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안철수가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조금 더 단호해보였고 그래서 한층 정치인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첫 등장 이후 그는 지금까지 개인 안철수보다는 그를 휘감고 있는 어떤 '상징성'으로 그리고 현재 보다는 미래적 의미의 '잠재력'으로 정치적 '지점'을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선 무대에서 석연치 않게 퇴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가 그렇게 존재하고, 그런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것은 매우 불가사의한 정치적 현상처럼 보일 정도다.

승부수를 던졌지만,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다자구도가 유력해보이는 노원병 재보선 구도에서 그는 '패잔병'의 멍에를 쓰고 쓸쓸히 퇴장할 수도 있다. 행여 그게 아니라면 민주당 중심의 야권 질서를 완전히 재편해내는 괴력의 '메시아'가 될지도 모른다. 대선 이후, 야권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는 전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지지부진과 전형성을 일격하는 '카드'로서 안철수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미디어스>는 4회에 걸쳐, 안철수의 현재성을 묻는 기획을 진행한다. 안철수에 대한 열광과 안철수에 대한 회의를 넘어 안철수를 '매개'로 불변하는 정치 현실의 갑갑함을 진단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기획연재 순서>

1. 안철수가 돌아왔다, 그런데 왜?

2. 노원병 선거 구도의 공학과 안철수의 생존 가능성

3.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4. [좌담]'멘토' 이후의 시대, 안철수와 한국 정치

▲ 4·24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노원병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전 서울대교수가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흑석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분향하고 있다. ⓒ뉴스1

결국 안철수 전 원장이 ‘여의도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을 선언했다. 이에 대한 기존 야권의 반응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것은 이미 지난 기사에서 지적했던 바다. (기사 링크) 민주당의 입장에서야 안철수가 부산 영도로 나가줬으면 싶을 테고, 진보정의당 입장에서야 안철수가 김지선에게 양보해줬으면 싶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안철수에게 그 선택을 강제할 수단이 있느냐는 것인데, 생각만큼 그들의 영향력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안철수 측에게 야권후보 단일화의 ‘대의’란 건 그에 지나치게 얽매였기 때문에 대선의 패인이 된 그런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여론조사는 새누리당 후보가 이준석일 경우는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 후보가 모두 출격해도 안철수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을 말한다. (기사 링크) 또한 과연 야권후보 단일화가 대선이 아닌 보궐선거에서도 대중의 주도적인 바람일지가 의문이다. 대중은 오히려 안철수에게서 민주당이나 진보정의당의 이해관계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챙기는 결단력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새누리당이 좀더 경쟁력이 있는 홍정욱 등을 출격시켜 정면승부를 벌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런 구도가 이어진다면 안철수 측은 오히려 ‘새정치’가 수도권에서만큼은 야권연대나 야권후보 단일화란 ‘대의’보다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일 그가 다자구도에서 승리한다면 향후 더 부담스러운 것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을 수권정당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

선거책략의 관점을 넘어, 정치적으로 ‘모호한 존재’인 안철수가 국민여론에서 ‘실체가 있는 정치적 대안’으로 여겨지는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간단히 요약하면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수권정당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볼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진지한 정치적 대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새누리당에 실망해도 민주당 지지로 선뜻 옮겨가지 못하고 ‘제3의 대안’을 찾아 떠돈다는 것이다.

세대적으로는 60대 이상과 일부 20대, 그리고 영남지방에서 주로 받아들여지는 ‘종북’ 논란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수도권의 청장년층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핵심적인 원인은 아닐 것이다.

