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다시 문화다'라는 진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문화다,라는 하나 마나한 말을 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정치’ 너머의 세계를 보다 굳건히 하지 않으면 다시 우리가 ‘정치’를 성취하기 더욱 어렵지 않을까 하는 어떤 불안한 예감 때문이다. 5년은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을 그럭저럭 모든 것은 다 패배하는 시절이라고만 떠들기엔 우린 아직 젊고, 우리의 마음만은 결코 패배(!)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매주 1회, 주말마다 <미디어스> 기자들이 돌아가며 ‘미디어스 컬트 칼럼;오덕어스'를 연재한다. 때론 오타쿠에 의한 오타쿠의 고백이 될지 모르고 또 어떤 때에 문화와 정치의 이질감을 날카롭게 횡단하는 한 자루의 '검'이 되길 소망한다. 그 주의 가장 ’핫‘한 아이템이라기보단, 끝내 ’핫‘하게 도래할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사(SCEA)의 새로운 게임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4(Playstation 4, PS4)의 일부 정보가 지난달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플레이스테이션 미팅 2013'에서 공개됐다. 이 자리에서 소니 측은 플레이스테이션4의 스펙과 새로운 컨트롤러 기능 등에 대해 발표했는데 많은 언론들이 '기대에 미흡했다'라는 악평을 쏟아냈다. 제품의 핵심인 본체 기능 등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된 것이다

물론 본체의 실물과 핵심 기능을 공개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 공개할 만한 수준으로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시기의 문제를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플레이스테이션4의 일부 기능 공개를 강행한 것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공개된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소니 측이 발표한 플레이스테이션4 컨트롤러. 중앙에 터치패드가 장착돼있다.

공개된 내용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플레이스테이션4의 중앙처리장치 설계가 변경되고 그래픽처리장치의 성능이 향상되며 대용량RAM이 장착된다는 것인데 이는 게임콘솔의 '데스크탑PC화'를 의미한다. 둘째는 멀티플레이 등에 필요한 기능을 SNS와 연동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굳이 표현하자면 게임 콘솔의 '소셜화'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소니사의 휴대용 게임 콘솔인 PS Vita와의 연동기능과 클라우드 서비스의 제공인데 이는 디바이스 간의 통합을 통한 게임 콘솔의 멀티미디어화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플레이스테이션4에 대한 소니 측의 이번 발표는 새로 나올 게임 콘솔의 기능 향상을 부각하려 한 게 아니라 소니가 앞으로 취할 정책의 큰 방향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게임 산업 전체의 미래와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소니라는 게임콘솔계 3대 기업 간의 힘겨루기 향방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게임 콘솔의 딜레마

게임 콘솔이란 오로지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기기를 뜻한다. 전통적인 게임 콘솔의 의의에 가장 잘 맞고 또 잘 알려진 것으로 1983년 닌텐도가 개발한 '패밀리컴퓨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때만 해도 가정에서 비디오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패밀리컴퓨터-북미쪽에는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으로 발매됐고 이게 국내에는 '현대컴보이'란 이름으로 들어왔다-나 세가마스터시스템(삼성 겜보이) 등의 게임 콘솔을 TV에 연결해 구동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이 점차 향상되면서 게임용 콘솔의 미래는 점차 불투명해지게 된다. 개인용 컴퓨터에는 기본적으로 모니터 등의 출력장치와 키보드, 마우스 등의 입력장치가 부착된다. 모니터가 해상도 낮은 단색만을 출력하고 마우스의 조작감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 비디오 게임에 최적화된 기기는 분명 게임 콘솔이었다. 하지만 3D까지 표현할 수 있는 비디오카드의 등장과 마우스 등 입력기기의 고급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오히려 이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데스크탑으로도 웬만한 수준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오로지 비디오 게임을 즐기기 위해 게임 콘솔에 추가적인 재정 지출을 하는 상황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게임 개발 업체들도 이러한 시류를 거부할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고급화되는 PC시장의 성장 속도를 게임 콘솔 제조사들의 신제품 발표 주기가 따라갈 수 없게 되자 한동안 비디오 게임 개발은 데스크탑용 버전을 중심으로 진행되게 됐다. PC용 게임의 개발은 어느 정도 이상 수준의 사양을 갖춘 PC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하기만 하면 동일한 운영체제의 체계에 따라 프로그래밍을 하면 됐기 때문에 개발사 입장에서도 작업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미디어 허브' 전략의 교두보로 삼고 있는 게임 콘솔 Xbox360.

