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예시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여기 공통과 유사성에 의해 묶여진 각각의 집합이 있다. 첫 번째. 『<늑대소년> / <박수건달> / <7번방의 선물>』. 두 번째. 『<태극기 휘날리며> / <괴물> / <7번방의 선물>』. 미디어스 독자들께서는 이 두 가지 묶음 중 어느 쪽이 더 촘촘하고 유의미한 상관관계로 엮여져 있다 생각하시는지? 양자택일은 언제나 고민을 동반하는 일이지만, 베컴처럼 ‘난 둘 돠’ 같은 건 허락되지 않는다. 여기서 힌트. <7번방의 선물>은 지난 2월 23일 개봉 38일 만에 관객 천만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라고 한다면 당신은 곧장 천만관객의 교집합, 후자로 달려가시겠지만, 사실 이 힌트는 함정이다. 물론 <7번방의 선물>(이하 <7번방>으로 표기)의 천만 고지 등정은 흥미롭고 풍부한 함의를 가지는 사건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는 후자보다 전자의 상관관계를 염두에 둬야 한다. 말하자면 누구도 예단치 못한 이 사태를 <7번방>이란 개별 영화가 아닌,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거다.

 

다소 성급한 단언. 사실 나는 <7번방> 천만 관객을 떠들썩한 세론世論처럼 ‘이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예상 가능한 흐름의 지류이거나,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타당한 현상에 가깝다고 여긴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얘기다. 사람들은 <7번방>의 대성공이 ‘선물’을 넘어서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며 두 눈을 치켜뜬다. 하지만 이미 엇비슷한, 즉자적이고 혹은 가족적인 신파와 코믹 코드로 승부했던 <늑대소년>과 <박수건달>에 대해선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다. 두 영화는 작년 하반기와 올 1월 한 달 동안, 무려 700만과 400만여 명의 관객을 유치했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다면, 그 작년의 작년, 2011년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한 <최종병기 활>의 최종 관객이 역시 700만 명 선이었단 걸 떠올리면 된다. 역시 한 달 만에 4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한 <박수건달>의 흥행이 얼마나 큰 ‘이변’인지 실감하고 싶다면, 2011년의 400만 영화가 고작 5편이었다는 걸 상기하면 간단하다. 알기 쉽게 정리해보자. 2013년 현재, 한국영화계는 미지의 구간에 이미 진입하고 있다. 바로 사상 유례 없는 관객의 동원, 흥행의 시대다.

한국영화 추락과 반등, 그 부침의 연대기

한국 영화계는 그간 오랜 침체의 늪에 잠수해 있었다. 2001년 41.46%의 수익률을 기록했던 ‘한국영화’는 2006년부터 비탈길의 머리맡에 걸음을 디딘다. 2004년 명필름과 강제규필름, 세신버팔로의 합병을 시작으로 영화계엔 우회상장의 열풍이 내도하였다. LJ필름과 프라임그룹, 싸이더스 FNH와 KT, 제작사와 거대 자본의 결합 역시 도모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자금을 확보한 제작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신작을 발표하면서, 공급은 초과하기 시작한다. 숱한 영화들이 멀티플렉스 발권 코너에 진열될 겨를도 없이 모니터에서 이름을 내려야 했다. 숫제 상영기회를 제대로 가져보지도 못하고 막을 내린 영화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지속된 그 추락의 결과가 -43.5%라는 2008년 역대 최악의 수익률이었다. 이렇듯 제작사들이 곤욕을 치르는 동안 CJ, 롯데, 쇼박스 등 투자 배급사는 자체/공동 제작, 제작 대행 등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주도권은 배급사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캐스팅과 스텝 선정 등 제작과정 전반에 장악력을 확보해갔다. 그리고 이 불황의 질곡은 영화계가 제 살을 깎으며 반등의 자구책을 궁리한 시기이기도 하다. 경기의 하강과 함께 투자가들이 빠져나가면서, 한국영화는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줄였다. 손익분기점의 좌표를 하단으로 이동시키는 선택을 단행한 것이다. 마찬가지 프리프로덕션과 투자 역시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 한 문단, 씨네21 878호, “호황이다 큰소리 칠 수 있습니까” 중 발췌 인용하여 재서술)

깊숙하고 자욱한 진창을 어떻게든 건너는 동안, 악화된 수익률은 2009년을 기점으로 영(0)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2011년은 이런 회복세가 완연하게 외양을 갖춘 시기였다. 영화 진흥위원회, “2011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를 살펴보자. 2011년의 수익률 -4.6%는 2006년 이후 가장 희망적인 수치였다. 16편의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수익률 100%를 밟고 선 영화가 모두 9편이었다.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 역시 4년 만에 50%의 허들을 뛰어넘었다.

