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의 복수가 시작됐다. 방법은 바로 자신의 쌍둥이 형 차재웅 변호사로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차재웅 변호사는 하류 대신 수애의 의붓오빠에게 살해당했고, 이 사실을 알고 난 하류는 주다해에 대한 복수를 위해 형의 삶을 대신 살기로 했다. 전설의 설계사 엄삼도가 그려낸 그림이었다.
11일 방영된 <야왕> 9회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날 하류는 출소를 앞두고 교도소에서 쌍둥이 형을 만났고, 며칠 후 교도소를 나왔다. 출소 당일 형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했으나, 주다해의 의붓오빠가 차재웅 변호사를 하류로 착각하여 납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목격한 엄삼도와 하류가 그 뒤를 쫓았으나 이미 차재웅 변호사는 주다해 의붓오빠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였다. 재회에서 죽음까지 불과 몇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엄삼도의 설계는 치밀하게, 그리고 빠르게 진행됐다. 차재웅 변호사로서의 삶을 택한 하류는 승마장을 찾아 백도경 상무를 만났고,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해 자신이 변호사로 일하고 있음을 알렸다. 모든 게 엄삼도의 계획이었다.
하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마련한 백도훈의 식사자리. 이 식사자리에서 주다해는 하류와 마주했고, 하류는 시치미를 떼고 주다해에게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깜짝 놀란 주다해의 표정에서 앞으로 전세가 역전될 하류와 주다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주다해는 백도훈보다 더 높은 곳으로 자신을 안내해 줄 또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날 테지만, 이날 하류를 보고 깜짝 놀란 주다해의 모습은 정말로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날 방송을 보면서 이런 디테일의 부족함이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옥에 티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유는 바로 <야왕>이라는 드라마가 갖는 특수성에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야왕>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박인권 화백의 <야왕전>을 각색하여 만든 드라마이니 만큼 다른 드라마에 비해 리얼리티나 개연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작가와 제작진이 각색을 잘 한다하더라도 등장인물과 사건의 큰 줄기를 바꾸기는 어렵다. 결국 이날 방송처럼 억지 설정이나 우연의 연속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야왕>은 리얼리티와 스토리의 치밀함을 위해 만화적 상상력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현실성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이날 방송은 그 선택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바로 원작이 주는 재미와 스토리를 빠르게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박진감을 위해 과감히 리얼리티와 스토리의 치밀함을 일정부분 포기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 드라마가 만화라는 원작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부족한 현실성이 어느 정도 상쇄된다는 점이다.
하류가 형을 대신하여 변호사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이 드라마의 원작이 만화이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하지만 그 설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원작과 달리 <야왕>이라는 ‘드라마’가 갖는 재미이자 경쟁력이다. 조금씩 바뀐 캐릭터와 스토리, 각색이 힘이 만화적 설정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하류의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지나치게 이용당하고 희생하기만 한 하류가 욕망의 화신 주다해에 맞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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