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전 마재윤의 프로필 사진. '좌우명'에 눈길이 간다.

마재윤은 아마 그 별명대로 2007년 2월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이전부터 ‘본좌’였을 것이다. 하지만 양대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고 온게임넷 스타리그엔 진출조차 하지 못했던 탓에, ‘누구나 동의하는 본좌’가 되기까지 그렇게 험난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재윤이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 그가 MSL(MBC게임 스타리그) 최초의 4회 우승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결승전의 상대였던 프로토스 김택용 선수는 4강전에서 예기치 못하게 강민을 3대0으로 이기고 올라왔는데, ‘성전’을 방해했다고 ‘플토빠’들에게마저 지탄을 받았다.

두 사람 사이의 인지도의 격차가 너무 커서, “3대0 당하지 않게 연습 잘하세요”라는 김택용의 도발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김택용의 소속팀인 ‘MBC게임 히어로즈’는 프로리그 우승으로 태국 푸켓으로 단체 휴양을 가게 되었는데, 김택용도 이에 동행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지난 기사에서 보았듯 중요 경기 예고편을 양 선수 입장에서 두 개씩 만들던 MBC게임 방송국조차도 이때는 맥이 풀려 자포자기의 상황이었던 거 같다. 그들은 단 한 개의 예고편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 예고편이 만들어낼 반전을 예측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당시 곰티비 시즌1 MSL 결승전 예고편. 예고편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이다.

‘기적의 혁명가’의 등장과 3.3 혁명

놀랍게도, 마재윤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본좌’ 시기는 열흘 정도 밖에 가지 않는다. 김택용은 ‘커세어 다크 체제’라는 당시로는 혁명적인 빌드를 들고 나와 마재윤에 대해 3대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의 승리를 거둔다.

지난 기사에서 설명했다시피 마재윤의 전성기 플토전 전적은 ‘역대 최고의 프로토스의 대재앙’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였다. 일단 승률 자체가 8할을 넘었고 다전제에선 패배한 적이 없었다. 당대 프로토스 진영의 양대 수장이었던 박정석과 강민을 압살하며 우승한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우직한 물량과 현란한 컨트롤의 박정석이 아니라 유연하고 창의적인 플레이가 강점인 강민이란 게 당시의 중론이었다.

2006년 박정석이 프로리그에서 ‘맵중앙 전진 투게이트’라는 극단적인 도박 빌드로 승리했을 때에도 마재윤의 저글링 운용은 탁월했다. 경기를 찾아본 내가 “이건 박정석 질럿 컨트롤이니까 막았지 다른 플토였으면 저글링 본진 난입해서 경기 뒤집었겠구나...”라고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여기서 ‘다른 플토’라는 것은 강민, 오영종, 박지호 등 그야말로 박정석을 제외한 모든 프로토스 유저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006년 강민이 저 유명한 ‘성전’ 경기들에서 다전제에서만 1:3으로 두 번 패했을 때에도 반응이 비슷했다. 마재윤을 이긴 강민의 두판의 게임은 강민 특유의 창의적인 빌드 짜기가 돋보이는 환상적인 경기였다. 하지만 그 경기력으로도 다전제에서 마재윤을 한 경기 이상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김택용은 그것을 해냈다. 박정석보다 향상된 물량과 강민보다 진보된 빌드를 들고 나온 그는 ‘프로토스의 세대교체’를 상징했다. ‘플토빠’들은 그 경기들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테란이 무너뜨리지 못한 마재윤을 프로토스가 무너뜨리게 되었다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프로토스팬들은 진심으로 그제서야 그들이 ‘마재윤의 압제’에서 벗어나 종족의 독립을 이루었다고 느꼈다. 김택용은 ‘기적의 혁명가’로 불렸고 그 경기는 ‘3.3혁명’이라 일컬어졌다. 그날은 전세계 모든 프로토스 유저들의 ‘인디팬던스 데이’가 되었다.