영화산업은 결국 2012년의 지반에 장대를 걸치고 거의 모든 측면에서 훌쩍 도약에 성공했다. 한국영화는 사상 최초로 한 해 동안 두 편의 천만 관객을 산파했다. 역시 사상 최초로 1억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이번엔 영화 진흥위원회, “2012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를 꺼내보자. 2012년, 무려 1억 1,461만 명의 관객이 한국 영화가 걸려있는 상영관으로 입장하였다. 한국영화는 13%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2005년 이후 7년 만에 적자의 고샅에서 몸을 빼냈다. 여기서 방점을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로 표기)에 두어선 안 된다. 1298만여 명을 동원한 <도둑들>부터, 4백5십여 만 관객을 확보한 <댄싱 퀸>까지. 9편의 영화가 4백만 관객의 능선을 등반하였고, 25편의 영화가 100만 관객을 성취했다는 사실에 따옴표를 쳐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먼저 이런 극적인 반등의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 그리고 과연 이것이 박스오피스 ‘버블’에 불과한지, 아니면 확실한 호황의 증거냐는 것이다. 제작과 배급 분야, 일군의 전문가들은 시스템의 안정과 정립을 성황의 이유로 꼽는다. 2012년의 ‘천만’ 영화 <광해>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불황을 이겨내며 정교해진 스튜디오의 감식안과 연출, 기획, 프로덕션, 배급 등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산업 시스템을 얘기한다. (무비위크 551호, “응답하라! 한국 영화 시장이 보내는 청신호” 인터뷰 중에서 발췌하여 재 서술) 같은 지면의 인터뷰에서 다세포 클럽의 장원석 대표 역시, 엄격해진 대형 투자 배급사의 시나리오 선택기준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롯데 엔터테이먼트 이진성 투자제작팀 과장도 같은 인터뷰에서, 대형 투자 배급 시스템의 안정화와 더불어, 산업 부문 전반의 성장을 주요 원인으로 제시한다. 그 외 많은 이들이 입을 모으듯, 불황의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한 영화계의 노하우와 구조적인 요인들 역시 도약의 동력일 게다.

 

<7번방의 선물> 그 ‘이변’의 진정한 의미

 

<7번방> 천만 관객 달성은 이런 연속된 현상의 이정표나 임계점의 돌파다. 여기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근래 들어 90년대의 귀환과 함께 티켓 파워를 거머쥔 3,40대의 결정권 행사다. <7번방>은 가족적인 신파를 뚜렷이 표지하며 극 중 용구의 딸 예승이처럼 아직 머리가 굵지 않은 자녀를 둔 중년층을 포섭한다. 맥스 무비에 의하면, 2012년 들어 40대 관객은 20대를 제치고, 30대에 이어 예매시장을 좌우하는 2인자로 등극했다. <7번방> 천만 관객이란 ‘사태’는 티켓시장의 실력자로 데뷔한 40대의 구매력이 외화된 단적인 현상이라 이해할 수 있을 테다.

