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1년,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 멘트를 클로징하겠습니다"

2009년 4월 13일 <뉴스데스크>에서 신경민 앵커가 남긴 '마지막 클로징'이다. 그로부터 4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권력은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봄은 다가오지만 언론인들은 여전히 '엄동설한' 속에서 떨고 있다. 그 중에서 MBC는 가장 처참하다. 해직자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파업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현업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 ⓒ신경민 의원실

<미디어스>는 망가져 가는 MBC에 대한 진단을 위해 5일, "클로징 멘트를 클로징"할 수밖에 없었던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을 만났다. 신 의원은 4일자 MBC가 특보를 통해 본인의 트위터를 거론하며 공격했던 것에 대해 "친정 어머니가 이렇게 됐으니"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현재 신경민 의원은 MBC와 민사소송 중이다. 신 의원 측에서 '명예훼손'을 이유로 MB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MBC가 소송에 맞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며 "친정과 송사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난감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김재철 퇴진론'이 170일 파업을 통해 뜨겁게 타올랐지만, 김재철 MBC 사장은 건재하다. 김 사장은 MBC 내부 인사를 입맛에 맞게 재단하며 구성원들 편가르기에 골몰하는 '왕'으로서 군림하지만, 국회 내부의 목소리는 조금 다를 것 같았다.

신 의원은 "Thank you but 론"이 존재한다며, 여당 측 시각을 전달했다. 신 의원에 따르면, 김재철 사장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여권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게 국회 내부의 중론이란다. 하지만 모든 여당 의원들이 김 사장을 좋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 의원은 "일부 여당 의원들은 '새 정부의 이미지를 위해서 김재철을 떨궈야 한다'는 이야기도 한다"며 "한마디로 여당이 바라보는 김재철은 'Thank you but'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경민 의원은 가장 먼저 김재우 방송문화진흥회(아래 방문진) 이사장의 논문 표절 문제를 거론했다. 지난 달 16일, 단국대 연구윤리 본조사위원회는 김재우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이라고 판정했고, 김 이사장은 현재 자진사퇴를 거부한 상태이다.

신 의원은 "김재우는 아마 학위취소까지 끌다가 그걸 가지고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며 "단국대 대학원이 연구윤리위원회의 결론을 가지고 학위 취소 결정을 할 것이고 김재우는 그걸 가지고 민사소송을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 의원은 "최문순 사장의 꼬투리를 잡은 김재우가 MBC 사태의 시작"이라며 김재우 이사장과의 만남을 소개했다.

MBC의 간판 앵커이자 기자로서 살아온 그에게 해직된 후배들은 어떤 의미일까? 신 의원은 "아직까지 원칙을 추구하고 있는 건 대단한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며 "너무나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분명한 건 해직자들이 웃는 날이 오지 않는다면 어떠한 정의도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와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자는 소신있는 클로징 멘트를 하는 앵커를 MBC에서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궁금해졌다.

아래는 신경민 의원 인터뷰 전문. 인터뷰는 국회 신경민 의원실에서 이루어졌다.

▲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이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 '논문표절' 김재우 이사장, "학위취소 건으로 민사소송 끌고 갈 것"

미디어스(아래 미) : 김재우 이사장이 자진사퇴를 거부하기로 밝혔다.

신경민(아래 신) : 그럴 줄 알았다. 그 인간이 그 정도로라는 건, 내가 겪었던 일을 통해 이해하고 있다.

미 : 어떤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보는가?

신 : 사실 그를 끌어내릴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은 없다. 한 번도 선례가 없었던 일이기도 하고. 8명의 이사들이 표결을 통해서 의결을 하거나 사퇴를 권고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임면권이 방통위에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나서지 않는 한 김 이사장 퇴진은 힘들 것이다. 감독기관인 방통위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방통위가 개혁의 대상이 된 마당에 움직일지는 모르겠다.

미 : 김재우 이사장의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예견하고 있나?

