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철 변호사 ⓒ 정은경
삼성그룹 법무팀에서 일하다 지난 2004년 퇴직한 후 ‘법무법인 서정’에서 일해왔던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지난 7월말 회사로부터 부당하게 퇴사를 강요당했으며 △7억 원의 출자지분에 대한 환급금 등으로 우선 10억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이번 소송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김 변호사가 소장에 ‘삼성과 중앙일보 간부가 내 퇴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8일자 한겨레의 보도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성과 중앙일보가 나의 퇴사와 관련해 압력을 행사했다”

“지난 5월 한겨레에 ‘범행 처벌은 사법부 몫이지만 현행범 체포는 누구나 가능하다’는 법률 상식 칼럼을 쓰며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예로 들었는데 때마침 같은 날 한겨레에 익명의 전직 삼성그룹 고위 임원의 말을 따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사실상 그룹 비서실(구조조정본부)이 개입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칼럼이 나간 뒤 소속 법인 이아무개 대표 등이 ‘중앙일보의 한 간부가 당신을 조처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기업 사건을 (수임)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며 휴직을 권고했다.” “다른 변호사들로부터 ‘삼성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복귀 명분이 선다. 삼성에서 근무해도 된다는 사인이 오면 근무가 가능하다’ ‘반기업적 사람이 근무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퇴사를 종용했다.” “기사에 언급된 익명의 고위 임원을 구조본 법무팀장 출신인 나라고 판단하고 삼성과 중앙일보 간부가 법인에 압력을 넣은 것 같다.”

▲ 한겨레 10월8일자 12면.
일개(?) 법무법인 인사에 ‘초일류기업’ 삼성과 메이저 신문 중앙일보가 개입했다는 것인데, 그의 이 같은 ‘주장’은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소설가인가 … 없는 사실을 지어내진 않는다”

김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추진했던 것도 이 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였다. 일부 언론이 이 사안을 보도했지만 그것은 소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 법무팀장(전무)으로 근무하다, 지난 2005년 9월 ‘돌연’ 한겨레 기획위원으로 직업을 바꾼 ‘특이한’ 전력도 갖고 있다.

9일 오전 경기도 양평에서 김용철 변호사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법무법인 서정을 그만두고 줄곧 양평의 한 ‘농가’에 내려와 직접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사실상 ‘농촌인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자체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수부 검사로 잔뼈가 굵은 데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진두지휘한,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법무팀장 출신의 김 변호사를 인터뷰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이른바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이 오지는 않았는지.

“없었다. 법무법인 쪽에서도 없었고, ‘다른’ 쪽에서도 없었다.”

- 김 변호사가 소장에서 제기한 내용을 당사자들은 전부 부인하고 있다.

“내가 소설가인가. 없는 사실을 지어내서 이 같은 일을 벌이진 않는다. 지난 5월29일 회사 쪽에서 ‘두 달간 쉬라’는 얘기를 했다. 처음엔 정말 두 달만 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아서 확인해보니 사실상 그만두라는 얘기였다. 그 얘기 듣고 바로 나갔다. 사무실에 모든 짐을 다 그대도 둔 채 그냥 나와 버렸다. 볼펜 하나 챙기지 않았다.”

-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본인이 동의해서 자발적으로 쉬겠다고 얘기했다는데.

“동의? 동의해서 자발적으로 쉬겠다는 사람이 볼펜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회사를 나오나.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뿐이다. 난 동의한 바 없다. 물론 (법인 쪽 입장을) 이해하는 면이 있다. 당시 우리(법무법인)쪽과 한화건설 사장과의 식사 약속이 잡혀 있었는데 (칼럼이 게재된 이후) 갑자기 취소됐다. 당시 칼럼은 일반적인 법률상식에 대해 쓰면서 한화를 하나의 예로 든 것 뿐이었는데 …. (법인 쪽에서) 기분 나쁜 건 이해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같은 날 한겨레 1면에 삼성 에버랜드 관련 기사가 실렸다. 그래서 파문이 커졌다. 삼성의 위세, 충분히 알고 있다. 조직도 알고 의사결정구조도 알고. 강한 조직이다. 무제한의 자본력을 동원할 수 있고, 매출이 국가예산 수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벌기업이 일개 로펌의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 ⓒ 정은경
“자발적으로 쉰다고 얘기한 적 없다”

- ‘말초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한겨레 1면 기사에 익명으로 인용된 사람이 본인인가.

“그렇다고 누구나 생각하지 않겠는가. 삼성 구조본 출신 경력의 전직 임원은 아마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아마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했느냐 안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당시 삼성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익명으로 인용된 발언은 일종의 ‘상식’에 속한다. 왜 그걸 가지고 문제를 삼느냐 …. 진짜 어이가 없다.”

▲ 한겨레 5월25일자 1면.
- 근본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소송을 제기한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공론화 시키고 싶었다. 내가 투자한 지분 1/3에 대해 아무런 얘기가 없다는 것도 그렇고, 나를 내보내는 절차도 그렇고. 같이 일했던 동료이자 동반자였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같이 동료애로 감싸고 동료 입장부터 들어보고 그런 것 아닌가 … 솔직히 몇 번을 사정했다. 비굴할 정도로 회사 쪽에 사정했다. 왜냐면 달리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송을 제기할 때 회사에 대한 가압류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직원들, (내가) 정을 주고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 이 소송을 끝까지 할 생각인가.

“그럼 나보고 취하하란 말인가. (웃으며) 나 수사했던 사람이다.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싸우면 싸울수록 언론은 아마 재미있을 것이다. 기자는 일단 무조건 쓰고 보니까. 어차피 이 사안은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내가 질 수도 있다고 본다. 나 이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하면 나 혼자 바보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두렵지 않다. 난 더 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 김용철 변호사 □

김 변호사는 1958년 광주출생으로 광주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왔다. 사법시험 25회(사법연수원 15기)에 합격, 해군 법무관을 거쳐 인천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검찰에 있으면서 특수부 검사로 명성을 날렸다. 특히 서울지검 특수부에 있을 때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997년 9월 삼성구조조조정 법무팀으로 자리를 옮겨 세간의 관심을 받았는데 이후 4년간 삼성에서 구조본 재무팀 이사와 상무를 지내다 2002년에는 구조본 법무팀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2005년 9월에는 한겨레 비상임 기획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언론계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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