두 번째론, 탄력을 받기 시작한 수요의 혈액이 장르의 외진 구석까지 관류하며 순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프로그래머의 언급은 나의 견해와 마주하는 지점이 있다. <7번방>의 흥행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족 영화 시장이 꾸준히 형성되고 있는 증거이며, 특정한 예외라기보다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씨네21 892호, “설날, 배우, 장르의 합작품” 중에서 발췌 인용하여 재서술)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과속스캔들>과 <헬로우 고스트>를 비근한 사례로 제시한다. 하지만 정서적 맥락이나 산업의 흐름이란 측면에서 서두에 언급한 <늑대소년>, <박수건달> 역시 주목해야 한다. 2012년 이후 흥행 시대의 개막이란 연대를 함께할 뿐더러, 굉장히 엉성하고 작위적인 설정에도 불구, 웃음과 신파를 노골적으로 부각한 전략이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렇듯 문법의 질량이 가벼운 영화들도 장점을 충분히 공인받고 관객을 배당받을 만큼, 수요의 덩치가 불어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7번방>의 흥행이 진정한 의미에서 미지의 단계라는 점이다. 사실 엄밀히 살피면 천만 영화의 ‘랑데부 홈런’은 비단 작년 한 해에 국한된 사건은 아니다. 한 끗 차이로 해가 엇갈렸지만, 이미 2003년 12월의 <실미도>와 2004년 2월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가 사이좋게 고지에 진입하였다. 2005년 12월에 개봉한 <왕의 남자>와 2006년의 <괴물> 역시 대략 6개월 간격으로 잇달아 흥행의 구장에서 만루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작년의 <도둑들>과 <광해>가 2개월 간격으로 ‘천만의 전당’에 등재된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7번방>은 또 다시 천만의 ‘이변’을 일으켰다. 진정한 전인미답의 국면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찬가지 올해는 1,2월 두 달 간 벌써 두 편의 영화가 4백만의 경유지를 지나쳤다. (<베를린> 6백 70만, <7번방> 1100만) <박수건달>의 370만과 <타워>의 300만 (영화 진흥 위원회 추산 2013년 1월 전체 흥행 상위 10위 기준) 신세계의 160만을 합산하면, 두 달 만에 ‘적어도’ 2500만 관객을 넘어선 셈이다. 이는 사상 최초로 1억 관객을 달성했던 작년 1,2월의 한국영화 누적관객 수 1800만여 명과 비교해도 그야말로 놀라운 성적이다.

그렇기에, <7번방>의 흥행 ‘이변’을 말하기 위해 <7번방>이란 개별 영화 안에서 내재적인 의미를 찾는 데 함몰되어선 안 된다. 모든 흥행작은 저마다의 흥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구조적 변화를 읽지 못하고 유독 <7번방>의 흥행 원인을 특별시하고 탐문하는 건 방향을 잃은 접근법이다. 이처럼 전체 산업의 총체적인 흐름 내에서 파악할 때 그 의미가 선연히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다. 단순 코미디 장르로선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이룩한 산업 내 개별 장르의 약진. 시네마 서비스, 쇼박스, CJ 엔터테이먼트에 이어 네 번째 천만 영화를 배출한 배급사 NEW의 성장. 역대 천만 영화 중 최소의 제작비로 최대의 수익률과 최고의 좌석점유율을 갱신하며 증명한, 개별 영화의 ‘콘텐츠’ 자체의 가능성. 역시 천만 영화 중 최초로 멀티 플랙스 계열사와 무관한 배급사를 통해 달성한 기록의 변별성. <7번방>과 관련된 모든 상황이 그러한 사건을 가능하게 한 영화산업의 폭발적 성장세와 공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7번방>이 일으킨 이변 아닌 이변을 싸구려 신파로 폄훼하거나, 의문시하는 건 의미 있는 태도가 아니다. <7번방>의 상업적 경쟁력과, 성취한 흥행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구조의 반증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정말로 필요한 질문은 <7번방> 천만 관객으로 표징되는 한국영화의 성장이 질적인 수준에 이르러 있는지 그 수위를 측량하는 것이다.

질적인 전화를 위한 구조적 과제

 

분명 2012년의 한국영화는 양적인 성장과 함께 장르적 다양성을 성취했다. 하이스트 무비로 굳이 분류할 수 있는 <도둑들>을 비롯, <광해>, <연가시>, <건축학개론>,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늑대소년>, <부러진 화살> 등의 작년 한국영화 흥행 10걸의 면모를 되새겨 보시라. 부채꼴처럼 확산하는 장르의 다양성은 올 1,2월에도 면면히 연속되고 있다. 다만 우리가 먼저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우선은 구조적인 문제다.

 

만약 한국영화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냐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이것은 공동으로 가득 찬 거품이 아니라, 질량이 배어있는 고갱이에 가깝다. 이미 영화 산업은 불황의 최저점에서 달음질친 경험이 있다. 업계관계자들은 이 흐름을 섣불리 소비하거나 안주해선 안 된다는 분명한 문제의식을 견지하고 있을 게다. 아마도 계속해서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작품들을 생산하려는 시도를 경주할 터. 중요한 건 그 노력의 방향이다.

