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을 만났다. 풍문으로만 듣던, 기사로만 봤던 뜨거운 감자 김재철 MBC 사장을 말이다. 그것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매체비평지 기자로서 입사 4개월 만에 김재철 사장을 오붓하게(?) 독대하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말을 하기 전까지는. 사연은 이러하다.

▲ 김재철 MBC 사장은 질문에 꿈쩍도 하지 않는 강한 분이다. ⓒ미디어스

기자는 23일 오후 3시경,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취재차 방문진이 입주해 있는 서울 여의도의 모 빌딩을 방문했다. 잠깐 여유가 생겨, 담배를 피울 겸 방문진 건물 밖으로 나갔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기도 전에, 고급 승용차에서 낯익은 인물이 경호를 받으며 내렸다. 진한 황색 계열의 트렌치 코트를 입고 위엄있게 방문진 정문을 여는 그 남자는 바라고 바라던 '김재철 사장'이었다. 기자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쏜살같이 김재철 사장의 뒤를 밟았다.

김재철 사장은 기자를 보고 흠칫 놀라며, 빠른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기자는 "김재우 이사장 논문 표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경찰 조사에서 각종 의혹들이 무혐의로 밝혀졌는데 심경은 어떠한가" 등 질문을 마구 질러댔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김재철 사장은 경호를 받으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고 기자도 따라 들어가고자 했으나 2명의 경호원들은 막아섰다. 한 경호원은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고 기자는 "막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사실 같이 엘리베이터 타는 게 뭐 대수랴!

방문진은 6층에 위치해 있다. 1층에서 6층까지 짧지만 긴 시간이 이어졌다. 기자는 또다시 '김재우 이사장 논문 표절'·'배임·횡령 무혐의' 등을 물어봤다. 그는 앞만 응시할 뿐 대답을 회피했다. 기자는 "많은 국민들이 김재철 사장이 이에 대해 한 말씀하길 바라고 있다. 말씀 좀 해 달라"고 목소릴 높였다. 그러자 돌아오는 답변은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였다.

연예인을 사랑하는 팬의 마음처럼 김재철 사장을 만나는 일은 초년 기자에게 흥분되고 떨리는 일이었지만, 매체비평지 기자로서 김재철 사장을 대면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기적인 업무 보고를 위해 MBC 사장은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해야 한다.

연차가 되는 선배들에게 김재철 사장의 방문은 예사로운 일인 것이다. 생각보다 예사로운 일인 데다 어떠한 질문에도 김 사장이 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기자들은 애써 그를 붙잡고 질문을 던지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하는 그는 권력을 갖고 있는 이다. 아니,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침묵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애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쪽보다 그렇지 않은 쪽이 더 많은 이야기와 말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무언가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뻔뻔한 권력은 김 사장처럼 침묵을 고수하는 동시에, '침묵의 카르텔'를 내면적으로 주입한다. 기자들은 '어차피 질문해도 하지 않기 때문에'·'내 말은 무시하고 지나칠 게 뻔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침묵한다. 길들여진다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인수위에 질문하려면 '관등성명'에 가까운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게 대한민국 기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모욕이다.

허나, 수다스러워져야 한다. 권력이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귀찮더라도, 내 질문으로 권력자들의 마음이 뜨끔할 수 있게 말이다. 기자들이 먼저 수다스러워지면 권력들의 무책임한 침묵도 언론과 정치권의 '침묵의 카르텔'도 조금씩 깰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다음 번에 김재철 사장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들이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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