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다시 문화다'라는 진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문화다,라는 하나 마나한 말을 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정치’ 너머의 세계를 보다 굳건히 하지 않으면 다시 우리가 ‘정치’를 성취하기 더욱 어렵지 않을까 하는 어떤 불안한 예감 때문이다. 5년은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을 그럭저럭 모든 것은 다 패배하는 시절이라고만 떠들기엔 우린 아직 젊고, 우리의 마음만은 결코 패배(!)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매주 1회, 주말마다 <미디어스> 기자들이 돌아가며 ‘미디어스 컬트 칼럼;오덕어스'를 연재한다. 때론 오타쿠에 의한 오타쿠의 고백이 될지 모르고 또 어떤 때에 문화와 정치의 이질감을 날카롭게 횡단하는 한 자루의 '검'이 되길 소망한다. 그 주의 가장 ’핫‘한 아이템이라기보단, 끝내 ’핫‘하게 도래할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름다운 패배’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모든 패배는 아프고 끝내 삭여야 하는 것이고 다 잊었다고 생각한 때에도 불쑥 서러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패배한 순간 그걸 익숙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너무 많이 패배하고, 도저히 패배할 수 없을 것 같던 순간에도 패배하고, 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때에도 또 패배하고. 그래서 이제 지는 것이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닳고 닳아 지는 것 따위 이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할 때 쯤. 바로 그때쯤 우린 또 너무 아프게 패배하곤 하는 것이다.

▲ <굿바이 홈런> ⓒ시네마달 제공
<굿바이 홈런>은 야구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단 바로 이 패배, 지는 것의 숙명적 굴레에 관한 이야기다. 국내 최초의 ‘고교야구’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이 작품은 야구의 명가 그러니까 광주일고나 경남고 아니면 류현진을 배출한 동산고나, 것도 아니면 전통의 명가인 서울고, 신일고, 휘문고 같은 학교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야구에 웬만큼 익숙한 이들에게조차 낯선 이름인 원주고등학교가 이 다큐멘터리의 무대이다.

원주고 출신으로 프로야구 선수가 된 이는 지금은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는 안경현 딱 한 명이다. 야구에 관한 불모지라고 불리는 강원도에서도 원주고는 늘 강릉고에 가려지는 존재다. 만년 꼴찌. 원주고는 이 학교 교장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도내에서도 항상 꼴찌를 하는 야구부이다.

원주고 야구부는 말하자면 패배에 이골이 난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늘 지고, 너무 많이 지고, 너무 자주 지고, 이쯤이면 한 번 이겨도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승부에서도 늘 패배해왔다. 16:0으로 지고 7:0으로 지고 또 9:2로 진다. 그 패배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너무나 치열하며, 늘 아프고 매번 서럽고 언제나 시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패배를 삭이기엔 너무 펄펄한 열아홉의 청춘들이다.

자신이 마땅히 김광현이나 홍성흔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현실에선 26타석 연속 무안타를 받아들여야 하는 가혹한 현실의 아이들. 어쩌다 이긴 경기에서조차 “말도 안 되는 야구”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하는 만년 패배자들. 이 역설,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 패배에 익숙해져야 하는 존재들의 숙명을 따라 이 다큐멘터리는 잔잔히 나아간다.

▲ <굿바이 홈런> ⓒ시네마달 제공
환기해보자. 1등보다 아름다운 2등? 그런 건 없다.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이란 말은 이미 승부의 세계를 떠난, 수사의 영역이다. 원주고의 안병원 감독은 지고 있는 경기에서 마지막 순간을 앞둔 선수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친다. “게임을 뒤집든, 안타를 못 치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야구는 계속가야 하니까!” 이 말은 결국, 처연하게 어떻게 해서라도 이기자는 외침이다. 스포츠는 이겨야 하는 것이고, 승부는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질 수도 있다는 말은, 최선을 다하자는 말은 결코 져도 좋다는, 최고가 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스포츠는 옳고 그름을 겨루는 ‘가치’의 무대가 아니고, 오직 승리라는 목적의, 목적에 의한, 목적을 위한 그런 세계 속에서 완결된다.