여기선 현재 영화계를 좌우하는 가장 커다란 힘, 투자 배급사를 거론해야 한다. 이미 전문을 통해 인용한 작년 11월 씨네21의 특집기사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제작사와 투자배급사의 불균형한 역관계에 기인한 불공정한 계약관계. 그리고 제작과정에서의 간섭과 통제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불황의 시기를 거치며 마주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투자배급사들은 제작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실제 2012년의 천만 영화 <광해>는 외주를 발주하듯 배급사가 기획을 마친 후 제작을 의뢰한 케이스다. 상당수의 작품이 공동제작의 방식을 통해 주조되고 있다. 흥행을 위해 검증된 기획만을 선호하는 실정 하에서는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와 도전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 한 문단, 씨네 21 878호, “호황이다! 큰소리 칠 수 있습니까”에서 발췌 인용하여 재서술)

2011년과 2012년, 그리고 현재 2013년의 박스오피스 순위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2011년의 흥행순위 1위를 차지한 <최종병기 활>. 2012년의 천만 영화 <광해>. 2013년의 육백만 영화 <베를린>. 이 영화들의 공통점이 보이시는가. 모두 한 차례 표절시비로 홍역을 치른 작품들이다. 마찬가지, 롯데, CJ. 대형 투자배급사가 이 영화들에 관계하였다. 여기서 이 영화들의 표절 진위를 논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무용하거나 무력한 일이고, 섬세한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다. 다만, 혹 이것이 안전하고 검증된 기획을 선호하는 배급사들의 이해가 반영된 추세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분명한 건 이러한 현실이 작가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토양과는 성분의 차이가 있을 거란 얘기다.

또 한 여기엔 배급의 문제가 있다. 이토록 단 시일 내에 앞 다투어 몇 백 만 기록을 우습게 달성하다는 건, 관객들의 문화적 향유의 욕구가 팽배해있다는 반증일 게다. (그 원인은 경제위기로 인한 정서적 갈급일 수도, 혹은 작년 한 해 정치적, 문화적 사건을 극장으로 옮겨온 진지전으로 인한 것일 수도, 2013년과 문화적 친연성을 내화한 과거의 ‘신세대’ 현재의 40대 관객들의 부상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나름의 주제의식과 만듦새를 보유한 작은 작품들이 적당한 기회를 얻는다면, 관객들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얘기일 게다. 일례로 작년 한 해 <화차>가 240만 명, <피에타>가 60만 명, <두 개의 문>이 7만 명을 동원하였다. 그렇기에 양적인 성장으로 유입될 투자가 질적으로 전화하기 위해선 다양성과 공존이 보장되는 배급이 이뤄져야 한다.

 

‘7번방’에 입장한 천만 명이 잠시만 걸음을 모둔다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7번방>이 일궈낸 성공을 존중한다. 하지만 세간의 달뜬 찬사처럼, 이것이 '착한 영화'의 승리란 얘기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지적장애인의 정체성을 최루와 웃음의 소재로 도구화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엇비슷한 이유로 나는 앞서 동류로 구분하였던 <늑대소년>과 <박수건달>에도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근래 몇 달 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거쳐 간 이 영화들의 특징은 ‘정체성의 서사’다. 극적인 웃음과 눈물을 손쉽게 뽑아내기 위해, 동일자와 타자를 설정하고 그 차이를 선명히 부각하여 활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이 영화들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미디어스 지면을 빌어 상세히 제출하였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각 영화평의 링크를 제시하는 걸로 충분할게다. <늑대소년>(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216), <박수건달>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361), <7번방의 선물>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88) ) <7번방의 선물>을 비롯한 일군의 작품이 가능성을 개척한 만큼, 앞으로도 유사한 기획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화들이 전달하는 정서적 효용은 인정하되, 윤리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판단하고 지적하는 게 비평의 임무일 것이다. 그것을 위한 과제의 하나가, 천만 관객 <7번방의 ‘기적'>과 '착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교호하는 지점을 명철하게 성찰하는 것이리라.

천만 영화의 범람을 맞이한 거대한 변곡점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한국영화‘와 가까이에 있다. 영화산업의 호황을 이끌고 있는 우리들이, 좀 더 즐겁고 깊이 있는 작품들과 만나기 위해서라도 잠시 호흡을 모두고 이면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예컨대, 물경 일억 개의 티켓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해도, 낙수효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도 익히 알고 있듯, 제작 현장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중소 제작사들에게 구조적 배분이 수렴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7번방‘에 입장한 천만 명의 관심이 원기옥처럼 아주 조금씩만 모인다면, 생각보다는 많은 것이 바뀔지도 모른다.

 

필자> 일상과 세상의 경계를 모로 걸으며, 조심스레 두리번대고 글을 쓴다. 사회, 문화, 정치의 단층을 채집하여 살펴본 이면의 수런거림들을 블로그(blog.naver.com/yke0123)에 편철 중."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