'3.3 혁명' 직전의 두 사람의 인터뷰. 당시 두 사람의 위치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폐위’ 이후에도 이어진 권세

하지만 스타리그의 역사를 드문드문 기억하는 ‘라이트’한 ‘덕’들의 오해와는 달리 3.3혁명은 마재윤이라는 위대한 프로게이머의 끝이 아니었다. 3.3혁명 이후 처음 나온 해석은 테란전 연습만 너무 한 마재윤의 플토전 기본 빌드를 ‘MBC게임 히어로즈’의 코치진이 완벽히 간파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후에도 김택용이 마재윤의 ‘천적’으로 군림하면서 일단 이 빌드가 일회용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슈퍼파이트’에서 김택용이 저그 마재윤을 다시 발라버리고 테란 이윤열을 저 멀리 보내버리는 것을 보고 플토빠들은 우리에게 언제 다시 이런 날이 오겠느냐며 울었다. 김택용은 정말로 ‘혁명가’였다. 그는 게임 시나리오 상에서도 스타리그의 역사에서도 ‘가장 먼저 흥했지만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는 종족’이라 여겨졌던 프로토스란 종족의 빌드에 무한한 가능성이 묻혀 있음을 증명해냈다.

그러나 다른 프로토스 게이머들이 김택용의 ‘커세어 다크’ 체제를 구현해내기까지는 시차가 있었다. 마재윤은 3.3혁명 이후로도 한동안 김택용 이후의 다른 프로토스는 압살하고 다녔다. 당시 프로토스 진영의 2인자라 볼 수 있었던 송병구를 포함해서. ‘오버로드 폭탄드랍’의 연쇄로 끝난 한 경기는 당시 스덕들에게서 널리 회자되었다.

저그 게이머들은 결국 ‘커세어 다크’ 체제를 극복해냈지만 그러자 프로토스 게이머들은 ‘커세어 리버’ 체제를 들고 나왔다. 이것은 예전에 강민이 실험적으로 만들어낸 체제였지만 김택용 이후의 프로토스 게이머들은 이를 훨씬 더 세련되게 다듬었다. 한번도 저그를 앞선 적이 없었던 프로토스가 저그와의 ‘진화적 군비경쟁’과도 흡사한 빌드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테란이 마재윤을 극복하기까지도 몇 개월이 더 걸렸다. 플토빠 입스타로 유명했던 pain(김정근씨)이 ‘속도의 이영호, 높이의 박성균’이라고 요약했던 테란의 두 신예가 혜성같이 등장하고, ‘마재윤의 새로운 천적’이 된 이성은이 등장하여 ‘공굴리기’라는 체제를 완성할 때까지는, 테란빠들에게 3.3혁명은 남의 일일 뿐이었다. 마재윤의 최전성기는 지났지만, 우리는 그가 다른 선배 게이머들처럼 이 리그에 남아 오래도록 후배들과 경쟁하며 분투해주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의 전락의 속도는 ‘선배 게이머’들보다 빨랐다. 최전성기에 당대 누구보다 앞서 있었고 다른 게이머들을 모두 내려다보듯이 대했던 그의 압도적인 기량은, 오히려 ‘내려가는 자신’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다른 게이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경쟁하며 5할 이상의 승류를 버텨내기 위해 분투하는 것에 싫증이 났던 것 같다.

팬들의 지나친 눈높이도 문제였을 수 있다. 아직 그가 완전히 전락하지 않았을 때도 팬들은 그를 ‘마막장’이라 놀렸고 ‘양대백수’(양대 리그 탈락자를 칭하는 말)라 했다. 하지만 이는 스덕들이 다른 게이머들에 대해서도 하던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잘하면 끝없이 빨고, 조금이라도 못하면 끝없이 까는 것이 스덕들의 세계였다. 그리고 마재윤은 한때 그 세계의 왕, 아니 신이었던 사람이었다.

