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방영된 SBS스페셜 끼니반란 1부의 방송화면

지난 10일 SBS스페셜 2부작 "끼니반란" 의 첫번째 편이 방영되자 다음날 아침부터 포탈사이트는 '1일1식'으로 뒤덮였다. 실시간 검색 순위를 비롯해 각종 언론사에서 제공하는 기사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1일1식을 언급했다. 이런 현상은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그리고 1일1식은 효능을 어디까지 믿어야할까? 궁금증에 답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1. 1일1식 어디에서 왔는가?

사실 이번과 같은 '식이요법 붐'이 미증유의 사태가 아니다. 건강은 늘 대중들의 관심사였으며 건강과 직결되는 식이요법은 방송가에서 즐겨 다루는 주제였다. 특정 방송사나 최근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닌 공중파 3사가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보여온 양상이다. 그 대상 또한 소식, 금주, 채식, 생식, 유기농, 단식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변해왔다. 하지만 대상만 변했을 뿐 방영될 때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왔다는 점에선 일맥상통한다. 일례로 2002년 SBS의 '잘 먹고 잘 사는 법' 방영 직후엔 육류소비가 급감했고 2009년 MBC의 '목숨걸고 편식하다' 이후엔 현미 소비가 급증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1일1식 현상' 역시 방송3사의 전형적인 '트렌드 세팅'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건강은 20여년간 줄곧 대중적인 주제였으며 방송가는 늘 새로운 건강 아이템 발굴에 힘써왔다. 1일1식은 이렇게 선택된 일종의 유행이며 앞서 유행한 다른 식이요법 비하면 되려 그 반응이 잠잠한 편이다.

▲ KBS1 생로병사의 비밀 (1996년)
▲ KBS1 술,담배,스트레스에 관한 첨단보고서 (1999년)
▲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 (2002년)
▲ SBS 옥수수의 습격 (2010년)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1일1식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해외로 시선을 옮겨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사실 1일1식이라는 도서가 국내에 출간되기도 전에 영국에선 이와 유사한 '일시적 단식(Intermittent fasting)' 크게 유행하기 시작,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SBS의 기획은 지난해 BBC에서 방영된 과학다큐 호라이즌(Horizon)의 "Eat, Fast Live longer(먹고, 굶고 오래살자)"에피소드를 모범적으로 답습한 결과로 보인다. 호라이즌은 1964년 부터 방영을 시작해 현재 50시즌이 진행중인 BBC의 과학전문 다큐멘터리다. 49번째 시즌 세번째 에피소드로 지난해 8월 방영된 Eat, Fast Live longer는 소식과 장수에 관련된 내용으로 전체적인 맥락이 1일1식과 같다. 쇼 호스트인 마이클 모슬리(Michael J. Mosley)는 101세의 나이로 런던마라톤을 완주한 노인과 만난다. 자신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 소식(小食)에 있다고 주장하는 노인에게서 실마리를 얻은 그는 세계 각지의 각종 노화방지 연구자들에게서 같은 의견을 듣는다. 장수와 건강의 비결이 소식에 있다고 확신한 모슬리는 다이어트를 시작하나 공복과 스트레스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결국 그는 다른 연구자에게서 매번 식사량을 줄이지 않고 주기적으로 단식을 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조언을 얻는다. 결국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모슬리는 주중에는 정상적으로 식사하고 주말에는 식사량을 반으로 줄이는 '5:2 다이어트'를 시도한다. 약 8주 뒤 체지방이 3kg이상 줄어들었으며 혈액검사 결과도 크게 개선되었다는 결과를 받아들고 마이클 모슬리는 소식과 단식이 장수와 건강의 열쇠였음을 확신한다.

