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에서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로

* [인터뷰]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 백승진 사무국장 (上) 에서 이어집니다. (바로가기)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또 금속노조 가입을 알리는 기자회견 이후, 삼성 노조는 “왜 굳이 금속노조에 가입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삼성 노조의 주축이 되는 간부들이 에버랜드 리조트사업부 소속 노동자라는 점에서 착안해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가입한 공공노조에 가입할 것을 추천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백승진 사무국장은 “상급단체를 금속노조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부 조합원들, 노조에 접촉하는 분들 다수의 의견을 듣고 금속노조에 가입하기로 했다”며 “가입할 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지난 1월에 가입하게 됐다”고 전했다.

▲ 왼쪽부터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과 백승진 사무국장. 이날 인터뷰에는 금속노조 박정미 선전국장(왼쪽 세 번째)도 동행했다.ⓒ미디어스

삼성지회가 속한 금속노조 경기지부에는 SJM, 쌍용자동차 등 장기투쟁사업장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금속노조가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과의 싸움에 새로이 연대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조장희 부지회장은 “삼성지회의 주축들이 어떻게 조직화를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조합하느냐에 따라 잠재된 금속의 힘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투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노조원들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금속노조 가입 이후, 아마 사측에서 우리를 못 꺾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커졌을 거예요. (노조의) 싹을 잘라야 하지만 못 잘랐는데, (삼성 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뭔가 변화가 있을 테니까 단단히 준비하지 않겠어요? 양쪽이 말 그대로 사생결단입니다. 사측은 어떻게든 노조를 깨뜨려야 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정착시켜야 하는 상황이죠.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더 팽팽한 싸움이 될 것 같아 긴장하고 준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조 부지회장은 또한 “우리끼리 노조 활동을 한 2년 동안 금속노조과 민주노총의 현황, 노동계의 현실, 핍박받는 노동자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며 “노조를 설립하자마자 금속노조에 가입했더라면 ‘금속노조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며 기댔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조 부지회장은 “금속노조가 노동계에서 활동한 경험이 오래됐지만 삼성 노동자를 조직한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며 “새로운 투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속노조와 투쟁의 노하우(?)를 주고받는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 금속노조 인천지부 외 8개 단체가 14일 오전 인천시 남구 학익동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 예술작품 파괴 및 박영호 자본 규탄 기자회견’ 도중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각종 노동현안이 등장할 때마다 단단하게 연대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뉴스1

노조원 80여 명 중 금속노조에 1차로 가입한 이들은 10명 정도이다. 추가 가입은 이후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조 부지회장은 “무리하게 (가입을) 하다 보면 각 사업장에서 탄압이 분명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서두를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나머지 비공개 조합원들은 각 계열사에 소규모 조직 형태로 흩어져 있다”며 “그 분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개별적으로 가입 여부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노조에 가입한 계열사에 어떤 곳이 있는지 묻다가, 문득 깨달음이 들이닥쳐 말끝을 흐렸다. 인터뷰 시간 내내 노조와 접촉한 노동자들이 받는 불이익을 낱낱이 듣고 나서도 무신경한 질문을 했다는 데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들어왔다. 조 부지회장은 “거의 모든 계열사에서 가입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는 말로 대답을 갈음했다.

“삼성 노동자 대부분이 노조를 삼성이라는 나라 안의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왕족에 대한 반역자들이지요. 사측이 더 치열하게 공격을 할 테지만, 우리에게는 데미지가 없어요. 재판도 그렇게 많이 하고 징계도 당했으니 사측에서 할 건 다 했다고 봐야겠죠. 노조 간부 네 명 모두 그런 상황을 가정하고 노조를 준비했습니다.”

“민주노조를 지향한다면 삼성 노조와 연대해야 할 것”

현재 삼성그룹의 78개 계열사 중 9개 사업장에 설립된 노조는 삼성생명보험, 삼성정밀화학, 삼성화재, 삼성메디슨, 삼성증권, 삼성중공업, 에스원, 신라호텔, 에버랜드, 삼성노조 등 10개이다. 이 중 삼성노조를 제외한 9개는 활동이 거의 없다.

“제가 보기에 삼성에서 무노조를 경영 철학으로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족벌 세습’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노조가 있으면 간섭할 테니까요.”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월 2일 오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시무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부진 신라호텔 대표(왼쪽)의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뒤쪽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모습이 보인다.ⓒ뉴스1

삼성일반노조는 삼성 노조와 연대하고 있지만, 교섭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다른 노조와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1993년 삼성그룹 계열사 이천전기에 입사한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이천전기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해고당했다. 이후 삼성화재 해고자 한용기 씨가 일반노조에 합류하면서 두 명이 조직화사업을 하고 있다.