이 딜레마 속에서 원주고 야구부 아이들은 ‘선수’가 아닌 ‘성인’이 된다. 진다는 것이 곧 도태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어른이 되기를 주저한다. 냉정하다고도 말하기도 뭣한 스포츠의 아니 삶의 이 평범한 속성 속에서 매일 지는 아이들은 그 마지막 승부의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 아이들이 하는 걱정은 너무 낭만적일 정도로 소박하다. “교복을 한 번 입고 싶다”는 것이고 간단한 문구도 읽지 못하는 영어 실력에 대한 자기 한탄으로 번안된다.

보편적 시민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교양과 지식의 숙려 시간을 제공받지 못한 채, 운동하는 기계로 키워졌지만 승리보단 패배에 더 길들여진 누군가들. 그건 원주고 야구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위험한 그라운드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로서의 만듦새에 그다지 충실하지 않다. 원주고 야구부의 주축들은 인천의 제물포고에서 밀려나 원주고로 전학 온 이들이다. 프로세계에서 탈락한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 세계에서부터 밀려난 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3학년이 되어 치른 첫 시합이 바로 제물포고와의 연습 경기이다. 이 경기에서 원주고는 16:0의 패배를 당한다. 감독의 카메라는 그 패배를 묵묵히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이 원주고 야구부와 함께 한 1년 동안 어찌된 일인지, 느닷없이 찾아오는 기적의 순간 마냥 원주고 야구부가 제물포고 야구부를 전국대회에서 이기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어쩌면 단기전의 승부였기에 가능했을 통쾌한 비현실이었다. 이 영화가 보다 스포츠 영화의 문법에 충실하고자 했다면, 감독은 제물포고에 16:0으로 패배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끝내 원주고가 제물포고를 3:1으로 이겨버리는 그 순간을 엔딩으로 장식했어야 옳다. 그리고 그들이 또 패배했단 얘기는 묻어둬도 무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그 편하고 감동적이며 능히 마땅한 스포츠 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다소 다층적인 문제의식으로 하지만 보다 담백하게 끝내 원하는 걸 쥐지 못한 선수들의 패배를 마지막까지 보여준다.

▲ <굿바이 홈런> 메인 포스터. <굿바이 홈런>은 소울다큐 제작, (주)시네마달 배급으로 2월14일 개봉하는 이정호 감독의 첫 장편이다. 물론, 상영관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 영화의 미덕은 이 지점에 있는지 모른다. 감독은 교실 밖의 그 아이들을 보며 끊임없이 교실 안의 문제를 호출하고, 승리 밖의 존재들에 특별한 의미나 승리의 감정을 투사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응시한다.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아무런 감흥 없이 “후회하지 않겠어?”라고 물을 뿐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지금 지더라도 영원한 패배가 아니라는 지극히 건조한 자각. 극적 환희를 선사하는 ‘굿바이 홈런’이 등장하지 않지만 과감하게 <굿바이 홈런>이란 제목을 붙인 건 오히려 그래서 묘하지만 서툰, 설렘이 일게 한다.

감히 ‘장인’이라고 불리며 혹독할 정도로 선수들을 다그친다는 김성근 감독은 2군 선수가 1군으로 올라가는 송별회 자리에서 “오늘까지는 내가 널 비난했지만, 내일부터는 세상 모두가 널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견뎌라. 오늘까지 그랬던 것처럼”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 <굿바이 홈런>은 한 야구부의 경로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종합적 질문을 던진다. 힘들고, 지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타협하고, 비굴하고 비루하여 포기하고 싶지만 끝내 가야하는 인생이지만 그 끝이 늘 아름답진 않다고. 그래도 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야구는 계속 가야 하는 것이니까. 아름다운 패배가 아닌 그저 또 패배한 것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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