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 중에서 스무 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다. 또 노동자들이 정문 근처 송전탑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한지 70여일이 지났음에도 문제 해결의 단초는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국정조사에 대해 말을 뒤집었고, 민주당 역시 이에 강경한 투쟁을 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닌다. 국정조사 대신 여야협의체 수용에 대해 ‘직구 대신 날카로운 변화구’라고 자평하지만 새누리당이 스윙을 하지 않으니 ‘볼’ 판정이다. 사람들은 ‘무급휴직자 전원 복귀’로 쌍용자동차 문제가 ‘얼추’ 해결되었다고 믿는다. 투쟁은 계속되지만 메아리는 크지 않다. 지난달 26일 송전탑 농성장을 향해 희망버스가 다녀왔는데도 그렇다.

사측의 무급휴직자 복귀선언 후 현장의 분위기가 어떤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을 만나 물어보았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기획실장의 모습
- 국정조사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평가하나

잘 오다가 삐끗한 상황이다. 사실은 쌍용자동차 문제가 국정조사로까지 간다고 확신을 하지는 못했다. 다만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가장 의미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10월 4일, 민주당이 이것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노동의 문제, 죽음의 문제에 대한 것으로 표현된 쌍용자동차 청문회가 9월 20일 있었고, 참여정부의 아킬레스건이란 평가를 받았던 노동문제에 대해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나 전향적인 입장을 취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새누리당도 궁여지책이었는지 위기모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11월 4일과 11월 10일 국정조사를 하자고 확인해 줬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그것이 새누리당의 당론이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11월 4일 김성태 간사가 발언해서 좀 중량감이 떨어졌는데, 10일 김무성 선대본부장이 재차 확인해줬다. 후보 토론회 본선 1차 토론회를 보면 당시 이정희 후보가 질의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당선인 역시 에둘러 국정조사를 언급한 상황이 있다. 하겠다는 의사표시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그 즈음에는 국정조사가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생겼고 다만 시기가 언제인지만 고민했다. 대선 이후 첫 국회라 얘기했기에 그게 언제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1월 4일 바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쌍용자동차 공장을 전격방문하면서 국정조사는 필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때 새누리당이 사측과 얘기하면서 무급자 복직 문제를 정치적으로 ‘딜’하자고 종용했다는 판단이 든다. 무급자 복직은 벌써 이루어졌어야 하고 소송이 걸린 문제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이 끝난 후 합의문에 무급휴직자는 일 년 후에 유급을 돌린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것을 질질 끌면서 지키지 않아 소송에 들어갔고 곧 재판결과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재판부가 ‘조정’을 붙이는 건 사측이 이길 수 없다는 신호다. 그리고 사측이 조정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계속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인데 마치 이걸 받아들였다고 쌍용차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선전하는 상황이다. 참담하고 황당하다. 사실 새누리당은 사측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민주당과 다른 점이다. 그렇기에 새누리당과 사측이 함께 여러가지 국면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그러니까 부담스러운 국정조사도 피하고, 실질적으로 쌍차 문제 해결했단 메시지를 주면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에 정치적 부담도 덜기 위해 무급휴직자 복직이란 카드를 들고 나왔다고 본다.

이는 명백한 공약 위반이고 말 뒤집기다. ‘박근혜 시대’를 보여주는 징후다. 스스로 신뢰 있는 사람임을 자랑하는데, 이래서야 다른 정책들도 재원 타령하면서 엎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명백한 거짓말과 말뒤집기에 대해 민주당이 제대로 된 공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면 그들이 의회권력과 행정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데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그렇게 쌍용자동차 문제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 쌍용자동차 정문 송전탑 농성장 근처의 현수막

- 복귀하는 무급휴직자에 대해 사측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확약서를 강요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찌된 일인가

냉정하게 얘기하면, 무급휴직자 문제는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돈 문제다. 분명히 그들이 일년 뒤부터는 돈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물량이 안 되더라도 돈을 줬어야 했다. 약속이었으니 말이다. 금액을 얼마로 할 건지, 어떤 기준으로 할 건지는 협의를 해야 하지만, 시한을 못 박았기 때문에 일 년이 지난 후부턴 돈을 줬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기한을 못 박은 협의가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서 쌍용자동차가 현재 재판에서 불리한 거다.

많은 무급휴직자들이 임금 소송을 낸 상황이다. 그런데 회사는 애초 합의보다 3년이나 지나서 복직을 선언한 주제에 대외적으로는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전하고 무급휴직자들에게는 복직하는 대신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확약서를 쓰라고 한다. 사측 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평택지청까지 나섰다는 정황이 있다. 무급휴직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 간접적인 압박이다.

회사는 1월 31일까지 확약서를 받으려고 한다. 일단은 국정조사에 대한 여론을 막자는 의도가 있을 것이고, 그보다 직접적으로 2월 15일이면 재판 선고가 나오기 때문이다. 대규모 소송취하를 통해 판결 자체를 유리하게 이끌려고 하는 것이다.

또 무급휴직자들은 3월 1일자로 회사에 복귀를 하게 되는데, 그 뒤에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사측에서 ‘두고 보자’는 심리가 있다. 현재의 기업노조는 사측에 맞서 노동자의 권익을 지킬 힘도 의지도 없다. 따라서 라인배치 등 여러 가지 문제에서 주도권을 회사가 가지고 있다.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데 너희가 어찌 우리 말을 안 듣겠냐는 심리다.