조 부지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정밀화학의 경우 삼성에 흡수되기 전 활동했던 노조가 삼성 흡수 이후 사측으로 성향이 바뀌어 회사 노조가 되었다”며 “지금은 ‘휴면노조’나 ‘페이퍼노조’로 불리는 그들이 민주노조 지향한다면 우리와 연락하고 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에버랜드 노조는 삼성 노조가 ‘단체협약 체결’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넘어야 할 벽 중 하나이다. 조 부지회장은 “십 년 간 저를 ‘맨투맨’으로 담당하던 인사팀 노무담당자 임도한 차장이 위원장이 되어 회사 지시로 에버랜드 노조를 만들었다”고 운을 떼었다.

삼성 노조의 출범 시기는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졌다. 2011년 6월에 에버랜드 사측 노조가 생긴 것 같다는 MBC 기자의 제보를 받고, 용인시청 기업지원과에서 사측 노조가 설립됐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가 이미 7월이었다.

조 부지회장은 “복수노조법 창구단일화 조항이 적용되면 삼성 노조가 교섭권을 놓칠 수 있는데, 사측이 바로 그 목적으로 노조를 만들었을 테니 노조 설립을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노조를 설립하고 보니 이미 6월 29일 사측 노조가 단협을 끝냈다. 2년 간 교섭권이 없어져 굉장히 허탈했다”고 전했다.

“고객 만족을 생각하는 후원주점 모델을 만들겠다”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지나고, 오는 2월 말이면 에버랜드 노조가 체결한 단협의 효력이 끝난다. 이에 삼성 노조도 3월부터 교섭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삼성 노조에 전적으로 우호적인 상황은 아니다. 법률적 검토도 해야 하는 등 불확실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조 부지회장은 “총력을 기울여 교섭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게 조직화와 연결”이라며 “사원들이 원하는 바를 교섭 요구안에 넣어야 하고 그것으로 ‘이슈 파이팅’을 하려면 먼저 사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단 교섭 자체를 현장의 이슈로 만들려고 합니다. 노조가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노동자들에게는 노조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예요. 교섭안의 내용에는 당연히 좋은 것만 들어갈 테니 ‘노조가 잘하면 이렇게 좋아지는구나’라는 인식을 심는 정도로 전진하려고 합니다.”

조 부지회장은 “징계·해고자의 복직 투쟁도 조직화 사업에 포함된다”며 “복직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대법원까지 가면 시간이 많이 걸릴테니, 조직화 과정에서 단협에 승산이 있게 만들어 교섭안에 복직 요구안을 넣으면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권영국 변호사가 지난 2012년 10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쌍용차 해고자 문제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권영국 변호사는 소송 준비를 돕는 등 삼성 노조와 적극적으로 연대해 왔다.ⓒ뉴스1

삼성 노조는 삼성 노조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시민단체 및 교수층과 새로운 연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조 부지회장은 “백혈병 피해자들도 하나같이 ‘노조가 없기 때문에 피해 발생 예방이나 피해 후 대책과 조치가 미흡했다’는 데 동의한다”며 “삼성 노동자들이 편하게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이들은 또한 삼성 노조 간부 4명의 독특한 이력을 살리면서 ‘고객 만족’을 추구하는 후원주점을 여는 것으로 재정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조장희 부지회장은 홀 지배인, 박원우 지회장과 백승진 사무국장, 김영태 회계감사는 호텔조리학을 전공한 주방장이다.

“작년에 희망식당 ‘하루’에서 일일 호스트가 되어 메뉴를 정하고 음식도 만들었는데 참 좋았어요. 아쉬움도 조금 느꼈는데, 우리가 아무래도 서비스 기업에서 일하다 보니 고객 만족도를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요. 질 높은 후원주점 형태를 만들어서 전파하고 새로운 모델을 성공시키고 싶어요.”

“누구도 대신 나설 수 없어…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노조 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왜 사람들이 노동운동에 무관심한가’라는 화제로 이어졌다. 조 부지회장은 “삼성 노동자뿐 아니라 2~30대 젊은이들이 노동 운동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저뿐만 아니라 노동계 사람들이 많이 느낄 것”이라며 “어디 가든 비정규직인 88만원 세대는 40대인 저보다 더 힘들테니 ‘풍족해서’ 관심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 “저희를 ‘선구자’라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십 년 전부터 사원들을 대신하던 버릇이 지금 노조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죠. 계속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 나갈 겁니다.”ⓒ미디어스

조 부지회장은 그러나 “노조를 준비할 때 노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삼성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많이 이야기했다”며 “‘구애’하듯 진심을 담아 계속 설득한다면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노조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정하되 절망하지 않고자 하는 의지가 묻어났다.

오는 25일 출범할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기존 여당과 기업의 관계를 볼 때, 박근혜 정부 5년은 빈말로도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조 부지회장은 그러나 “어떤 정권이 노조 활동에 더욱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설령 민주당 정권이 출범했다 한들 삼성 문제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부분은 없을 것”이라며 “결국 노조를 구성하는 주체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희를 ‘선구자’라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십 년 전부터 사원들을 대신하던 버릇이 지금 노조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죠. 계속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 나갈 겁니다. 정부에 기대하는 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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