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초반, 강소라가 추억의 음식으로 내놓은 것은 달걀로 부친 토스트였습니다. 한눈에 봐도 초라해 보이는 이 식빵을 앞에 놓고 강소라는 어린 시절 부끄러운 추억을 들춰냅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지냈던 유년시절, 강소라는 TV에서 본 계란 토스트가 너무 먹고 싶어 할머니에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식빵 부침이 익숙지 않았던 할머니는 우유를 너무 많이 섞어버렸지요. TV랑은 너무도 달랐던 할머니의 토스트에 실망해서 떼쓰고 울었던 창피했던 기억은 이제 세월을 넘어 그녀에겐 애틋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결코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숱한 사람들이 저마다 비슷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그러한 만만한 추억. 음식에는 이렇듯 저마다의 살아온 증거와 의미가 버물려 있습니다. 강소라가 평범한 빵 한 조각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듯 말이지요.

설 특집으로 편성된 '내 영혼의 밥상'은 푸드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힐링'이 대세로 떠오른 요즘,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나만의 추억 속 음식 그리고 그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지요.

4년 만에 MBC 나들이로 내 영혼의 밥상 진행에 나선 이경규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운을 뗐었는데요. 그가 힐링캠프를 통해 교감과 치유의 중요성을 일깨웠듯 이번엔 음식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쓰다듬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난 듯싶습니다.

이경규와 이수근, 노홍철, 강소라. 이 네 명의 MC는 내 영혼의 밥상을 준비하고자 하는 한명자씨를 만나러 제주도로 향하지요. 71살의 나이에도 해녀로서 물질을 하며 살아가는 한명자씨는 생업으로 바빠 7년이 지나도록 얼굴을 보지 못한 둘째딸을 위해 밥상을 준비하는데요.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하나를 키우느라 수년간 고향을 찾지 못하는 둘째딸에게 어미의 마음을 음식에 담아 전하고자 했습니다. 딸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으로 말입니다.

큼지막한 문어를 다져 참기름에 달달 볶아낸 문어죽과 구운 옥돔의 먹고 남은 머리를 넣어 끓인 미역국. 한 눈에 봐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독특한 음식들인데요.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해녀 한명자씨는 한 겨울의 날씨에 직접 바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정성이 듬뿍 담긴 밥상은 네 MC들에 의해 둘째딸이 살고 있는 일산으로 배달되었지요. 일산의 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마련해 둘째딸을 초대했습니다. 제주도의 어머니가 서울의 딸에게 전해준 정성은 중년이 되어버린 딸에겐 함께했던 시간의 증거였지요.

밥상이 나오기에 앞서 고향의 음식이야기를 어제 본 듯 생생히 묘사하던 그녀는 그때의 음식들이 눈앞에 등장하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지요. 남편을 잃고 고향을 떠나 아들과 살아가고 있는 외로운 삶에 엄마가 보내준 추억의 음식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음식에 따뜻한 눈물과 환한 미소를 동시에 내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그래서 생동감 있는 감동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담긴 그 시절의 음식에 어린애 같은 순수한 기쁨과 미안함이 그대로 녹아 있었지요. 문어죽이나 옥돔머리 미역국 뿐 아니라 자리젓이며 소라구이 등 고향의 음식을 만난 그녀는 주위에 권하는 것조차 잊고 맛깔나게 먹었는데요. 그 모습조차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기억의 한 자락을 꺼내놓게 하는 추억의 음식이 있습니다. 힘들었던 시절에 먹었던 음식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는 요즘에 더 그립습니다.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미역국에 생선대가리를 넣은 이유는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남은 음식을 재활용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이제 그 맛은 추억의 풍미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풍미는 그 시절을 함께 했던 형제들과의 왁자지껄했던 추억을 되돌려주었습니다.

작년부터 자극적인 방송보다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잔잔한 방송이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습니다. 그만큼 치열한 현실에 지친 탓이겠지요. 뭇 사람들의 추억과 정성을 담아내기에 음식만큼 적절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내영혼의 밥상이 마음에선 그래서 MC들의 활약보다는 그 음식을 전하는 마음이 돋보였습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전경은 덤이겠지요.

누군가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데는 따뜻한 밥상만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잔잔하고 따뜻한 방송이 더욱 절실한 요즘입니다.

Written by 비춤, 운영중인 블로그 : http://willis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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