신 : 아마 학위취소까지 끌다가 그걸 가지고 대법원까지 가지 않겠나? 단국대 위원회가 윤리위원회의 결론을 가지고 학위 취소 결정을 할 것이고 김재우는 그걸 가지고 민사소송을 넘어갈 것이다. 상임위에서 김재우에게 "학위취소되면 소송까지 가지고 갈 것이냐"고 묻자, 김재우는 묵묵부답이었다. 대판까지 가면 몇 년 걸린다. 김용준·이동흡에서 보듯 이게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원칙은 사라졌고 출세에만 목을 맨다.

미 : 신 의원은 김재우 이사장 논문표절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했다.

신 : 에피소드라기보다 단국대도 눈치를 정말 많이 봤다. 단국대가 지난 가을 첫 번째 표절 예비조사 판정을 하면서 낸 첫 보도자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사를 했다는 말 뿐이었다. 얼마나 많은 권력자들이 압력을 넣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단국대에 "당신들이 이렇게 결론을 빈 칸으로 내놓으면 당신네 학교는 뭐가 되느냐. 누가 당신 네 학교에 입학 지원서를 기분 좋게 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서너 시간 후에 '광범위하고 중한 표절'이라고 나오더라. 그런 압력과 압박, 누가 했겠나? 김재우 쪽에서 했지. 만약 길에서 김재우를 만났다면 그는 훌륭한 노신사의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뻔뻔하고 상식이 없는 사람이다. 한 사람만 쳐다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사회의 지도층이고 지배층이다.

미 : 김재우 이사장은 직접 대면한 적이 있는가?

신 : 한 번 있다. 뉴스에서 쫓겨났을 때,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김재우는 "당신(신경민)에 대해서 '빨갱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쪽에서는 훌륭한 기자라고 이야기하더라"며 "그래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며 만나자고 했다. 그와 김재철 사장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김재철 같은 사람이 사장이 될 수 있냐고 했더니, 김재우 이사장은 "최문순 같은 사람도 왔는데 김재철 사장은 뭐가 잘못됐는가"라고 말하더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영방송이라는 게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정치권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최문순이 왔다는 팩트에서 꼬투리가 잡힌 것이다. 안타까운 일의 단초는 거기서부터이다.

◈ '뜨거운 감자' 김재철, "여당은 'Thank you but'…퇴진은 박근혜 몫"

미 : 이번 감사원의 방문진 감사에 대한 의원님의 촌평을 듣고 싶다.

신 : 감사는 수사는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한계가 있다. 감사원의 수사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 늦게 나왔다는 점이다. 피감기관 쪽에서 대응하지 않았다면 감사의 경위도 이야기해주고, 재빠르게 처리를 해야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만 했는지 잘 모르겠다. 발표만 보면 감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 아닌가. 감사원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미 : 이번 감사로 김사장 퇴진에 무게를 싣는 의견도 있고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신 : 전적으로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두가지 의견 다 맞지 않겠나(웃음). 불행하지만, 공영방송이 한사람의 의중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는 현실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슬프기만 하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미 : 최재성 의원은 <미디어스>에 결과가 위에서 조정됐다는 말을 했다.

신 : 조정이라기보다는 윗선의 눈치 본 것 아니겠나. 감사의 최소 요건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내놓은 것이겠지. 그나마 '내놓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만족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미 : 소위, 여당 측에서 나오고 있는 "김재철 필요론"은 여전한가?

신 : 현재 김재철과 관련해서는 "Thank you but"론이 있다. 김재철이 지난 선거에서 참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게 여권의 생각이다. MBC가 여권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고 여권을 적극 도와줬기 때문이다. 또, 일부 여당 의원들은 '새 정부의 이미지를 위해서 김재철을 떨궈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마디로 "Thank you but"이다.

미 : 김재철 사장과의 인연이 있지 않나?

신 : 입사는 내가 후배이다. 나이는 같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 입학년도는 하나 위다. 그래서 친구들이 막 겹친다(웃음). 거의 비슷한 연배이다. 그와 오랫동안 사회부·정치부에서 활동했다.

미 : 동료로서, 사상 최악의 사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재철을 바라보면 어떠한가?

