펜의 운용은 흡사 컨베이어 벨트와 같아서, 좌-우-사이드암의 조화가 어디라도 끊어지면 제 아무리 최강 마무리가 있다고 한들 원활한 매조지가 어려울 수 있다. 삼성의 셋업 라인이 흔들린다면 어쩌면 올 시즌은 돌부처 같은 오승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대안은 없다. 수성을 위한 삼성 불펜의 관건은 역시, 안지만이다. 안지만은 리그 최강의 셋업맨이란 설명으론 왠지 부족한, 어떤 상황에서도 위기를 매조지할 수 있는 ‘절대 카드’ 가운데 하나이다. 안지만은 인대 수술 후 예상 밖의 빠른 페이스로 시범경기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아직 절정의 구위에는 미치지 못한 모습이다. 구속은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앞선 3년 간 그가 해치운 이닝수를 감안할 때 회복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안지만의 존재감은 삼성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것이었다. 예컨대, 안지만은 지난 시즌 SK와 두산을 상대로 각각 0.167, 0.185의 피안타율을 기록했다. 그가 보통 경기 후반, 위기 상황에서 등판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2, 3위 팀을 상대로 이런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그의 위력을 설명한다. 안지만은 말하자면 작년 시즌 초반 부진하던 삼성이 어떻게 순식간에 1위로 도약했는지, 그 순위 상승의 비밀을 담지한 열쇠였다. 이런 선수는 한 순간에 대체되지 않는다.

삼성은 시즌 초반 불안하더라도 날이 더워지며 치고 올라가는 패턴의 시즌 운용을 우승할 때마다 보여주었다. 그 저력은 역시 안지만을 축으로 하는 불펜의 힘이었다. 올 해 역시 삼성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이 패턴이 재현되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은 작년까지 불펜 운용을 책임졌던 오치아이 코치가 떠났다는 점이다. 새롭게 투수코치를 맡은 김태한 코치가 얼마나 유능함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안지만이 제 궤도를 찾으며 치고 올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삼성에겐 가장 좋은 시나리오이다. 하지만 안지만이 그 안지만이 아닐 경우 장담컨대, 해태 이후 첫 리그 3연패 팀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마무리는 됐는데, ‘동열 매직’은 재현될 것인가?

▲ 오랜만에 제대로 된 마무리 투수를 갖게 된 기아는 타선과 선발의 압도적 힘을 바탕으로 우승에 도전하지만 역시나 해소되지 않는 불펜의 불안함이 문제로 꼽힌다. ⓒ뉴스1

선동열 체제 2년차. 일단, 전에 비해 불펜의 자원은 풍성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게 진짜 보석인지는 아직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벌써, 몇 시즌 째 불펜에 의한 불펜의 ‘울화통’ 야구를 하고 있는 기아는 올 해 박지훈(우)-유동훈(사이드암)-진해수, 박경태(좌)로 이어지는 불펜의 구색을 갖추었다. 추격조 역시 시범경기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인 신인 임준섭을 비롯해 손동욱과 이대환까지 운용에 무리가 없는 수준까지는 올라왔단 평가다. 무엇보다 마무리로 보직 전환한 앤서니 르루가 6경기에서 무실점 행진을 벌이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단 점이 고무적이다.

기아는 리그에서 가장 완벽한 선발진을 지닌 팀이다. 선발이 많은 이닝을 먹고 불펜이 최소 이닝을 먹으며 앤서니가 30세이브를 달성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를 써갈 수 있는 전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박지훈은 아직 리그 정상급 셋업맨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고, 유동훈의 싱커가 다소 진전됐다고는 하지만 ‘휘발유’라고 불리는 그의 전적은 여전히 불안한 것이다. 숙원과도 같았던 좌완 불펜 역시 아직은 기량이 만개하지 않은 두 선수의 잠재력에 의존해야 한단 점에서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다.

기아의 우승은 결국 선발과 타선의 압도적 힘을 바탕으로 불펜에게 얼마나 넉넉한 상황을 자주 물려줄 수 있느냐 그리고 심동섭과 한기주가 돌아오는 여름까지 얼마의 승수를 벌어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기대해 볼 것은 역시 선동열 감독의 운영인데, 선동열이 만든 전성기 삼성 불펜이 처음부터 ‘금강불괴급’ 선수들을 모아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한 해 가을야구를 포기하는 인고의 숙련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올 시즌에는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져봄직 하다. 지난 시즌 가을 야구를 하지 못한 선동열 감독이 결국 기아 불펜의 강도를 어느 정도로 제련했고, 이를 시의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느냐가 ‘어게인 2009’의 관건이다.

▲ 홍상삼은 작년 한 해 가장 주목할 만한 셋업맨이었지만, 마무리 투수로서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수준급 자원들이 있지만, 홍상삼이 흔들릴 경우 두산의 불펜은 '풍요 속 빈곤'의 혼란을 맞을 수 있다.

화수분 야구의 저력, 불펜에서도 꽃피울까?

한 때, 두산은 불펜의 팀이었다. ‘KILL’라인은 2000년대 후반 SK와 두산의 양강 구도를 가능케 한 두산의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그 라인이 붕괴된 이후 두산의 불펜은 우승을 하기엔 부족한, 그리고 강팀의 지위를 이어가기에도 다소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였다. 작년에도 불안했고, 그 전해에도 그랬다.

하지만 ‘뚝심’과 ‘화수분’으로 대변되는 두산의 팀 칼라는 그런 상황을 버티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작년엔 홍상삼이 느닷없이 등장해 ‘슈퍼 세이버’가 됐고 변진수가 등장해 숨통을 틔였다. 그리고 올해는 ‘KILL'라인의 전성기 멤버였던 정재훈과 이재우가 돌아왔다. 김강율은 성장했고, 변진수 역시 까다로운 투수다. 운영 자원과 선수 개개인의 역량만 놓고 보면 두산의 불펜은 오히려 작년에 비해 강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35세이브를 올려줬던 마무리 투수가 떠났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셋업에서 강점을 보이던 홍상삼이 마무리에서도 위용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이 전제가 흔들릴 경우 두산 불펜은 대혼란기를 맞을 수도 있다. 셋업에서 활약을 하다 마무리에서도 정상급의 기록을 남긴 투수는 최근 들어 정우람 정도가 유일한데, 홍상삼의 경우 훈련 합류가 늦었고 시범경기에서도 부진했단 점이 걸린다. 정재훈과 이재우 역시 공백기가 길어 올 시즌을 어떻게 보낼지 낙관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이재우의 경우 3시즌을 쉬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왼손 불펜의 부재다. 수준급 왼손 불펜이 없이 우승을 하긴 쉽지 않다. 올해 두산의 왼손 불펜으로는 김창훈과 이혜천이 가동될 것으로 보이는데, 두 선수 모두 믿음을 주기엔 부족하다. 특히, 팬들 사이에서 ‘혜르노빌’, ‘패신’이라 불리는 이혜천의 부활이 없다면, 두산 불펜은 새로운 마무리 투수와 선수들의 역할이 겹치며 풍요 속 빈곤의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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