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무노조 경영’ 철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 끊임없는 싸움을 계속해 오던 삼성 노조는 지난 1월 17일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이에 따라 삼성 노조의 이름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로 바뀌었다. 노동계의 대표적 ‘강성’으로 분류되는 금속노조가 삼성 노조의 상급단체가 되면서, 삼성 노조는 투쟁의 새로운 원동력을 얻었다.

▲ 금속노조 경기지부와 삼성지회,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노동계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정문 앞에서 삼성 노조의 금속노조 가입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삼성전자 부당해고자 박종태 씨 트위터(@jongtaes)

금속노조 가입 기자회견 이틀 뒤인 지난 6일, 용인 에버랜드 앞에서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과 백승진 사무국장을 만났다. 아직 노조 사무실이 없는 터라, 인터뷰는 에버랜드에서 멀리 떨어진 인근의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삼성 노조가 몇 차례 삼성에 공문을 보내 사무실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는 후문이다.

‘삼성 노조의 이름만 듣고 전 계열사를 아우르는 큰 조직을 상상했다’는 말에 조장희 부지회장은 “전 계열사를 아우르려 하는 조직”이라며 웃었다. 이윽고 조장희 부지회장은 2002년 노사협의회 노동자위원 재임 시절부터 2013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노조 결성 과정에서 겪은 우여곡절을 담담하게 짚어 내려갔다. 말주변이 없다며 수줍어하던 백승진 사무국장도 곧 거침없이 그간의 속사정을 풀어 나갔다.

껍데기뿐인 노사협의회…노조 결성을 결심하다

본디 “나서거나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재미있고 편하게 사는 인생을 추구한다”는 조장희 부지회장은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아르바이트생 시절을 거쳐 정규직 사원으로 일하면서, 구성원을 찍어 누르는 삼성 내부의 수직적인 문화에 불만을 느낀 것도 한몫했다.

2002년 당시 사원을 대변할 수 있는 기구는 노사협의회뿐이었다. 조 부지회장은 자연스럽게 노사협의회 노동자측 대표로 입후보하기로 결심했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경선 없는 단독 출마가 이전까지 노동자위원 선출 선거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사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노동자 3명을 입후보시켰다. 표가 분산될 것 같다는 판단에 이르자 후보 2명을 사퇴시켰다.

후보가 4명에서 2명으로 압축된 후, 회사 차원의 ‘낙선 운동’도 서슴없이 이루어졌다. 조 부지회장은 “부사장이 유권자들을 불러서는 대놓고 ‘저 사람을 찍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며 “나중에 사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널 찍지 말라는 이유가 궁금했다’고 한다. 제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측의 태도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라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성한 노사협의회의 모습은 조 부지회장의 상상과 달랐다. 조 부지회장은 “첫 노사 정기회의에 들어갔더니 차만 마셨다”며 “사측 위원에게 ‘치열한 노사 대립이나 안건도 없느냐’고 물으니 ‘일단 밥 먹으러 가서 술 한 잔 하면서 건의사항이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회의에 참석하기 전 노동법을 공부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던 조 부지회장으로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노사협의회는 노사 동수 9명으로 구성됐어요. 사측에서는 전무나 상무를 위원으로 임명하지요. ‘노사협의회’라고 하면 평등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노사 간의) 밸런스가 맞춰진 줄 알았는데 근무지와 다를 바 없었어요. 사측 위원들은 (노동자들이) 업장에서 평소에 보지도 못하는, 아주 높은 상사니까요.”

당시 상황에 대해 백승진 사무국장은 “노사협의회의 노동자측 위원은 모두 사측 위원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안건을 발의해 투표하면 노동자위원 중 부지회장 혼자 다른 의견을 냈기 때문에 투표를 하는 의미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협의회 내에서 조 부지회장 혼자 ‘강성’으로 노조위원장처럼 활동했기 때문에 신임도 얻고 따르는 사람도 많아 사측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왼쪽)과 백승진 사무국장. 조장희 부지회장은 해고되었고, 백승진 사무국장은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받은 상태이다.ⓒ미디어스

노동자위원 선출 선거에서 3선을 한 조 부지회장에게는 2년씩 세 번, 총 6년의 임기가 주어졌다. 그동안 조 부지회장은 전무나 상무, 사업부장 등 현장 근로자들이 ‘하늘처럼 받드는’ 이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제 목소리를 냈다.

“제가 (노사협의회에) 가서 큰소리를 내고, 말이 안 통하면 고발하기도 하니까 블랙리스트에 올랐죠. 이 때 저를 ‘심하게’ 도운 친구들이 노조 간부들입니다. 지금 삼성 노조의 지회장, 부지회장, 회계감사, 사무국장 네 명이 도매금으로 문제 사원으로 분류됐죠.”

결국 2008년 4선에 도전한 조 부지회장은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물론 제가 부족했던 탓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저와 친한 사람을 다른 부서로 전출시키면서 선거 때마다 물갈이를 하면 유권자가 바뀌니까요.”