마재윤 '일인지하 만인지상' 시대를 추억하게 하는 스덕들의 패러디 동영상. 일본 인디밴드 노래인 '에어맨이 쓰러지지 않아'를 패러디한 노래. "추첨운이라도 따라준다면 손쉽게 결승에는 가겠지만"이란 가사에서 마재윤이 '마막장'이라 불리던 시절에도 김택용 이외의 게이머에겐 잘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승부조작 이후, 오직 마재윤만을 미워하다

승부조작은 프로스포츠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다. 프로스포츠는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로망’을 먹고 자란다. 사람들은 그 로망을 보면서 현실세계의 시름을 잃는다. 그렇기에 이 로망이 파괴되는 순간 사람들은 프로스포츠가 존속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승부조작은 프로스포츠의 영역에서만큼은 가장 중대한 범죄행위다. 사회적으로는 불법도박과 비슷한 수준의 범죄겠지만, 그 영역에서만큼은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되는 범죄다. 프로스포츠의 영역에서 승부조작을 한 이들은 전적을 삭제당하는 것은 물론 그 세계에서 영구히 제명을 당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히려, 도박을 해서 ‘명예의 전당’에서 제외된 메이저리그의 피트 로즈의 경우, 그가 약물을 해서 승부를 왜곡한 것도 아니고 스포츠와 무관한 영역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 뿐인데 어째서 그 기록을 제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범죄자라는 평가와는 별개로 운동선수로는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범죄가 승부조작이 아닌 한.

그렇지만, 인간적인 정리의 문제는 또 그와 별개다. 나는 내가 열광했던 ‘그 소년’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알고 있었고, 대체로 중학교를 자퇴하고 이 영역에 들어와 불안정한 미래를 공유하던 그들의 선택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우승자 출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번 우승했다고 인생이 결정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정말로 억울한 친구들도 있었다. 조작에 참여한게 아니라 그저 토토를 자기 쪽에도 걸어놓고 이기려고 열심히 게임을 한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그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로선수가 경기의 승패에 대해 돈을 건 행위 자체도 징계받아 마땅하다고 보았지만, 그런 일을 하다가 제명당한 이들에 대해선 인간적인 안쓰러움을 품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 중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다.

단 한 명, 마재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 2009년 7월 21일 스타리그 10주년 기념 헤리티지 매치 마재윤vs강민 전 직전 온게임넷 방송 캡처화면. 마재윤은 이러한 전적들을 모두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다.

‘기록’은 말소되어도 ‘기억’은 남는다

앞서 얘기했듯, 마재윤은 단순한 우승자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임요환 이후 프로게이머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이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지배했고, 그것을 추억으로 바꾸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연전연패한다 하더라도 그의 플레이에 비명을 지를 팬들이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그랬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들의 기억을 악몽으로 바꾸었다.

설령 그가 전성기 시절 벌어들인 수억원의 돈을 다 탕진했다 하더라도, PC방을 차려서든 카페를 차려서든 빵집을 차려서든 먹고 사는 데엔 문제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막말로 그가 승부조작에 연루되지 않고 영예롭게 은퇴하여 아프리카 방송 BJ를 했다면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돈을 벌었을 게 아닌가?

승부조작이 드러나는 과정에서도 마재윤은 가장 실망스러운 이였다. 다른 연루자들이 속으로야 어찌 생각했든 자신이 뭘 잘 몰랐고 팬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예의’를 지킨 반면 그의 태도는 끝까지 ‘배째라’는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브로커 역할을 하면서 후배들까지 끌어들였다면 사실 가장 미안해해야 할 이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그의 발언이란 것도 이러한 안이한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고, 이미 말소된 그의 기록을 기억의 차원에서도 지우려고 무던히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한때 스덕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지 않는 이상, 그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재윤의 전락에 비한다면, 도대체 초등학교 한 반을 좌지우지한 폭력적 반장에 불과했던 엄석대 따위가 뭐가 문제란 말인가?

마재윤을 지운다는 것은 그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한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소년들의 땀과 눈물을 지워버린다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가 넘어섰던 전설들, 그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고 끝내 전설이 된 이들과, 남들은 ‘그깟 오락이나 보면서 열광하냐ㅉㅉㅉ’라고 핀잔 줄 때 우리끼리 소리지르고 눈물 흘렸던 그 시간들을 부정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를 더욱 미워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기에, 그의 군생활을 진정으로 염려했다. 00년대 초반 유행한 좀 폭력적인 내용의 애니매이션 ‘오인용’의 상황설정처럼, 가수 문희준의 군대 선임들이 문희준을 증오한다는 것은 좀 있기 힘든 일이었다. 남자들 전부가 문희준을 증오한 것도 아니었고, 일단 문희준은 연예병사로 빠지게 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한 내무반 전체가 마재윤을 증오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광경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군대 면제라고 한다. 그건 그의 인생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마재윤을 조소하는 이미지 중 하나.

