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귀, 소굴에서 빠져나가다>
<코르시카의 마귀, 후앙만에 상륙>
<호랑이, 가프에 당도>
<괴물, 그랑노블르에서 숙영을 취하다>
<폭군, 벌써 리옹을 돌파>
<약탈자, 수도로부터 180마일 밖에서 목격>
<보나파르트, 급속히 전진, 파리 입성은 절대불가>
<내일, 나폴레옹 파리 입성 예정>
<황제, 퐁텐블로에 도착 하시다.>
<높고도 귀하신 황제 폐하께서 충성스런 백성들이 운집한 튈르리궁에서 지난밤을 보내시다.>

1815년, 엘바섬을 탈출하여 ‘100일 천하’를 만들어낸 나폴레옹은 의도하지 않게 언론의 권력지향성에 대한 인상적인 일화를 남겼다. 그가 탈출하여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프랑스 언론들의 헤드라인이 위와 같이 변화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물론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언론의 권력지향성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70년대만 하더라도 당시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동아일보가 ‘1등신문’이었다. 1980년대 들어 전두환을 노골적으로 찬양한 조선일보가 ‘1등신문’이 된 시기는 아마 한국 언론이 ‘나폴레옹 시대 언론’에 가장 근접한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된 1990년대 이후엔 조선일보 등의 보수언론도 노골적인 정권찬양만을 하지는 않았다. 이는 그들이 정치적으로 반대했던 소위 ‘민주정부 10년’만의 일만은 아니었다. 이제 보수언론은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라도 정권에 맹종하지는 않았다. 어떨 때는 스스로 ‘신공안정국’을 주도했고, 다른 때는 새로운 지배자인 ‘여론’의 ‘간’을 보며 정권에 훈수를 두기도 했다.

▲ 오늘자 동아일보 4면 [기자의 눈]. 주초까지만 해도 이동흡 후보자 비판에 가장 미온적이던 동아일보가 앞장서서 그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 나흘 간의 신문지면에서 펼쳐진 보수언론의 논조 변화는 이러한 한국적 언론 환경에서 벌어진 짧은 촌극이라 할만하다. 이는 ‘나폴레옹 시대 언론’의 그것만큼 극적이진 않더라도 그 자체로 우리 시대를 반영한다.

청문회가 시작하기 전 월요일 아침(21일), 진보언론들의 공세에 대해 ‘조중동’은 수세적인 입장이었다. 지난 기사에서 말했듯 (관련 기사 링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최대한 ‘검증’을 피하고 의혹제기와 해명을 같은 비중으로 ‘물타기’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반면 동아일보는 최대한 보도의 비중을 줄이는 ‘타조 전략’을 취했다. 이들은 이동흡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의 난관을 넘어설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동시에 가정하고 어느 쪽 상황이 와도 문제가 되지 않을 보도를 추구하고 있었다.

청문회 첫날의 공방이 지난 화요일 아침(22일),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공세의 수위를 높였으며 ‘조중동’은 여전히 방어적이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이동흡 후보자를 질타했으나 아직까지 사퇴를 요구하진 않았다. 동아일보의 물타기는 여전히 두드러졌다. (관련 기사 링크)

청문회 이틀의 공방이 모두 지난 수요일 아침(23일), 보수언론의 태도가 바뀐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동흡 카드’로는 돌파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관련 기사 링크) ‘타조 전략’에 ‘물타기’에 앞장서던 그 동아일보가 1면 지면을 통해 이동흡을 성토한다. 중앙일보 역시 1면 지면을 통해 이동흡을 비판한다. 어제 사설에서의 비판과는 달리, 두 지면의 의도는 이제 ‘이동흡 낙마’가 된다. 오히려 이제는 조선일보가 다소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다. 크게 보아 보수언론은 이제 의회의 상황과 여론의 ‘간’을 보고 당선인과 새누리당에 충고를 하는 자세였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 새누리당 지도부의 태도는 “결정적 하자 없다”며 청문회 통과를 강행하려는 것이었다.

보수언론의 태도가 바뀌자 새누리당의 태도가 바뀐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바뀐 태도가 이제 오늘 아침(24일) 지면에 반영된다. 황우여 대표와 이재오 의원의 발언 등으로 당 내부의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질타가 심해지고 그런 정황이 고스란히 보수언론에 실린다.

▲ 오늘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보수언론의 '공세'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보수언론의 판단은 어떤 ‘정치적 기준’이나 ‘원리원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어떤 ‘전략전술적 감’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잣대에 맞추어서 하루 아침에 말을 바꾸어도 되는 것이 현재의 한국 언론이며, 그러한 보수언론의 태도에 따라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정당이다.

일관성이나 책임성이란 측면에선 황당하기도 하지만,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여론’이란 것을 반영하는 방식이 이 좌충우돌 우왕좌왕에서 드러난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새누리당이 받아들인 보수언론의 ‘충고’를, 박근혜 당선인은 받아들일 것인가? 박근혜 당선인이 침묵을 거두고 이동흡 후보자를 ‘팽’할 것인지, 아니면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가 강경함을 보고 보수언론이 또 다시 ‘충고’를 거두어 들일 것인지 이 시점에서 미리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가 언론이 맹목적으로 정권을 찬양하는 그런 사회는 아니고, 그렇다고 언론과 정당이 일관성과 책임성을 가지며 비판을 하고 일을 하는 그런 ‘민주주의’도 아니며,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기본적으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여론과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입장과 태도를 자주 바꾸는 것으로 세상사에 적응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그런 사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폴레옹 시대 언론’의 단순함과는 또 다른 우리 시대의 질곡이다.

▲ 오늘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이동흡 후보자를 비판은 하지만 그에게 문제가 된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다는 맥락 해설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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