▲ BBC 방송 Horizon(S49x03) Eat, Fast Live longer , 2012년 8월 방영

예고편에 따르면 다음에 이어질 2부의 제목은 '배부른 단식, IF의 비밀'이다. 그러나 BBC의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알고 있다면 IF가 '일시적 단식(Intermittent Fasting)' 의 약자이며 어떤 방향으로 방송이 흘러갈지 미리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지난 방송의 구조 역시 BBC의 호라이즌은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실제 소식을 장기간 유지중인 사람들을 보여주고 해외의 연구기관을 찾아가 동물실험을 근거로 소식이 노화방지에 탁월하다는 입증을 받는다. 그러나 막상 소식이나 단식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몹시 힘들다' 는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매끼를 조금 먹는 게 아닌 '일시적 단식'을 통해 스트레스 덜 받으며 체중조절을 할 수 있는 내용을 다음주에 알려주겠다, 전체적인 얼개가 BBC의 호라이즌과 똑같다.

▲ 지난 10일 방영된 SBS스페셜 끼니반란 1부의 방송화면

결국 전체적인 흐름을 놓고 봤을 때 이번 SBS의 방송은 해외의 흥행 컨텐츠를 발빠르게 번안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BBC의 호라이즌 방영이후 영국은 5:2 다이어트 붐에 빠졌으며 쇼 호스트였던 모슬리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써낸 책 'The Fast(단식)"은 영국 아마존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다.

2. 1일1식의 효능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이제 관심사는 1일1식의 효능으로 옮겨간다. 사실 1일1식이라는 말은 그 대사이 불분명해서 소식과 단식으로 대상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1일1식은 식사의 총량을 줄이는 소식법과 식사 사이 공복시간을 길게 가지는 단식이 합쳐진 개념이다. 이 둘을 따로 떼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소식이 주는 건강상의 이점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다. 소식에 대한 연구는 이미 1930년대 부터 시작됐는데 그 계기가 우연하다. 20년대 말 찾아온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미국 사회 전반의 영양공급이 악화됐다. 학자들의 이 때문에 평균수명이 줄었을 거라 추정했다. 그러나 통계결과 대공황기의 평균수명은 오히려 늘어났고 이 때부터 본격적인 소식연구가 시작되었다. 현재 소식의 효능에 대해선 사실상 결론이 나왔다. 세대수가 짧은 설치류등으로 행해진 동물실험 결과는 이미 합의됐고 인간과 유사한 영장류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수명이 수십년에 달하는 영장류의 특성상 80년대 첫 실험을 실시한 개체들이 아직도 자연사하지 않아 최종결론만 아직 미뤄놓은 상태지만 잠정결론은 이미 나와있다. 조금먹으면 오래 산다.

▲ 칸토와 오웬

80년대부터 시작해 지금도 진행중인 '칸토와 오웬(Canto-Owen)'실험이 보여주듯 생명연장에는 소식이 과식보다 유리하다. 20년 넘게 동일한 조건에서 살지만 칸토는 제한급식 중이고 오웬은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둘의 나이차는 2년 이지만 오웬의 노화가 훨씬 빠르다.

단식은 소식을 돕는 일종의 장치다. 식사횟수가 줄어들면 결국 먹는 총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식지지자들의 '소식을 쉽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하는 게 단식이다. 매번 조금씩 먹기보다 오래 굶은 뒤 몰아서 먹고 포만감과 보상을 즐기는 것이다. 1일1식이나 BBC의 5:2 다이어트, 오는 토요일 SBS에서 방영될 '하루걸러 하루단식'이 여기에 들어간다. 매번 조금 먹는 소식에 비해 스트레스가 덜하고 효과는 비슷하다는 게 중론이다.

