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화려한 경력을 가지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며 "대통령 당선인이 중요한 자리에 저를 세우겠다고 하는 것은 보통사람을 중시여기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뉴스1

실망스러운 기자회견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카드’였던 정홍원 총리 후보자는 자신이 어째서 총리로 지명되었는지를 기자들에게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그의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정보는 그가 ‘겸손’을 콘셉트로 하고 있다는 것과 며칠 전에 지명됐으면서도 ‘철저한 검증을 받았다’고 주장한다는 것밖에 없다. 검사 출신에 대해 걸었던 최소한의 기대가 무너졌다.

이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총리 인선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기자회견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진입했기는 하지만 그 연혁이 짧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말하자면 ‘파워엘리트’에 해당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심성 자체가 ‘윗사람’을 생각하고 ‘소신’을 드러내지 않는 전근대 왕정의 ‘가신’의 마음이다. ‘소신’이란 말 자체를 모르고 ‘굴신’의 자세를 ‘처신’의 기본으로 삼는 ‘가신’인 것이다. 보수진영에서 나올 수 있는 '대통령에게도 대들 수 있는 총리'는 이회창 하나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책임총리’가 가능하려면 적어도 국정운영과 인사기용에 대한 모종의 ‘상’이 존재해야 한다. 그 ‘상’이 대통령의 그것과 모순되지는 않으면서도 대통령 인식의 빈 공간을 보완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총리 후보자의 생각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인사기용에 대한 질문에 대해 사람 이름은커녕 키워드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는 정 후보자를 ‘책임총리’로 보기는 어렵다.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가 ‘소신’이 없는 것은 명백하지만 적어도 ‘도덕적’이기는 하다고 믿고 싶다. 재산규모로 볼 때 그가 한국 사회에서 오랜 법조인이었던 것치고는 ‘청렴’했던 것도 분명해 보인다. 물론 청문회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파워엘리트’ 층에서 최소한의 도덕성 있는 이를 골라내려면 ‘소신’을 생략해야 했다고 본다면 이 역시 슬픈 일이다. 보수진영에서 ‘책임총리’감을 찾아낼 수 없다면 ‘대통합’과 ‘100%’를 말하는 정부답게 차라리 반대진영에서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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