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새 정부 초대 총리 후보로 지명된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그간 언론에 총리 후보가 될 수 있을만한 사람들의 여러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이름은 거론된 적이 없었다. ‘언론에 거명된 사람은 쓰지 않는다’는 ‘박근혜의 법칙(?)’이 다시 한 번 증명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 총리 후보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인사를 하는 박근혜 당선인. 이 날 발표는 이례적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직접 맡아 화제가 됐다. ⓒ뉴스1

박근혜 당선인은 무슨 생각을 갖고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총리로 지명한 것일까? 첫째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총리 후보 지명으로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법관 시절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써서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하기도 하는 등 합리적 면모를 보인 바 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총리 후보 지명의 두 번째 의의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격려(?)의 차원이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지체장애 2급으로 소아마비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장애를 딛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검정고시를 봐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고 대학교 3학년 때 사법고시에 최연소 수석으로 합격한 일은 그야말로 ‘인간승리’로 부를 만하다.

세 번째는 ‘법치주의’의 메시지이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한 평생 법과 관련된 일을 수행해왔고 법률 그 자체에 대해 가장 민감한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헌법재판소장 출신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치안 문제와 식품위생 등 국민생활안전을 강조해왔으므로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적격인 인사일 수 있는 것이다.

▲ 한 네티즌은 SNS 공간에서 김용준 지명자가 38년생이라는 점을 문제삼으며 '38광땡이니 좋은 조짐인 것 아니겠느냐?'는 조소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용준 지명자가 총리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인사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준에서의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선 너무 고령이라는 점이 문제다. 김용준 지명자는 38년 생으로 올해 나이가 만 75세이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면서 정보통신과학에 중점을 둔 정부 시책을 총괄하는 데 적합한 인사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김용준 지명자는 핸드폰도 없고 컴맹에 가까운 컴퓨터 활용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김용준 인수위원장과 박근혜 당선인은 애초에 ‘인수위에 참여한 인사들이 내각에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용준 지명자는 ‘인수위에서 일하던 사람이라고 해서 꼭 정부로 가는 건 아니다 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으나 이러한 설명을 쉽게 납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과연 총리직을 수행할 준비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김용준 지명자의 첫 인상은 ‘별로 총리직을 수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다. 그는 기자들 질문의 대부분에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답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잘 모른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발표하기로 정해진 것 이외에는 무조건 함구하는 것이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업무 스타일이지만 총리 후보 지명자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책임’으로 비춰질 수 있다.

김용준 지명자는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받게 되면 최선 다해 헌법 따라 대통령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 명을 받아 행정 각부 통할 임무 충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약속 드린다’며 소감을 밝혔는데, 이것은 헌법 제86조가 규정한 국무총리의 임명과 임무에 대한 조항을 그대로 낭독한 것이다. 즉, 사실상 총리 후보 지명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게 없는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86조
①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③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로 임명될 수 없다.

‘경제부총리와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생각해본 일이 없다’고 답변한 것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책임총리제’를 언급한 상황에서 국무총리와 부총리의 권한 배분 등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용준 지명자의 답변은 본인이 수행할 역할이 ‘책임총리’에 준하는 적극적 역할인지, 아니면 행정 각부의 관리와 업무 조정 등에만 국한된 역할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고 총리 후보 지명을 수락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다소 곤란한 표정의 김용준 총리 후보 지명자 ⓒ뉴스1
이런 상황을 합리적으로 종합하면 이런 의심도 가능하다. 모든 총리 후보 지명 대상자들이 고사의 의사를 밝혀 결과적으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독박’을 쓰게 된 게 아닐까?

대부분의 인사들에게 총리직 지명은 영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큰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서 온갖 사생활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데 이것 때문에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민간 부문에 있다가 공직을 맡으면 대부분 수입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에서도 몸을 사리게 된다. 더군다나 새 정부의 초대 총리라는 점도 부담스럽다. ‘책임총리’라는 타이틀 덕분에 정치적으로 온갖 난감한 상황에 빠질 공산이 크다. 퇴임 이후도 문제다. 고위공직자들은 퇴임 이후 본래 담당하던 업무와 연관이 있는 직업에 일정 기간 이상 취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국무총리직과 연관이 안 된 업무는 찾기가 힘들 정도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아마 김용준 지명자는 속으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기 싫은데, 큰일이다.’

물론 이것은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큰일일 것이다. 책임총리제가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총리를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세간의 너스레를 웃고 넘길 일이 아닌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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