6년의 임기 동안 조 부지회장은 “노동자위원 9명 중 내 편을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며 “한 명의 동지를 만들고 싶은데 회사가 계속 회유해가는 일이 6년 동안 반복되니까 상처도 받고 힘들었다”고 전했다. 노사협의회에서 느낀 한계와 벽은 자연스럽게 노조 결성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노조 설립 준비하는 이들의 방패가 되겠다”

삼성 노조는 지난 2011년 7월 19일 조 부지회장을 비롯한 간부 4명으로부터 출발했다. 2013년 현재는 비공개 조합원까지 포함해 전체 조합원 수는 80여 명에 이른다. 전 계열사를 통틀어 삼성 노조에 가입하기를 원하거나 사측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삼성의 복리후생과 급여 수준이 좋아서 사원 스스로가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고 하지만 제일 잘 받는 소수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계열사, 사업부, 사원 개인별로 등급을 나누면 잘 받는 사람과 못 받는 사람의 격차가 큽니다. 또 돈은 둘째치더라도 숨이 막힌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들은 물 밖으로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비공개 조합원’이라는 말은 삼성 노조의 특수성을 대표적으로 반영한다. 조 부지회장은 “노조와 접촉하는 노동자는 즉각 인사팀에 불려가 ‘취조’를 받거나, 심지어 전출을 당하기도 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노조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자연스럽게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린 지난 2012년 7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신관 제1세미나실에서 고 황민웅 씨의 유가족이 발언하고 있다. 이번 대회를 개최한 통합진보당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 백혈병·직업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지금까지 56명에 달한다고 밝혔다.ⓒ뉴스1

조 부지회장은 “노동계, 국민, 삼성 노동자들이 삼성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다. 아주 무서운 의식”이라며 “삼성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불산 누출 사태, 백혈병 피해자, 무노조경영 문제 등을 옹호한다”고 개탄했다.

조 부지회장은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수십만 삼성 노동자 중 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방패막이가 되어 미리 어려움을 겪으면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앞서 2~30년 간 삼성그룹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탄압받은 사례를 빠짐없이 검토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대응법도 만들었다.

‘노조 깨기’, 그 유구한 전통에 대하여

사측이 노조원을 납치·감금하는 극단적인 사례는 오래 전 자취를 감추었지만, 미행과 감시는 노조 설립 초기에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노조 설립 이후 에버랜드 시설 내에 3개월 간 새로 생겨난 CCTV 카메라의 수는 160대에 육박한다. 노조원들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포스트마다 차들도 세워져 있다.

백 사무국장은 “새로 생긴 종합상황실에서 순환근무를 선 현장 책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장비의 성능이 경찰청 교통상황실보다 대단하다고 한다”며 “상황실은 에버랜드 입구 쪽에서 직선거리로 5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노조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소식이 언론에 의해 알려진 뒤, 노조원들은 미행당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2011년 7월 초, 노조 간부들은 노조 설립 시기 등을 정하는 미팅을 마치고 나오던 중 미행 차량으로 의심되는 검정색 렌터카와 마주쳤다. 곧 미행 차량과 노조 간부들의 ‘빗길 추격전’이 이어졌지만, 미행 차량이 빨리 도망친 터에 탑승자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삼성의 노조 전담 인력은 에버랜드 리조트사업부뿐만 아니라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각 사별 인사팀까지 포괄한다. 이들은 삼성 노조가 기자회견을 하거나 선전전을 벌일 때 주변 상황을 관망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 지난 2012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삼성노조의 모습.ⓒ삼성노조 트위터(@samsungnojo1)

조 부지회장은 “삼성전자 인사팀 직원들까지 와서 에버랜드 쪽 사람들과 공조하는 것이 마치 현상수배범이 나타났을 때 여러 경찰서가 힘을 합치는 것 같았다”며 “집회나 이동을 할 때 새까맣게 몰려와서 위축시키려 한 듯하다”고 돌아봤다.

지난 4일 금속노조 가입 기자회견 당시의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백 사무국장은 “에버랜드 정문 쪽 출구의 셔터는 내려가 있고 사복을 입은 직원들이 굉장히 많이 포진해 있었다”며 “직원들은 원래 오전 9시 30분까지 순차적으로 출근하는데, 전날 전화를 받고 7시 30분까지 출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을 담당한 직원들은 기자회견 며칠 전 호암미술관 옆 삼성인력개발원에 모여 따로 교육을 받기도 했다. 백 사무국장은 “노조 간부들의 사진을 프로젝터로 하나씩 쏘면서 징계 내역을 알려주고,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투쟁 현장을 보여주면서 부정적인 의식을 심었다”이라며 “에스원과 에스텍(삼성그룹 경비업체)이 지키는 1차 저지선이 뚫리면 노조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현장 담당자들이 막아야 한다고도 가르쳤다”고 전했다.

백 사무국장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일부 직원이 ‘별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말했는데 사측이 이것을 노린 것 같다”며 “삼성 노조 때문에 피곤하고 힘들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대표적 ‘노조 깨기’ 방식이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소송이었다. 소송이 30건에 이르는 탓에 이들은 휴일까지 반납하고 소송에 매달려야 했다. 소송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사측은 조장희 부지회장을 해직하고 백승진 사무국장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는 등 경제적인 압박 수단도 사용했다.

그러나 조 부지회장은 “사측이 언론에 ‘삼성 노조가 오래 못 갈 것이고 노동자들의 호응도 받지 못할 것’이라며 자신 있게 떠들었지만 사측의 바람일 뿐”이라며 “돈은 없지만 돈만 가지고 싸우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 [인터뷰]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 백승진 사무국장 (下) 로 이어집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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