현재 사측은 확약서를 쓴 사람에 대해서 위로금 480만원을 지금하고 있다. 쓰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지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재판에서 회사가 패소하더라도 대법까지 가겠다고 협박한다. 그리고 만약 재판에서 회사가 이기면 확약서를 쓰지 않은 이들에겐 위로금이 없다고 윽박지른다. 480만원을 날리래, 아니면 질질 끌면서 괴롭힘을 당해볼래라고 묻는 거다. 참 치졸한 압박이다.

근데 무급휴직자들을 살펴보면, 예상과는 다르게, 많이 흔들리진 않는 것 같다. 사실 생각해보면 한 3년을 줘야 할 돈을 안 준 상황이다. 얼추 따져도 7천만원 쯤 된다. 전체 소송 규모는 60억원 정도다. 3년은 억울함의 기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무급휴직자란 이유로 다른데 취업할 수도 없었고 받아야 할 돈이 있었기에 퇴사를 선택하지도 못했다. 작년에는 무급휴직자 한 분이 돌연사했다. 그 전해에 아내가 투신자살한 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권리를 포기하고 들어오라 한다. 그러니 이 조치로 사태를 해결했다는 회사의 선전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이 회사와 무슨 얘기를 했겠는가. 고용노동부 등과 함께, 교대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하면 정부지원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식의, 법률적 검토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지원 자체엔 난항이 예상된다. 여하튼 사측은 무급휴직자 문제를 비열한 방식으로 풀어 가고 있다. 말은 갈등을 줄이기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백기투항을 요구하면서 오히려 갈등을 유발한다. 확약서를 쓴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 썼는데 후회하는 사람의 분열이 생겨난다. 쌍용자동차 문제 내내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을 갈라왔다.

사측이 너무 자신감에 충만해서 헛발질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무급휴직자들은 지난 3년간 큰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막상 현장에 복귀하면 회사측에 기울 수 있다. 거기 민주노조를 다시 재건하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나. 그런데 줄 돈을 안 주고 복직만 시키면서 생색을 내는 거다. 좀 심하게 말하면, 돈 앞에 민주냐 진보냐 어용이냐가 어디 있을까. 그게 자본주의 사회인데 사측은 자본주의의 윤리도 어긴다.

▲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민주통합당 은수미 의원 등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쌍용차 범대위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차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맨 왼쪽에 이창근 기획실장의 모습도 보인다. ⓒ뉴스1

- 쌍용자동차의 대주주인 인도계 마힌드라 그룹이 과거 상하이자동차처럼 ‘먹튀’를 할 거라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마힌드라는 2010년 말에 들어왔다.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가 있다. 외국 자본의 횡포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필요한 때다. 마힌드라는 9억 달러를 투자하겠다 얘기했지만 재원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얘기한 적이 없다. 상하이자동차가 그랬던 것처럼, 인수자금 이후에 추가로 투자한 부분이 없다.

자동차산업은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를 해야 수익이 발생한다. 장기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싶다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 투자를 안하고 있다. 그래서 GM대우 같은 상황과 비교하기 어렵다. 쌍용자동차가 어려운 이유는 지난 십년간 주인이 바뀌면서 신차 개발 등에 해야 할 투자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쌍용자동차가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이유도 영업이익이 나면 마힌드라가 그걸 들고 가서 빚을 갚기 때문이다.

사측과 기업노조는 마힌드라 측으로부터 확약서를 받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문서가 얼마나 의미 없는지를 보여준 것이 2009년의 쌍용차 투쟁이었다. 쌍용차노조는 상하이차 측에 확약서를 몇 번이나 받았다. 총고용 유지나 시설투자 등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강제할 수단도 없었다. 민주당 일각에서 마힌드라 측에 대주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투자를 하라는 요구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쌍용자동차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쌍용자동차를 살리는 차원에서 국정조사를 하자는 거다.

▲ 쌍용자동차 최대 주주인 인도 마힌드라자동차의 파완 고엔카 대표가 작년 10월8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 다시 출발하기 시작한 희망버스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사실 큰 기대를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저기 사건이 너무 많아서기도 하지만 그간 희망버스가 너무 많이 출발했다.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것의 의미가 있지만 너무 남발되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희망버스는 연대 확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렇다면 지금 말해야 할 것은 연대의 확장이라기보다는, 가진 역량을 보존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 아닐까 싶다. 요즘 자살하는 노동자들의 유서를 보면 자본만 탓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 진영까지 함께 질타하고 있다. 절망의 크기가 그토록 커지고, 더 깊어진 것이다. 박근혜 시대에 노동자들은 숨쉴 틈도 없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인수위 앞에서 다시 투쟁을 전개할 텐데 최근 투쟁에 대해선 반향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트위터에서 원래 알던 사람들만 RT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투쟁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이 보이지 않고 그저 투쟁의 지속만 보인다. 뭘 해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저쪽에선 미동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수위와 새누리당만을 질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도 든다. 민주당이 계속 이렇게 미온적이라면 차라리 민주당을 타격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들 정도다.

이창근 실장은 인터뷰 내내 기자에게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라고 거듭 물었다. 하지만 기자로서도 뾰족한 방법을 말할 수 없었다. 사측의 무급휴직자 복귀 선언 이후 언론에서 다시 배제되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도울 방법은, ‘인사 검증’ 정국에서도 그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일 게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나면 쌍용자동차 문제가 다시 주목받는 정국이 올 수도 있다. 그때까지 그들이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시민들이 줘야만 한다.

▲ 송전탑 농성장 아래엔 시민들의 음성을 전할 수 있는 소리통이 설치되어 있다. 소리통으로 전할 음성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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