신 : 김 사장은 동료로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출세욕이 너무나 과한 것이다. 출세욕이 인간으로서, 기자로서, 조직인으로서의 원칙을 저버리게 만든 것이다. 그의 모습 중 무엇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알던 김재철의 모습은 아니다. 더 불행한 건 그런 김재철을 추종하는 MBC 내부의 세력들이다. 그들도 내가 잘 알던 후배들이다.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굉장히 깜짝깜짝 놀란다. '저런 모습이 있었구나. 저게 인간의 진짜 리얼한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김재철 MBC 사장 ⓒ뉴스1

◈ '무능력' 방문진, "합리성 결여된 정치권이 더 큰 문제"

미 : 이번 감사로 방문진의 총체적인 무능이 드러났다.

신 : 방문진 뿐 아니라 제 기능을 하는 국가기관이 없다. 한 기관이라도 원칙을 지켰다면 김 사장은 목숨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찰이 원칙이 지켰다면, 그에 앞서서 방문진이 원칙을 지켰더라면, 그에 앞서서 MBC 내부의 조직 밸런스 기능이 작동해 자정 작용이 일어났다면 김재철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재철 사태를 놓고 봤을 때, 우리사회가 좋지 않은 의미에서 '정치화'가 만연하고 그것이 현 권력과 미래 권력만 쳐다보게 만든다. 우리 사회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그릇된 지배 권력의 영향이 미친다. 방문진의 무능은 그 '정치화'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미 : 야당 추천 이사는 <미디어스>에 여당 추천 이사들과 토론 자체가 되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신 : 방문진 이사를 구성할 때 이사들은 최소한의 전문성과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 김재우를 포함한 이사들을 보라. 합리성이 없는 인물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정권에 의해 낙하산으로 내려오고, 청와대와 여당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문진이 제대로 작동하겠나? 정파적인 결정 이외에는 할 수 없는 꼭두각시이고, 감독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배우일 뿐이다.

미 : 그렇다면 방문진은 어떻게 개혁돼야 할까?

신 : 제도에 앞서서 정치의 합리성 구현이 더 중요하다.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기초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일을 해야지 정파적으로 인선을 하면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개선이 되질 않는다. 결국 사람의 문제이다. 좋은 의미의 정치화가 되면 얼마나 좋겠나?

미 : MBC 민영화가 올해 또 불거질 것이라고 보는가?

신 : 지금 정권이 민영화에 매달리기에는 일도 많고 부담도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제도적으로 어떻게 공영성을 강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 망가진 MBC, "무엇보다 해직자들이 돌아와야"

미 : 오랜 시간 MBC 간판 앵커이자 기자였다. 현재 뉴스데스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신 : 더 악화되면 공해 수준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MBC 뉴스데스크를 되돌려 놓지 않으면 영원히 국민의 품에서 벗어나 권력자의 품에 갇히게 된다. 이미 그런 상황이지만, 유턴마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모든 기관과 회사가 마찬가지이지만 신뢰가 사라지면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다.

미 : 현재 MBC에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해직자들과 좌천된 언론인들이 많다. 선배로서 해직자들은 많이 만나나.

신 : 가끔 연락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해 참으로 미안하다. 내가 의원이 된 이후에 노력은 했으나 크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껏해야 김재우 표절 제기, 김재철 비난하는 것이었다. 언론 청문회도 열지 못하고. 만약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겼다면 거의 모든 문제가 풀렷을 것이다. 하나도 풀지 못했다. 답답하다. 친정이 저렇게 된 상태이고, 나는 친정과 송사를 해야 하는 형편이다

미 : 해직자 분들에게 한 말씀만 해 달라.

신 : 요즘 시대에는 원칙을 버리고 출세를 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직까지 원칙을 추구하고 있는 건 대단한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나도 해고까지는 아니었지만, 2009년 4월 앵커직을 그만 둔 후에, 2년 반 동안 회사에서 있는 듯 마는 듯 한 존재로 지냈다. 그들의 겪고 있는 고통이 비참하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도와줄 길이 없어서 안타깝다. 최시중 표현에 의하면 지금 상황이 "정명을 되찾은 것"이고, 방문진 이사들 표현을 빌리면 "애국 방송으로 돌아온 것"이라지만,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을 들이대면 MBC는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해직자들이 웃는 날이 오지 않는다면 어떠한 정의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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