소식은 오래사는 방법인가?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인가에 대해선 저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소식으로 인한 생명연장이나 노화방지의 기전이 무엇이냐에 대해선 연구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오랫동안 노화의 주범으로 여겨진 체내 활성산소(oxygen free radical)축적을 지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인슐린이나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IGF-1) 연관을 맺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시르투인(Sirtuin)이라는 새로운 인자를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핵심 요인이 무엇이든 이들의 하는 역할은 똑같다. 사람을 덜 자라게 한다는 것이다. 노화는 사실 성장의 이면이다. 세포가 분열하고 생명활동이 진행되는 것이 경우에 따라선 성장이 되고 때로는 노화가 되는 것이다. 소식은 의도적으로 영양분 공급을 줄여 '성장'을 방해하는 방법으로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식법이든 단식법이든 1일1식과 같은 건강법을 장기간 유지하는 사람들은 외모에서 공통된 특징이 나타난다. 두상이 길어보일 정도로 움푹 파인 볼과 두드러진 광대. 이들은 모두 마르고 왜소하다. 본인들은 이것이 동안이며 젊음이라고 주장하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는 뜻이다. 소식-단식법은 건강하게 사는 법일수는 있어도 강건하게 사는 법과는 거리가 멀다.

▲ 호라이즌과 SBS스페셜에 등장한 소식, 단식 지지자들의 외모성별, 외모, 인종을 막론하고 모두 같은 집안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또한 음식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 직장인들에겐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이처럼 1일1식과 같은 소식-단식 다이어트 프로그램들은 그 효과가 명확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또 매일 하거나 평생을 유지해야할 필요성도 떨어진다. 앞서 방송 내용에서 살펴봤듯이 매번 조금씩 먹으나 이삼일에 한번씩 굶어가면서 먹으나 전체 섭취량이 줄어들면 그 효과는 대동소이 하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실천은 하되 전에는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성장기 아동이나 청소년들은 절대로 이 프로그램을 적용해선 안 된다. 노화가 아닌 성장이 필요한 시기에 일부러 자라지 못하게 방해할 뿐이다. 다이어트를 생각한 직장인이라면 주중에는 일상식을 하고 외부 활동이 없는 주말에만 실시하는 식으로 융통성 있는 적용이 필요하다. 주기적으로 육체노동이 필요한 교대근무자 등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3. 마치면서

소식과 단식은 현재까진 가장 직관적이며 손쉬운 수명연장법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인류 공통의 패턴이라거나 상시 유지해온 인류 고유의 문화인지에 대해선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방송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부분이기도하다. 기획의도가 소식과 단식의 효능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보니 다소 무리하게 논거를 활용한 부분들이 엿보였다. 삼시세끼는 산업사회 이후에 정착된 최근 50년의 현상이라 우리가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먹고 있어 고통받고 있다느니 과거 조상들의 기록에는 점심이 없다느니 하는 진술이 그것이다.

▲ 지난 10일 방영된 SBS스페셜 끼니반란 1부의 방송화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의 저서 앙엽기에는 '일반 백성들은 조석으로 매끼 다섯홉씩 하루 한 되를 머는다' 라는 진술이 나온다. 홉이라는 단위가 '주먹'을 기준으로 책정된 주관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다섯홉이면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폭식이다.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은 당시 풍속을 기록하며 추석부터 이듬해 정월까지는 조석 두끼, 그 사이 농번기에는 하루 세끼 먹는데 장정은 7홉, 아이가진 여자는 한끼에 5홉을 먹었다고 하니 지금 기준으로 남녀불문 밥을 서너공기씩 먹었다는 이야기다.

정조 때 기록인 무오연행록에는 청나라 사신으로 간 서유문이 "대체로 중원 사람은 밥을 중히 여기지 않고 각색 떡과 과일로 조석을 대신하니 우리나라 사람이 서너 끼를 큰 그릇에 밥먹는 것을 극히 위태롭고 끔찍이 여기는가 싶더라." 라는 말을 남겼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 기록인 쇄미록을 보면 조선군 장병의 일일 배급량은 쌀 7홉이었다.

역사학자나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거의 대식가 수준이었으며 육체노동이 이어지는 농사의 특성상 밥을 삼시세끼도 아닌 네다섯끼까지 필요에 따라 먹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소식과 단식의 효능을 강조하고 싶더라도 이처럼 부정확한 기록을 가지고 견강부회하는 태도는 오히려 방송 전체의 신뢰를 하락시키는 처사라 본다. 좀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선에서 새로운 건강정보를 기대하며 오는 토요일에 방영될 2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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