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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승부수가 잦아지면 국민은 짜증낸다[기자수첩] ‘대통령 정면돌파’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 있어
한윤형 기자 | 승인 2013.03.05 16:41

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첫 대국민담화문은 일단은 의도했던 바를 얻은 것 같다. J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담화문 발표 직후 전국 성인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담화문에 공감한다는 여론이 과반 이상(57.3%)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저장단 없는 밋밋한 연설 스타일을 벗어나 최대한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려고 했던 대통령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 여론조사 결과를 담은 오늘자 중앙일보 1면 기사

하지만 보수언론들조차 박근혜 대통령의 ‘초강수’를 온전히 옹호하지는 못한다. 여의도에서 야당과 타협하지 않고 국민여론을 쳐다보며 정치를 하는 태도는 유권자들이 선거 결과에 따라 대통령을 밀어줄 때라 여기는 임기 초반에는 효력을 가질 수 있지만 당장 임기 중반만 가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오늘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1면 탑 기사. 정국 파행의 우려를 담았지만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옹호하지는 못한다.

사실 ‘정치가 아니라 통치’라고 비판받은 이런 식의 태도에선 야당인 민주당 뿐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소외된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이 여대야소와 보수언론의 지원이라는 ‘좋은 구도’ 속에서 시작하고 있다고 하나, 대통령의 승부수가 잦아지면 어느 순간 유권자는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참여정부 시절 목도한 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의회정치의 중요성을 역설한 며칠 전 조선일보의 사설을 박근혜 정부 사람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 설사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 하더라도 그런 야당을 상대하며 나랏일을 이끌고 가야 할 최종 책임은 대통령과 여당에 있다. (...)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취임 후 6개월 내에 공약 대부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각오를 밝혔다. 박 대통령의 공약은 복지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것을 비롯해 국가 운영 틀을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공약들을 실천에 옮기자면 국회가 입법을 통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2월 27일자 조선일보 사설)

또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는 ‘정면돌파’란 측면에서 본인에게는 일관성을 가지지만 바뀐 입장으로 판단해본다면 모순적이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의회정치를 강조하며 ‘정면돌파’를 택했고, 대통령이 되자 ‘국민’을 거론하며 의회의 반대를 ‘정면돌파’하고 있다. 한겨레 사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까지 비판의 전거로 끌어들이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고를 하는 세태는 박근혜 대통령이 매우 편협한 길을 가는 상황에 대한 한겨레의 여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은 사심이 없고 올바른데 왜 몰라주느냐는 식이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으로 하는 것이지 진정성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 옳다고 우기면 그것이 독재요 아집이다.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못한 것을 야당의 일방적 발목 잡기로 돌린 것도 문제다. 부실 인선과 지각 인선으로 정부 출범을 지연시킨 장본인은 박 대통령이다. (...)

박 대통령의 집권 초 행태는 정치가 실종됐다는 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초와 닮았다. 이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에 취해 고·소·영 인사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무슨 일만 있으면 춘추관을 찾아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설명하기 바빴다. 이 전 대통령은 촛불시위로, 노 전 대통령은 재신임과 탄핵 파문으로 집권 초에 된서리를 맞았다.

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집권 초반 의욕이 앞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독주하다가 낭패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야당은 대통령을 견제하라고 있는 것이다. 야당이 대통령 뜻대로 모두 협조해 준다면 정치가 무슨 필요가 있나. 야당을 설득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상생의 정치는 말보다 실천하기가 백배는 어렵다.“
(3월 5일자 한겨레 사설)

정치인에게 “정치력을 발휘하라”고 조언하는 건 사실 “잘 좀해라”고 조언하는 것과 큰 차이 없다. 이는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을 때 정치평론가들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는 기본적으로 활동이요 실천이기 때문에 실제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

특히 하나도 타협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의 경우 ‘뭐라도 하려고만 하면’ 지금보다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지금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본인들의 판단이 옳다고 믿을 수 있겠지만 ‘87년 체제’ ‘5년 단임제’ 정권에서 그런 시기는 길게 가지 않는다.

길어야 2년, 짧게는 1년만 지나도 ‘대통령의 정면승부’에 유권자들이 피곤해하는 시기가 온다. 현행 헌법에는 ‘아버지’께서 전가의 보도처럼 내미셨던 긴급조치 발동권은 없다. 의회와 협력하고 협상의 묘를 익히는 것이 대통령 본인에게도 득이 되는 길이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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