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랩소디

수업 끝나고 학생 몇 명과 함께 현장을 찾았습니다.
어린이날 다음 날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비가 왔었죠.
그래서인지 그 전날의 꽤 큰 집회와 달리
그 날은 기껏해야 몇 백의 사람들만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참 모습을 오히려 볼 수 있었습니다.
'대중들'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삶의 주체, 산 신체들.

무대 아래 앉아있지 않고
말꾼들의 일방적 발언만 들어야 하지 않고
벌떡 일어서서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그렇게 둥글게 모여 우리들만의
자유언론의 시간을 달리고
카니발의 공간을 창조하고
직접행동의 장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계급모순을 건드리며 울먹이는 십대소녀
언론이라는 인권, 사회권을 지적하는 까까머리 소년
술에 거나하게 취했으나 정신 말똥한 농민
남양주에서 오신 선생님
그렇게 수백의 성실한 시민
그렇게 비옷 입고 우산 쓴 진지한 대중들이
비 오는 날 저녁의 문화제를 끌어주었습니다.
촛불의 미학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참 많이 겁이 났었습니다.
혹 이렇게 촛불은 꺼져버리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날 만났던 사람들께 말이지요.
오늘을 있게 만든 영웅들에게 말입니다.
지금의 커다란 울림, 도도한 흐름을 가능케 한
그 날 비 오는 날 청계광장의 가느다란 행렬들의
행복한 찰나를 다시 기억해보고자 합니다.

후딱 학교로 돌아와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본 영상입니다.
지금 봐도 저는 괜히 찡한 걸요.
제가 만든 거라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같이 즐감해 보시길.
그리고 오늘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의 집회에서
그 고운 얼굴을 또 보여주시길.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