특히 PC용 운영체제 시장의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사가 Xbox를 통해 게임 콘솔 시장에 뛰어들게 되자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북미의 개발사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용 게임과 마이크로소프트 Xbox용 게임을 거의 동시에 개발할 수 있었다. XBox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 "데스크탑을 게임용으로 개조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란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그 이면에는 이런 수익 모델을 고려한 조치가 있었을 것임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게임 콘솔 시장의 앞에는 존재 의의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자리잡게 됐다. 즉, 이제 문제는 'PC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흐름과 구분되는 게임 콘솔의 독자적 존재 의의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야 만 것이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는 Xbox 출시 이전부터 게임 산업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표명해왔다. 과거 PC용 게임을 설치할 때 거의 필수적으로 함께 설치해야 했던 도구 중 '다이렉트X'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게임 개발자와 운영체제, 플레이어를 효율적으로 이어주는 도구로 쉽게 말하면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체계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딜레마는 각각의 지점들이 동일한 음식 맛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자들은 '맥도날드 보광동 지점의 김철수씨가 만드는 빅맥을 먹으러 가자'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맥도날드 빅맥 먹으러 가자'는 정도만 생각한다. 어디에 있는 맥도날드건 빅맥의 맛은 똑같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맥도날드 본점에서 빅맥을 제조하는 절차를 표준화시킨 매뉴얼과 동일한 품질관리를 거쳐 대량생산을 통해 1차조리된 식재료들을 지점에 공급해야 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용 게임 개발에서는 이 역할을 '다이렉트X'가 담당했다. 이를 통해 윈도우즈라는 운영체제를 사용하기만 하면 어떤 부품으로 구성된 PC든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수준에서 비디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이로써 더 많은 게임 개발사들이 윈도우즈용 비디오 게임을 더욱 쉽게 개발하고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개념을 확장시켜 독립 콘솔화한 것이 Xbox인데, 애초에 Xbox는 게임 콘솔로서의 기능 뿐만이 아니라 가정 내에서 일종의 '멀티미디어 허브'의 역할을 담당할 것을 전제한 상태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구상이 필요했던 이유는 가정에서 보내는 여가 시간의 상당 부분이 TV에 할애되어 있는 상황이 당분간 바뀌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요한 라이벌 업체 중 하나인 애플사도 마찬가지의 수준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TV로 이어지는 사업 아이템들의 존재는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 마이크로소프트사측이 출시한 윈도우즈8이 탑재된 태블릿PC '서피스'와 자석 키보드들.

즉, 쉽게 말하면 PC용 운영체제 시장을 석권한 마이크로소프트가 TV를 중심으로 한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마련한 교두보가 바로 Xbox라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최근 내놓은 새로운 운영체제인 '윈도우즈8'은 운영체제 시장을 석권한 압도적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점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윈도우즈8은 데스크탑 PC용 운영체제로서 개발된 것이라기 보다는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기기의 운영체제로 개발됐다는 느낌이 강하다. 윈도우즈8을 탑재한 태블릿PC인 '서피스'의 등장은 이런 심증을 확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즉, 윈도우즈8의 등장으로 데스크탑, 태블릿PC, 스마트폰, Xbox가 모두 동일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상황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개발자들이 각 기기를 통해 구동되는 애플리케이션을 보다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컨버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제 자기 방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보던 영상을 태블릿PC로 이어서 보고, Xbox를 통해 거실의 다른 가족에게도 바로 보여주는 식의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시대가 개막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이런 흐름 앞에서 운영체제 시장을 갖지 못한 다른 게임 콘솔 개발 기업들은 무력해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경우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열세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결실을 일부 거두기도 했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닌텐도DS와 위(Wii)의 선전은 이러한 결실의 대표적 예이다.

닌텐도가 주목한 지점은 '새로운 재미'를 위해서는 십자막대와 버튼들로만 구성된 컨트롤러의 한계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닌텐도DS는 모바일 게임 콘솔로서는 최초로 터치펜과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돌풍을 일으킨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를 통해 이용자들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조작 방법을 응용하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위'의 경우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좀 더 확장시킨 것으로, 몸 전체를 이용하는 새로운 조작방식이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를 통해 닌텐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거침 없는 진격 앞에서 그나마 독자적인 자기 위상을 고수할 수 있었다.

▲ 닌텐도의 야심작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게임 콘솔 Wii와 동작인식컨트롤러.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새로운 동작인식 컨트롤러인 '키넥트'를 개발하면서 상당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제는 소니가 뭔가를 보여줄 차례였지만 플레이스테이션4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구상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번에 소니 측에서 공개한 플레이스테이션4의 정보들이 '운영체제'와 '새로운 컨트롤러'의 우위를 갖지 않은 상황임에도 마이크로소프트와 닌텐도의 전략에 각기 대당하는 방어적 자세를 취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 컨텐츠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 뿐인데, 국내와 아시아 일부의 국가, 북미권 소수의 마니아 시장에만 영향을 끼치는 수준으로 줄어든 일본의 게임개발 역량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과제일 것이다.

▲ Xbox의 동작인식 컨트롤러 '키넥트'를 활용한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는 광고용 이미지샷.

'콘솔 게임 시장은 이미 끝났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과거 '수퍼 마리오'와 '파이널 판타지'를 통해 닌텐도와 소니가 주도했던 비디오 게임 시장은 급속하게 파편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길은 보이지 않고 넘어설 장벽은 너무나 높다. 이렇게 또 하나의 시대가 오타쿠의 전유물로 퇴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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