‘마프리카’ 경기, 그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

앞서 말했듯, 승부조작은 해당 프로스포츠란 영역의 세계에선 가장 큰 범죄이지만 여타 일상생활을 할 때에까지 낙인이 되는 일은 아니다. 나는 스타리그 승부조작에 연루된 그 친구들이 다른 영역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마재윤은 ‘마프리카’라 불린 아프리카 방송 BJ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2011년 6월,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후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일형’을 선고받았으니 집행유예가 끝나지도 않았던 시점이다.

거기서 그는 도전자와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했고 별풍선을 받았다. 스스로 ‘돈 때문에 하는 방송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별풍선으로 돈을 번 것도 사실이다. 2012년 4월부터는 아예 스타크래프트 유료 강의를 시작했다. 마재윤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철저하게 빼먹었다. 프로게이머도 해봤고 승부조작 브로커도 해봤고 강사도 되어 봤으니 말이다.

‘마프리카’ 초기 그의 경기 동영상들을 본 적이 있다. ‘마프리카’ 소식에 집에서 술마시며 그를 욕하다가, 잠깐 엎드려 자다가 깨어난 나는, 취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문득 그의 경기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엔 그가 2군 프로게이머와 경기를 한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취중에 틀어본 그의 경기는 여전히 마재윤의 것이었다. 최신맵에 걸맞는 심시티와 빌드를 짜지 못하는 걸로 보아, ‘일년 동안 스타를 안했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일반인도 아닌 2군 프로게이머들을 상대로 그럭저럭한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기거나 지거나 했고, 그것만으로도 놀라웠다. 불리하게 시작해도 운영을 통해 경기를 뒤집어 버리는 역량도 여전했다.

한숨을 쉬며 컴퓨터를 꺼버렸고 그 후엔 그의 방송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재능을 가지고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를 더 이상 미워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 '마프리카' 방송 화면 캡쳐 사진.

마재윤을 향한 마지막 말

마재윤은 최근 ‘마프리카’ 방송의 몇몇 악플러들을 고소했다. 그에게도 자신에게 과도한 욕을 한 이들을 고소할 권리는 있다. 그 권리를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자신에 대한 증오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정도는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것을 십분지 일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는 e스포츠와 무관한 새로운 인생을 기획하려 할 것이다.

마재윤이 우습게 봤던,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했던 ‘스타리그’는 종결되었고 ‘스타2리그’의 시대로 넘어갔다. 스타리그를 없애는데 일조한 사람이 스타리그 이후의 세상에서도 스타크래프트로 돈을 번다는 역설은 아직까지도 여러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나도 남한 사회 남성들의 악습, 자기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연예인에게 반말로 욕을 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사석에서는 물론 SNS에서도 그를 무던히도 욕했던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그에게 내 무례를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에 합당한 그의 예의를 바라고 싶다.

그래야만 나중에라도, 마재윤을 ‘마레기’나 ‘개새끼’로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야 니네가 안 봐서 몰라 그렇지 그 새끼가 나쁜 새끼이긴 하지만 스타는 진짜 잘했어. 어마어마했다고!!”라고 잘난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록은 말소되어도 기억은 말소되지 않는다. 나는 내 기억을 소중한 것으로 지키고 싶었다.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며, 마재윤이 헤아려야 할 것들이다.

수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2007년 에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오프닝 영상. 이 대회에서 저그 마재윤 선수는 8강전에서 프로토스 김택용 선수에게 패했고, 김택용 선수는 4강전에서 프로토스 송병구 선수에게 패했으며, 송병구 선수는 결승에서 저그 이제동 선수에게 패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마재윤 선수는 송병구 선수를 너끈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고, 김택용 선수는 이제동 선수를 너끈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시기였다는 점에서, 대진표에 의해 결승자가 결정된 흥미로운 시기였다. 하지만 이 영상에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게이머가 세명이나 등장한다는 점(마재윤, 신희승, 진영수)에서 훗날의 비극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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