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 위원장 ⓒ MBC 노보
"그곳은 무덤이야"

제10기 MBC 노조 집행부를 설명하던 MBC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했던 '170일' 파업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와 함께 MBC 정상화를 달성해야 하는 의무 모두를 짊어 졌기 때문에 "무덤"이라고 표현한 것일 터. 새로운 집행부가 짊어진 무게와 무관하게 노동조합은 존속돼야 한다. 권력에 의해 언론이 마비된 상태에서 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언론노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MBC노조와 그들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6일, MBC 1층 로비 <민주의 터>에서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고자 했던 9기 노조는 굵직한 역사를 남기고 떠났고, 바통을 이어받은 10기는 '담담'하게 출범했다. 이성주 새 노조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담담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가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농부'를 자처한 이성주 위원장 만나기 위해 <미디어스>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를 방문했다. 이성주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겪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우리 스스로 강해질 수 있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 위원장은 지난 1년의 과정이 조합원들에게 큰 상처의 시기였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간의 투쟁이 남긴 씨앗이 차디찬 눈 밭 아래 깊이, 그리고 단단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며 '170일 파업'에 의미를 부여했다.

MBC가 흔들리고 있다. 이상호 기자가 해고됐고, 최일구 앵커는 MBC를 떠났다. 요원해 보이는 MBC 정상화를 위한 노조의 해법이 궁금했다. 그는 "MBC가 구성원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노조에 대한 매도가 아닌 대화를 위한 MBC의 전향적 자세가 정상화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를 악의적 집단을 매도하기보다 협상의 파트너로서 대화의 창구를 열고 해직자 문제를 같이 고민해보자는 것이 이성주 위원장의 생각이다.

9기와는 또 다른 결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까? 이 위원장은 사측과의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보도의 공정성'은 사수할 것이라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과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은 노조의 시작이자 끝" "일상의 투쟁에서 가장 집중해야 할 부분이 보도의 공정성 사수"라고 밝혔다.

김재철 사장 배임 혐의에 대해 MBC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한 것과 관련해, 이 위원장은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는 것과 '무혐의'는 명백히 다르다"며 단호하게 비판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김재철 사장은 무엇이 명예를 지키는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이성주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며 다가올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와도 같았던 정권 실세들의 만행을 묵인하고, 미디어 장악에 혈안이 된 MB식 '언론관'과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의 '언론관'은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게 이 위원장의 분석이었다. 이어, 그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MBC 노조의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싸움을 할 것"이라며 박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근혜 당선인은 과연 공약을 지킬 수 있을까? 그가 공약을 지키기 위해선 MBC 노조를 비롯한 언론 노동자들의 냉철한 감시와 비판이 필요해 보인다. 아래는 이성주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

◈"MBC 정상화의 시작은 노조에 대한 MBC의 태도"

미디어스(아래 미) : 9기 MBC 노조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어떠한가?

이성주(아래 이) : 9기는 힘든 시기에 집행부를 맡았다. 시작부터 굉장히 어려웠다. 파업은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기 위해 9기 노조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1년 단협 체결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170일이라는 유례 없는 파업을 이끌었다. 조합원들이 끝까지 대오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조합 집행부들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70일 파업의 성과와 결실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앞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회사에서 조합원들에게 소송을 걸어놨고 가압류가 걸려 있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어깨가 조금은 무겁다.

미 : 10기 노조위원장으로서 어떤 방향으로 노조를 이끌 계획인가?

이 : 공정방송을 지켜내고 조합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기본 목표이다. 그런 목표에 충실하는 노조가 되는 것이 대원칙이다. 그 방법은 당면한 시기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한 해는 모든 것을 다 했던 투쟁이 있었다. 현재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이제는 조합원이 겪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단계를 밟아야 할 것이다.

미 : 현재 조합원들의 피로감은 어떠한가?

이 : 170일 동안의 파업이 있었고, 그동안 조합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서 답을 못 찾는 사람들이 많다.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현장에서 일을 못하고 있으니까. 나 역시도 위원장 취임 직전까지 신천에서 교육을 받았다. 일부 조합원들은 우울증도 걸리고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멀쩡한 상태였던 조합원들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해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상호 기자는 해고됐고 최일구 선배는 사표를 낸 상황이다. 조합원들이 정신적인 한계에 봉착했다.

미 : 그렇다면 '해직자'와 '좌천된 조합원'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 : 완벽한 해결책을 알고 있다면 점집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웃음) 해직된 사람과 좌천된 이들이 가장 많은 곳은 뉴스와 시사교양 부문이다. 예능과 드라마의 시청률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지만, 이 두 부문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MBC 정상화는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MBC가 노조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MBC는 아직도 노조를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지난 MBC 특보에서도 파업 기간 동안 전임간부들이 1억을 받았다며 허위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 바로 잡아달라고 공문을 보냈음에도 답이 없다. 노조를 사악한 집단으로 매도하기 바쁘다.

지난해 회사가 흑자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MBC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다시 노조와 대화를 해야 한다. 사측이 구성원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MBC의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미 : 해직자들은 현재 소송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 MBC가 조합원들을 해고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사법부가 하겠지만, 판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례로 부당전보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6개월이 지나도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전에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 노조의 역할이지만 노동법이나 단체협상 등의 테두리 안에서 당장의 성과를 내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다. 단협도 효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고.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결국 사측의 태도 변화와 대화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할 것이다.

