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많이 무식했다. (덕분에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경험을 선사 받았지만 말이다.) 국민을 섬기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던 대통령이 당선된 후 태도를 싹 바꿨다. 살림살이 파탄나 안그래도 열 받는데 국민을 섬기지도 않고 직원 부리듯 하니 들고 일어설 수밖에.

게다가 사태 파악 잘 못하고 계속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거나 힘으로 누르려고 했으니. 불난 데 기름 부은 격이다.

세종로 한 복판을 컨테이너로 막아놓을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덕분에 재기발랄한 시위대들만 신났다. MB월드의 명물 명박산성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참이다.

▲ 지난 10일 광화문 네거리를 차단한 컨테이너에 대형 태극기가 내걸리자 시민들이 구경하고 있다. ⓒ서정은
요즘 시위대의 피켓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정부가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졸지에 '바보' 되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분명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는 중대한 사건이다. 광우병 쇠고기라는 지극히 개인과 직결된 문제에서 촉발됐던 촛불 시위는 이제 각종 현안으로 나아간다.

다행히도 촛불은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명박 out'이라는 피켓을 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인파와 함께 밤거리를 행진했을 때는 벅차기도 했다. 광장을 시민들이 '접수' 했을 때도 가슴 벅찼다.

그러나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촛불시위의 동력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 참이다. 그간 취재 현장에서 보았던 대부분의 싸움은 1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예사였고, 그래도 해결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긴 싸움 동안 지쳐가고 떨어져 나가고 좌절하는 이들도 많이 보았다.

▲ 지난 10일 저녁 세종로 네거리에서부터 시청 앞 태평로, 남대문 넘어까지 50만 시민이 함께 촛불을 들었다. ⓒ서정은
미완, 혹은 실패가 주는 상처는 생각보다 크다. 지금의 촛불 정국과 비교되는 68혁명. 모든 억압에 저항했지만 그 에너지가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안으로 수렴되면서 좀더 세련된 억압의 구조를 만들어냈던 것이 아닐까.

5.18민중항쟁은 민주화 운동의 동력이 되었으나 그 같은 열망이 제도 정치권으로 수렴되면서 전두환 노태우는 사면되고 진상 규명조차 되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렀지 않았나. (김대중 정부의 당선은 오히려 광주 사람들의 운신의 폭을 좁힌 결과가 됐다고 본다.)

얼마 전 한 선배와 가진 술자리에서도 촛불이 화제가 됐다.

“촛불 이후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 아마도 현실 정치 내에서 해결이 되겠지. 지금의 틀을 넘어설 수는 없을꺼야. 단순하게 말해서 촛불이 밝혀진다고 비정규직 문제나 신자유주의 모순이 해결되지는 않을꺼야.”

“그래도 현재의 촛불 집회가 갖는 의미는 커. 촛불 집회 이전의 세상과 이후는 분명 다르겠지.”
“조직되지 않은 자발적 대중은 광장을 공유하고 키워나가면 돼. 조직화 된 운동 단위나 소위 전문가 집단은 촛불의 에너지를 일상적 정치적 힘으로 시스템화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겠지. 예컨대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는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 것이고 그것을 광장의 의제로 내놓는 것은 그들의 몫이지 않겠어?”

지금은 어떤 말이나 분석도 촛불 집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 이렇게 생각했는데 내일은 또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지금의 에너지는 어디서 온 것인지. 그리고 이 에너지를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 수많은 목소리들을 어떻게 광장으로 끌어들일 것인지. 촛불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 질문은 다시 내게로 온다. 광장을 추동하고, 그곳의 목소리를 전하고, 분석하고, 제시하는 역할 역시 언론이 해야 할 몫이니 말이다.

지역일간지 <광주드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주드림은 한때 지역 문화잡지 <전라도닷컴>과 한몸이었으나 자본의 문제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법 한 조항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기간행물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문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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