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허태열 전 의원이 내정됐다.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인가? 감회가 새롭다. 이러한 인물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박근혜 당선인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다.

허태열 전 의원의 ‘입’은 유명하다. 워낙 화끈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00년 총선 당시 ‘지역감정 조장 사건’이다. 이때 부산 북강서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허태열 전 의원은 민주당 집권 이후 살기 좋아진 분 손을 들어보라고 한 후 ‘혹시 전라도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말해 지역감정을 부추겼고, 이러한 효과에 힘입어 의원에 당선됐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으로 표현되는 민주화 세력의 본거지 중 하나였으나 3당합당으로 인해 보수정치로 합류한 부산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 말은 한국 정치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지역감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좋게 말하면 영리한 행동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악하다는 것이다.

2009년에도 ‘허태열의 입’은 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부산에 총출동해 국정보고대회를 연 자리에서 ‘좌파 빨갱이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라며 ‘빨갱이인 좌파가 이명박 대통령을 흔들고 있는데 거기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게 민주당’이라는 발언을 내놓았다. 빨갱이라는 말은 정견이 다른 사람을 폭력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말이고, 이 말 때문에 정치사회적인 여러 피해를 받은 억울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더군다나 당시 민주당은 오늘날 상식적인 기준으로 보면 ‘좌파’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중도적 이념을 제시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러한 발언은 더욱더 비상식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허태열 전 의원 ⓒ뉴스1

2010년에도 그의 입은 대활약을 했다. 국회에서 열린 경제정책포럼에 강사로 나서 ‘의료까지 곁들여 그 안에서 뭐든지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관광지 조성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이다. 여기에 그는 ‘일본, 중국 인구가 15억이니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섹스프리, 카지노프리한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섹스프리, 카지노프리’가 워낙 자극적인 단어여서 ‘지금 막나가자는 거냐?’등의 극단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사실 이 발언의 핵심은 의료민영화를 통해 이를 서비스산업에 포함시키고 소위 ‘서비스산업선진화’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을 자극적으로 포장한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즉, 그의 발언은 그 말 자체로도 부적절했지만 정책적으로도 부적절했던 것이다.

이런 정도면 그저 ‘말을 영리하게 하는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허태열 전 의원의 입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입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다고 해서 그 입이 가만히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입은 살아 움직이며 온갖 독설과 망언을 쏟아낼 것이고 그럴 때마다 새 정부의 국정 수행 능력은 저하될 것이다. 야당은 지속적으로 각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고 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온갖 구설수에 시달릴 것이다.

새 정부 청와대의 임무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이 정책을 잘 집행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인데, 이러한 임무의 한가운데 허태열 전 의원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수석 등의 인사권에도 개입할 수 있다. 신설되는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겸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내에서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에 제멋대로 움직이는 입까지 달렸으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노다지(?)를 찾은 느낌이다. 허태열 비서실장의 계속되는 대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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