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는 1928년 폴란드에 태어나 10세대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귀화한 다음,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7년부터 지미 카터 행정부의 안보담당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or)을 지낸 공산권 문제 전문가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소련의 붕괴(대실패)를 정확히 예측한 브레진스키

그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3년 전인 1989년에 발행된 ‘대실패(The Grand Failure: the Birth and Death of Communism in the Twentieth Century)'란 책을 통해 소련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자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기술한 바 있다. 그의 예측대로 소비에트연방은 해체되었고, 러시아는 시장경제로 이행하고 있다.

지금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60년 헌정사를 통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 (여론조사) 지지도가 20%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는 나라들을 통틀어도 이 같은 일은 처음인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늘을 찌를 듯한 환호 속에 등장한 뒤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대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경향신문 6월13일자 1면.
대충 훑어보고 꼽아 보아도 11가지는 되는 것 같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과 장관들 그리고 청와대의 핵심참모들은 길게는 1987년 ‘6·10 민주혁명’ 이후 20여년 동안, 짧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세상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근본적으로 바뀌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무려 1백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도 말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 등 수구반동복합체가 ‘잃어벌린 10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그들 마음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둘 일이다.

소통의 개념과 정의도 모르는 듯; 거짓말과 말 바꾸기

둘째, 이명박과 그의 참모들은 국민과 직접 혹은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소통’의 개념이나 정의조차 모르는 것 같다.

셋째, 난처하거나 불리한 상황에 몰리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거나 수시로 말을 바꾼다. 초등학생들도 금방 알아차릴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태연하게 한다. 일단 급한 위기만 넘기면 된다는 것일까? 오죽하면, 청와대 참모들 입에서 ‘오대수(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라는 얘기가 나왔을까!

넷째, 대통령과 참모들이 국민들에게 오만하기 짝이 없다.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안다. 남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CEO 대통령‘이라고 불러줘도, 대통령 자신은 “아닙니다. 저는 CEO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머슴 중의 상머슴’ 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게 상식이고 정도다.

다섯째, 모든 장관과 참모들을 부자들로 채웠다. 부자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돈을 버는 것을 나쁘게 볼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그것과 그 부자들을 나라의 살림을 맡은 중요한 직책에 등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존재(조건)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했던가?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도 않고, 있는 시스템도 무시한다

여섯째, 이명박 대통령은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도 없고, 애써 만들어 놓은 시스템도 무시하거나 무용지물로 만든다. 예산 낭비이자 직무유기다. 이전 정부들에서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스템들 중에서 활용하고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 지난 10일 저녁 세종로 네거리에서부터 시청 앞 태평로, 남대문 넘어까지 50만 시민이 함께 촛불을 들었다. ⓒ서정은
하나만 예를 들자. 국무총리실의 국무조정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청와대가, 그것도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독식해 버렸다. 그래서 일이 잘못되면 모든 책임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국무총리와 국무총리실이 잘 해 왔다는 것은 아니다.

일곱째, 일이 잘못되면 ‘일부 언론’과 전 정권에 모든 책임을 돌린다. 대통령은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다. 오죽하면 천재지변이 나도 임금님과 대통령의 부덕(不德)에 탓을 돌리겠는가? 공(功)은 국민에게 돌리고 책임과 허물은 공무원(목민관)들이 지는 것이다. 대통령은 최고의 목민관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모든 공직자(선출직, 임명직) 임용 시험에 필수과목으로 넣어야 한다.

여덟째, 제스처의 정치에 너무 의존하거나 너무 즉흥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 때 영어로 연설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의 대통령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책임있는 자리에서 영어를 가급적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와 김대중 대통령이 중년의 나이에 독학으로 어렵게 감옥에서 배워 구사하는 영어는 차원이 다르다.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몰라도 너무 몰라

아홉째, 지난 10년 동안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르듯이, 남북관계가 그동안 얼마나 실질적으로 바뀌었는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 문제는 남북관계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국정의 핵심 중의 핵심 사안이라는데 있다.

남북관계는 국정의 모든 것에 연결돼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며 평가를 유보한 태도와 이유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선거 때는 표를 의식해서 남북관계에 대해 이런 저런 부적절한 판단과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는 실상을 소상히 판단한 다음 정책과 방향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그것이 정도다.

남북관계나 주변 정세는 어느 일방 당사자가 마음먹는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근본적인 구조와 이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리고 4천7백만 국민들은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볼모나 다름 없다. 어설픈 정책으로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북한에 내주거나, 아니면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것이 남북관계다. 남북관계가 ‘게임의 법칙이나 요소’가 작용할 측면이 없지는 않으나, 게임의 논리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또한 남북관계다.

열번째, 경제정책도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 게다가 국제 경제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운하는 재앙이 될 뿐이다. 그렇게 토목 사업을 벌이고 싶으면, 차라리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왕복 8차선 화물전용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을 검토하는 편이 낫다.

최근 국내외 경기와 각종 지표가 급속도로 악화하는 바람에 서민들의 최소, 최저 생계를 돕기 위한 여러 정책을 발표한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근본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책이 아니라 즉흥적이거나 땜질식의 처방을 남발해서는 안된다.

방송 장악을 기도하는 순간 퇴진 위기 직면할 것

열한번째, 공영방송을 파괴하고 지상파 방송 전체를 장악하려고 한다. 이 또한 그동안 이명박 정권과 수구반동복합체가 90년대부터 시작된 독재정권을 상대로 한 방송독립 투쟁의 성과와 역사를 몰라서 하는 짓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공영방송과 지상파 방송을 장악하고 싶으면 해보라.

설령, 위에서 열거한 10가지 문제에서는 다 잘 한다손 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하는 '다공영(KBS, MBC, EBS) 일민영(SBS와 10개 지역민방)’ 체제를 파괴하고 지상파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 하나 때문에 이명박 정권은 망할 수 있다. 못 믿겠거든 그렇게 해 보라.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