▲ 이성주 신임 MBC 본부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언론노조

◈"시용직, 차별해선 안돼…내몰린 이들 배제한 경력채용 문제있어"

미 : 시용직 인력과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또, 이들이 제작하는 뉴스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 : 어떤 과정과 면접을 통해 이들이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들에게도 노동조합의 문은 열려 있다. 다만 공정한 보도를 위해 철저한 잣대로 자질을 검증할 필요는 있다. 그게 시용직이든 아니든. 그간 이 분들이 보도한 뉴스가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보도의 공정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함에도 MBC 뉴스는 많이 망가졌다. 그럼에도 공영방송이라는 기둥에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른 잣대로 차별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미 : 시용직 인력 중에 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없는가?

이 : 없다. 시용 뒤 정식으로 채용되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 : 조합원들이 현업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MBC는 경력직으로 30명에 가까운 인력을 충원했다.

이 : 내몰린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런 이들이 100명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사측은 경력직 사원을 뽑아 자리를 메우고 있다. 이런 정책이 MBC 정상화 측면에서 옳은 게 아니다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팽배한 것 같다. TV에 익숙했던 얼굴들이 사라지고, 간판 기자·앵커·아나운서들이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더 잘 느낄 수밖에 없다.

경력으로 채용된 이들은 현재 연수 중에 있다. 원래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노동조합이 연수에 가서 소개도 하고 교육도 하는 시간이 항상 있었다. 이번에도 신입사원 교육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사측은 단협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조 교육이 필요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조합은 회사에 들어온 모든 분들에게 공평하게 다가가야 한다. 사측의 이러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 "4대강 특종이 지역 MBC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미 : MBC <뉴스데스크>가 망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 : 현장에서도 많이 듣고 있다. 출마를 준비하면서 지역 지부를 다녀왔는데, 한 지부에 계시는 보도부장님이 터놓고 말씀하셨다. 본인이 과거에는 다른 채널을 보고 있는 식당에 'MBC 뉴스를 보셔야지'하며 식당 주인을 설득했는데, 최근에는 그렇게 하질 못한다고 하더라. 서울에서 만드는 리포트들이 다뤄야 할 보도를 전혀 다루지 않기 때문에, 뉴스의 가치가 너무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현 사태를 더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MBC 경영진은 MBC 뉴스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 : 이와 관련해 10기 노조는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이 : 기사들을 끊임없이 보고 거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비평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전달하고 싶다. 최근 4대강 관련한 검찰 팀의 특종도 20번째 꼭지로 나가 지역에는 보도가 알려지지도 못했다. 이에 대한 담당자들의 설명은 명확하지 않았다. MBC 뉴스가 뉴스답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10기 노조는 민실위 활동을 대폭강화할 생각이다. 지금은 파업의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뉴스 모니터를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시기이고 회사 측도 이런 부분을 노조에 기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투쟁에서 가장 집중해야 할 부분이 보도의 공정성 사수 아니겠나?

미 : '김현희 대담' 같은 경우 보도의 구성원이 아닌,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많다.

이 : 여당 추천 김광동 이사와 인터뷰한 <미디어스>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다. 김광동 이사는 별 문제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더라. 하지만, 노조는 이런 정치권의 개입을 막기 위해 출범한 것 아닌가? 1987년 명동에서 투쟁하고 있는 이들을 취재하다가 MBC 보도차량이 부서지는 수모를 겪고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노동조합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노조의 시작이자 끝은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과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뉴스는 보도국 구성원들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을 정권이 흔들면 안 된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는 지켜져야 한다'는 김 이사의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잣대가 시대에 따라 너무 달리 적용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 김재철 MBC 사장 ⓒ뉴스1

◈ "김재철 사장, '무혐의'와 '불기소 의견 송치'는 달라"

미 : 김재철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 :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는 것과 '무혐의'는 다르다. 이 자리에서 혐의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회사 측에서 제출한 자체 감사 보고서가 무리가 없었다면, 방문진의 반발과 감사원의 고발 조치는 없었을 것이다. 경찰이 노조가 제기했던 문제를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것은 아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다. KBS 정연주 사장 때와는 확연하게 국가기관의 잣대가 다르지 않나?

미 : 김재철 사장이 또 다시 민영화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 보는가?

이 : 김재철 사장의 임기는 2014년 초까지이다. 민영화 논의나 MBC 구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힘들 것이다.

미 : 새 노조위원장으로서 김재철 사장에게 하고픈 말은 없는가?

이 : 김재철 사장에게 독한 말씀을 드리고 싶지 않다. 김재철 사장의 생각을 알 수 없지만, 노조에 대한 분노가 쌓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장으로서 명예를 남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셨으면 한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순리를 지키는 것인지 고민을 해보셨으면 한다. 조합 집행부들은 목숨을 내놓고 올라왔다. 엄청난 보복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각오하고 올라온 것이다. 그동안 김재철 사장은 직원들을 많이 괴롭혔고 원하는 만큼 보복 인사도 했잖나. 이제는 좀 다른 생각을 하시는 게 어떨까? 이게 김 사장에 대한 마음이다.

◈ "박근혜는 이명박과는 다를 것"

미 : 오는 25일이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은 방송 구조의 개편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 : 개인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기대를 하는 측면이 있다. 워낙 이명박 정권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사슴을 말이라고 일컫는 이들이 많았다. 방송사들의 연대 파업도 유례 없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관이 박근혜 정권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당선인이 원칙을 그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 박 당선인이 공공부문 낙하산 인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더라. MBC와 YTN은 아직도 그런 낙하산 사장들이 있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다면 MBC 노조의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싸움을 할 것이다.

미 : MBC노조위원장으로서, 공정방송을 위한 언론인들의 투쟁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 : 각 언론사 조합원들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할 것이다. KBS의 공추위와 MBC의 민실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정보도를 위해 고민하는 것도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상급단체인 언론노조와의 협의도 고려해야 할 것이고. 지난 1년 연대파업을 했던 경험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존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KBS의 김현석 위원장과 YTN 김종욱 위원장은 취재 현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분들이다. 함께 해결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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