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민 평화시위.”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울광장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는 이런 구호가 적힌 손팻말이 쌓여 있었다. 거리에 촛불이 밝혀진 지 38일. 전날 평화의 거리를 전쟁터로 만들어버린 보수단체의 섬뜩하게 각지고 날선 연병장 구호를 쿨하게 타고 넘는 구호였다. 이제 시민들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언어를 스스로 도출하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 촛불집회 장소인 서울광장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 쌓여 있는 ‘평화시민 평화시위’ 손팻말. ⓒ안영춘
촛불집회 장소인 서울광장에서 50m쯤 떨어진 파이낸스센터 앞.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인 서경석 목사가 ‘더 이상의 촛불시위는 법치를 무너뜨리고 국가 경제를 어렵게 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는 기독교사회책임 쪽 사람 20여명이 촛불집회에 반대하거나 KBS·MBC의 방송 내용을 비난하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든 서경석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안영춘
일대는 언어로 왁자지껄했다. 서 목사는 “현재 촛불집회를 이끌고 있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사람들은 평택 미군기지 철수 운동을 했던 친북 좌파세력”이라며 “선량한 시민들이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듣고 있는 시민들 사이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때가 어느 땐데 친북 좌파 타령이냐”, “목사면 목사답게 살아라”, “썩은 목사 물러가라”….

수십명의 인파 뒤로는 기독교 시민단체인 통일시대평화누리 구교형, 김종환 목사가 묵묵히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의 손에도 팻말이 들려 있었다.

“국민의 정당한 저항을 함부로 왜곡했던 기독교를 용서해 주십시오”(구교형)
“김진홍·서경석 목사님, 목사로서 당신들이 부끄럽습니다”(김종환)

그렇게 서울의 거리 한귀퉁이에서 언(言)은 언(言)끼리, 어(語)는 어(語)끼리, 또 언(言)과 어(語)가 서로 구르고 뒤섞이며 각축하고 있었다. “우리의 의견에 반대하는 분은 나오셔서 말씀하십시오.” 서 목사 쪽도 손팻말로 ‘소통’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여러 시민들의 육성에 맞서 한동안 마이크를 독점하고 있던 서 목사 쪽이 드디어 한 시민에게 자유발언의 기회를 넘겼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닌다는 이해석(40)씨는 자신을 유전공학 석사 학위자라고 밝혔다. 이씨는 “정상적인 프리온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주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변형 프리온은 인체에 치명적”이라며 광우병 쇠고기에 관한 정부 쪽 주장을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또, “이분들은 특정위험물질(SRM)이 제거돼 위험하지 않다고 하는데, SRM이 어느 부위이고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아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 시민 이해석씨가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정부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안영춘
휠체어에 앉아 있던 서 목사가 갑자기 일어나 이씨의 마이크를 나꿔챘다.

“전문가라면서 그런 식으로 잘난 체하면 마이크를 못 주겠다.”(서경석 목사)

서 목사가 생각하는 ‘자유발언’의 의미는 딱 거기까지였다. 발언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가 하는 것은 판단의 근거가 되지 못했다. 반박 논리를 맞받아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자유의 허용 범위를 재는 유일한 잣대인 것처럼 보였다.

시민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마이크 줘, 마이크 줘.”

마이크를 다시 넘겨받은 이해석씨는 “도무지 소통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꼬집고 나서, 다시 광우병 얘기를 이어나갔다.

얘기가 조금 길어지자, 서 목사 쪽 관계자가 다시 마이크를 빼앗아가며 말했다.

“이렇게 혼자 길게 얘기하면 민주시민이 아닙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구교형 목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입을 열었다.

▲ 평화시대평화누리 구교형, 김종환 목사가 손팻말을 든 채 서 목사 일행을 바라보고 있다. ⓒ안영춘
“저 분들은 보수라기보다는 기독교계의 기득권자다. 저분들이 마치 기독교인들의 대표인양 행동하지만 저분들의 말과 행동에 반대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구 목사는 “몇 해 전과 달리 이젠 큰 교회 목사들이 교인들을 동원하려고 해도 교인들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며 “머잖아 저 분들이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 목사 일행은 저녁 7시 촛불집회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 반쪽짜리 ‘일방 소통’이 떠나간 자리가 휑하니 비어 보였다. 문득 ‘저 분’들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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