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끄고 싶어도 끌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끝없이 기름을 붓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우병 쇠고기는 단지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 때문에 신음하는 모든 영역의 대표상징입니다. 쇠고기 너머에 한국사회의 모든 억압이 있습니다.

미디어 비평 매체인 <미디어스>는 이 가운데서도 특별히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의도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바른 언론은 사회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창이자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성장시키는 흙과 거름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의도대로 언론계를 재편하고 장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디어스>는 이런 일이 현실화된 한국사회를 콩트 형식을 빌려 2009년 시점으로 구성해보려고 합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은 아직 타결되지 않은 것으로 가정했으니 주의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미디어스> 관련기사를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편집자주>

2009년 4월, 대한민국 대통령인 나, MB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별장 캠프 데이비드로 1호기를 타고 날아가는 길이다. 아, 얼마나 가보고 싶었던 마음의 고향이자 사상의 엘도라도던가! 행여 흠집이라도 갈세라 선물 보따리를 무릎 위에서 내려놓지도 못하고 있지만, 콧노래는 연신 흘러나온다. 고소영·강부자·에스라인 치들은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달려가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때를 기다렸다. 1년을 꾹 참고 버텼다. 허벅지를 대꼬챙이로 쑤셔가며. 허벅지에 더덕더덕 덧붙인 대일밴드는 이제 자랑스러운 훈장이 되었다.

▲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창밖을 넋놓고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1년 전에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취임 100일도 안 돼 지지율은 10%대로 곤두박질치고, 탄핵 위협까지 받았을지 모른다. 양초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국민경제에 깊은 주름을 드리웠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아무리 급해도 철거 안 하고 아파트 지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뜯어낼 건 뜯어내고 쳐낼 건 쳐낸 뒤라야 새로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수많은 공사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터득한 경영술, 아니 통치술이다.

어라! 지나가는 뭉게구름 하나가 누군가의 얼굴을 쏙 빼닮았다. 그였다. 괴벨스(히틀러 나치정권의 선전장관)의 현신이자 허문도(80년 언론 통폐합의 주역)의 도반인 최시종. 그를 멘토로 둘 수 있었던 건 얼마나 홍복인가. 민심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힌 것도 1년 안에 ‘민심’의 ‘ㅁ'은 ‘MB'의 ‘M'이라는, 즉 ‘민심=MB心’이라는 등식을 만들 수 있는 이가 그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하기 위해 70년을 인고한 인물 같았다. 10년을 땅밑에서 유충으로 버티다 단 1주일을 울어젖히는 매미마냥, 그는 1년 동안 정말 엄청난 일들을 해냈다. 지나간 1년이 환등기 영상처럼 구름 위를 스쳐간다.

그 가운데서도 주인 없는 회사였던 KBS와 MBC에 주인을 찾아준 것은 최시종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업적이었다. 정말이지, 두 방송사 놈들은 머슴 주제에 주인 행세를 해도 너무 했다. 전임 대통령들도 이놈들 때문에 퍽이나 속을 썩였다. 뾰족수를 못 찾아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머슴들을 치기 전에 말 안 듣는 마름부터 쳐야 한다”는 최시종의 귀띔은, 정말이지 에스교회 천장에서 울려오는 복음과도 같았다. 그의 노익장은 불도저인 나조차 부러울 정도다. 그는 젊어서 동문수학한 KBS 이사장을 어느새 찾아가 “마름을 내치라”고 압박하는 뚝심과 순발력을 과시했다.

최시종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KBS 이사장은 자살골 넣듯, 그의 말을 세상에 슬쩍 흘려놓고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렇다. 공사는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다. 공구리를 쳐야 미장질도 할 수 있다. 오래전 점찍어놓은, 평소 “마름은 마름답고 머슴은 머슴다워야 한다”는 학술적 지론을 펼쳐온 학자를 이사장 자리에 앉혔다. 새 이사장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모호한 어록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렴, 그래야지, 알면 다쳐!

▲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털어서 먼지 안 나고 닦아서 때 안 묻어나는 건물은 없다. 최시종은 말했다. “각하껜 감사원이라는 초강력 먼지떨이와 걸레가 있지 않습니까.” 정기감사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곧장 KBS 특별감사에 들어갔다. 미싱하우스(물과 세제를 써서 하는 물청소를 이르는 군대 속어) 하듯 에프엠(Field Manual·야전지침의 약자)대로. 감사원은 손가락에 침 묻혀 닦아도 먼지 한 톨 안 나올 만큼, 그러나 딱 목표한 만큼, 털고 닦았다. “경영 상태가 방만하기 이를 데 없다. 방송사에 주인이 없고 사장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감사 보고서의 결론은 100점짜리 모범답안이었다. 역시 가장 좋은 개는 물라고 할 때 주저없이 무는 개다.

감사보고서가 나오자 조·중·동은 기다렸다는 듯 지면을 도배했다. ‘국민 등골 뽑는 KBS’, ‘주인없는 회사에 무능한 사장이 부른 재앙’, ‘KBS,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 ‘민영화, 극약처방 아닌 유일한 생존방식’…. 사방에서 KBS 사장 퇴진 압력이 밀려온다. 검찰도 국세청에 뒤질 수는 없다. 기다렸다는 듯 KBS 사장을 배임 혐의로 소환조사한다. 주인 없는 KBS에 주인을 찾아주는 기준은 역시 ‘비즈니스 프랜들리’! 그러나 아무리 프랜들리해도 KBS를 통째로 넘기기는 아깝다. 최시종은 인수위 시절부터 앞날을 다 내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KBS1은 우리가 갖고, KBS2는 제 주인에게 돌려주면 됩니다.” KBS2의 제 주인이란 언론 통폐합 전 TBC의 주인이었던 중앙일보다.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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