민주당에게 이러한 상황은 억울한 것일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실제로 수권능력에서 공당이며 제1야당인 민주당이 안철수 측보다 못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민주당 측의 기량이 월등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의 정책공약은 미디어스 좌담에서 조성주 전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이 “한국 사회의 조건 속에서 나타난 사민주의 정책의 현실태였다고 평가할 만하다”고 말할 정도로 일정 수준 이상을 보여줬다. (기사 링크)

하지만 ‘안철수 열풍’의 두 개의 버팀목 중 하나인 수도권 청장년층은 뉴스소비도 많이 하고 제법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층이다. 민주당이 이들에게 신망을 얻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홍보능력이나 정치력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은 ‘친노’니 ‘반노’니 다투기 이전에 ‘안철수 지지층’에게 민주당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폭넓은 여론수렴을 실시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대선 직후 미국에 간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11일 저녁 인천시 중구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기자회견을 마치고 한 어린이를 안아주고 있다. 안 전 서울대교수는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선거 출마는 국민의 삶과 마음을 중하게 여기는 낮은 정치의 시작"이라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뉴스1

민주당의 ‘친노 딜레마’에 대해

물론 정교한 대책은 유권자의 심리에 대한 정교한 관찰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선거의 분위기와 바닥민심을 볼 때 민주당이 정치적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세태가 “민주당의 친노 딜레마”와 결부되어 있다는 인상은 지우기 힘들다.

민주당의 ‘친노 딜레마’는 1) ‘친노세력’에 대한 일부 야권 유권자들의 반감이 실존하고, 2) 민주당 내 ‘반노’나 ‘비노’란 이들이 이들을 대체할 세력이나 역량은 되지 못하는 가운데, 3) ‘친노세력’은 이 딜레마를 인지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라 요약할 수 있다.

민주당 내외의 친노세력의 선거에 대한 인식은 두 가지로 갈렸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선거를 주도한 이들의 인식으로, 야권연대를 유지하며 진보적 경제정책으로 새누리당에 대한 우위를 보여주고 청년세대 유권자의 표심을 적극적으로 공략, 투표율을 재고하여 승리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조기숙 교수가 외곽에서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이 그에 동의하는 인식의 일단을 내비친 것으로,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이 영남보다 인구가 적은 실정에서 기본적으로 선거에서 이기기가 어렵고 중도층을 공략하려면 오히려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에 찬성하는 ‘노무현 노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숙 교수의 담론의 문제는 이것이 나름의 자료를 통해 일종의 ‘과학’의 외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선 2007년 대선의 패배도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이 아닌 ‘정동영의 문제’로 변모하고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계승하는 것이 민주당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 된다.

친노진영 말고는 참고할 수 있는 자료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현실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결론은 대중의 직관에서 현저하게 멀리 떨어져 신뢰하기가 어렵다. 양측의 공방에선 문재인 후보 측의 전략이 더 건설적이었다 평가할 수 있지만 이 두 진영의 논쟁에선 ‘친노세력’에 대한 일부 야권 유권자들의 반감이 실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고려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번 대선에서도 친노세력은 ‘친노인사 임명직 거부선언’이라는 제안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물론 친노세력에 대한 야권 유권자들의 반감이 어느 정도 수위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친노인사 임명직 거부선언’이 표를 더 끌어올 수 있었을지 그 위력이 대선승리를 담보할 수 있을 수준이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그 ‘반감’이 존재할 수는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논의가 가능한데 친노세력과는 이것을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민주당의 ‘친노 딜레마’를 구성한다.

친노진영의 이러한 현실인식은 특히 호남출신 야권 유권자들의 ‘안철수 지지’를 부채질하고 있다. ‘안철수 열풍’의 두 개의 버팀목 중 다른 하나는 바로 호남 유권자들과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이다.

이는 지난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도 꽤 오랜 기간 동안 안철수 측의 정치적 자산이 되어 왔다. 문재인 후보로의 단일화 이후에도 호남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호남의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예전에 비하면 약소한 것이었고 특히 수도권의 호남출신 장년층들은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유시민을 비토한 것처럼 문재인에게 마음을 주지 못했다는 증언이 있다.

▲ 대선 직후 미국에 간 안철수 전 원장이 11일 저녁 인천시 중구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현장에는 '광주진심포럼'의 피켓만 네개였다고 한다. 안철수 전 원장의 지지층 중 친노세력을 불신하는 구민주당 지지자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바였다. ⓒ뉴스1

안철수도 ‘묻지마 지지’ 넘어 진화해야

택시기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 번도 새누리당을 찍은 적이 없고 내가 문재인 후보를 찍지 않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서울 상경 이후 민주당을 찍지 않은 적이 없다. 근데 대선 기간 내내 광주에 한번도 안 오더라. 어떻게 이럴수가 있느냐. 너무 화가 나서 박근혜 찍었다”라고 말하는 경우조차 있다. SNS 반응을 봐도 친노세력에 대한 불신이 분노와 증오의 경지에 뻗친 일부 구 민주당 지지층이 거의 ‘묻지마’ 수준으로 안철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이 이러한 조류가 ‘별 거 아니다’라고 말하려면 스스로 정밀한 조사를 해보면 된다. 하지만 그런 작업없이, 이런 이들을 달래려는 시도도 없이 ‘안철수 열풍’을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호남이 인구가 적다고 투덜대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영호남 인구가 비슷했기 때문에 총선이 아닌 대선의 레벨로 오면 영호남 인구는 동일하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영남의 경우 특히 부산경남 등지에서 자녀세대가 새누리당을 이탈하고 있는 반면 수도권 호남출신들의 자녀는 더 이상 지역정체성은 가지지 않지만 ‘적어도 새누리당은 배격하는’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원래 불리하다는 얘기도 통용되지 않는다.

현재의 민주당과 친노는 '지역구도타파=PK공략'이라는 공식을 신주단지 모시듯 한 결과 호남을 서운하게 만들어 지지층을 온전하게 결집하지 못했는데, PK에서의 성과가 대선 승리를 만들어낼 정도는 아니었다는 문제가 있다. 안철수 전 원장이 서울에서 나오겠다는 선언은 문재인 의원처럼 '부산후보'라는 정체성을 가지기가 싫다는 의미도 있는 건데 그 의미조차 읽어내지 못할 만큼 현 민주당의 지역문제에 대한 인식은 'PK중심적'이다.

결국 기존 지지층을 달래면서 ‘신자유주의 이후’ 시대를 대변하는 정책들로 세대를 넘어 빈곤층과 중간층을 규합하는 유권자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민주당이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대면해야만 하는 핵심적인 과제이나 이 과제를 민주당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바꾸어 말하면 안철수 측이 진지한 정치적 대안이 되기 위한 과제도 수도권 청장년층의 모호한 새정치에 대한 열망과 일부 민주당 지지층의 ‘친노 비토’ 정서에서 나온 ‘묻지마 지지’를 넘어 어떠한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당이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철수 측이 어떠한 시대정신을 읽어내거나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민주당의 혁신을 강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은 예기치 않게, 또다시 안철수를 호명한다. 문제는 그의 응답이 지난 대선처럼 관성적인 것에 그쳐서는 곤란하고, 좀더 정교한 내용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자신이 정치적 대안이 될 가능성도 생기고, 그에게 자극받아 민주당이 제대로 된 혁신에 나설 가능성도 생긴다.

안철수 전 원장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책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을 읽었다고 한다. 프레시안 임경구 정치팀장의 분석(기사 링크)처럼 이는 ‘새정치’의 구체적 내용을 채우려는 작업일수도 있고 ‘제3정당’을 창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연초 최장집 교수의 고언에 대한 응대일수도 있다.

한가지 확실한 건 그가 예전처럼 최장집 교수의 주장을 친노세력이나 참여정부의 과거를 비판하는 자료로만 활용하지 않고 그 내용을 되새긴다면 본인의 정치적 장래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한국 정치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 거란 것이다. 2라운드의 공이 울렸고 이제 ‘정치인 안철수’가 링 위에 올랐다.

▲ 12일 오후 서울 노원구 마들역 인근 횡단보도에 4.24 재·보궐선거 안내 현수막이 붙어있다. 현재까지 4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확정된 지역은 서울 노원병을 포함해 부산 영도와 충남 부여·청양 등 3곳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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