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이후 대두된 국민방송 설립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방송이 장악된 한국의 현실이 결국 대선의 패배를 불러 왔다는 결과론에서 시작된 것처럼 갑작스럽고 즉각적인 반응으로 보인다. 대선에 패배한 48%의 민심을 담아 국민방송을 설립하자는 취지로 사이버상에서 활동하던 미디어들이 전격적으로 나섰다. 해직언론인이 주축이 된 ‘뉴스타파’의 공익재단 설립과 나꼼수 김용민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조합형식의 ‘국민TV방송’이 설립준비에 들어갔다. 이 짧은 기간에 두 진영으로 모아진 회원들의 수는 급격하게 증가했고, 그 기세를 몰아 두 진영에서 모두 3월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라 한다.

국민방송 추진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기대는 ‘우리도 우리의 방송을 갖자!’일 것이다. 더 이상 편파적인 방송은 참을 수 없고, 또 참아야 할 이유는 더욱 없다.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언론정책은 대통령 직속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존속하는 것으로 공영방송의 공정성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니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대안방송 설립추진위원들은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하느라 분주하고, 이미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뉴미디어의 영향력을 인정함에도 전통매체의 역할은 ‘민주주의의 꽃’이어야 할 선거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결국 ‘뉴스타파‘나 ’국민TV방송’ 같은 국민방송설립의 목적은 뉴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층만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전통매체에 익숙한 세대에도 전달되게 하자는 것에 있다. 아무리 공정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진실을 밝히면 뭐하겠는가? 진실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데, 그 전달통로가 막혀있다면 말이다.

올드미디어인 TV방송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던 사람들도 이제야 전통매체의 영향력을 실감한 모양이다. 전통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 미디어환경이 변화하면서 기존의 TV방송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미디어인양 취급을 받아 왔다. 미디어학자들 또한 대부분이 SNS를 찬양하면서 마치 SNS가 정치를 하는 것처럼 과장하기 바빴고, 또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내용도 SNS에 집중되는 경향이 짙었다. 젊은 세대의 미디어 활용패턴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당선시킨 이후 SNS 도취현상은 지나쳐 객관적 분석을 흐려 놓았고, 진보진영에선 막연한 기대감으로 ‘나꼼수’ 팟캐스트와 SNS세대인 2030세대만 적극적으로 투표하면 선거에서 승리하리란 착각을 스스로에게 주입시켜 왔다. 투표참여율이 높은 노년층이 두터워지는 인구통계학적 변화도 간과되었다. 결과는 2012년도 4.11 총선패배에 이어 12.19 대선패배까지 경험하면서 ‘48%의 멘붕시대’가 도래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러한 대안언론에 대한 열망은 ‘한겨레신문’ 창간이후 보다 진보한 방송매체에 대한 논의가 처음으로 대두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시민방송 RTV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처음은 아니다. 아쉽게도 이번 국민방송 논의과정에서 시민방송인 RTV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왜 시민방송 RTV가 현재 논의되는 국민방송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현재 대안방송 설립운동의 주축이 되고 있는 미디어들은 모두 동일한 ‘접근성 문제’를 안고 있다. 사이버상의 콘텐츠를 일반인들이 TV채널을 통해서 시청할 수 없어 접근성에서 현격히 떨어진다. 한국인들의 미디어 이용실태를 보자면 모든 연령을 아우르는 미디어는 여전히 텔레비전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TV 앞에서 소비하고 있다. 또한 지상파, 케이블, 위성방송으로 전파되는 콘텐츠들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도 시청가능하며, 유튜브 등으로 확산되고 있고, 또 글 기사로도 다시 재생산된다. 따라서 ‘조중동매’의 종편채널 시청률이 낮을지라도 종편채널 프로그램을 접하는 사람들의 실제 수치는 훨씬 높다할 것이다. 반대로 인터넷상에서 ‘나꼼수’가 아무리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또 ‘뉴스타파’가 공정보도와 진실보도를 할지라도 접근성은 ‘사이버상’이라는 제한된 영역에서뿐이다. 미디어이용의 세대간 격차는 결국 정치적 성향의 차이로도 나타났다. ‘뉴스타파’나 ‘국민TV방송’이나 결국 콘텐츠를 전파시킬 TV채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방송채널 소유는 쉬운 일이 아니다. 거대자본과 콘텐츠생산 또 제도적 허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하는 이 채널문제를 바로 RTV가 해결해 줄 수 있다. 자체제작은 중단되고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급격히 줄어든 시민방송 RTV는 현재 그야말로 ‘채널’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일 시민들의 후원이 늘어나고 국민방송 설립단체들이 많은 방송콘텐츠를 생산해 RTV에 제공하고 케이블과 위성으로 송출된다면 RTV에겐 회생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며, 인터넷방송들은 콘텐츠 전파통로를 얻게 된다.

시민방송 RTV는 시민들의 퍼블릭액세스(Public Access)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케이블과 위성으로 송출해 왔다. 방송을 흔희 이원체계, 즉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시민이 참여하는 ‘열린채널’, 즉 ‘오픈채널(Open Channel)’을 더해 ‘세 기둥’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각 지역단위로 활성화되어 수많은 오픈채널이 존재하지만, 한국에선 시민참여채널인 RTV가 전국을 대상으로 유일하게 존재한다. 불행하게도 현재 RTV는 존폐위기에 처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방송을 설립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반면에, 이미 어렵게 설립해 유지해온 시민방송 RTV는 MB정부의 탄압과 시민들의 외면 속에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방송설립과 진출은 제도적 제약이 뒤따르기에 공익재단 설립을 구상하는 ‘뉴스타파’ 팀과 조합설립을 바탕으로 한 ‘국민TV방송’ 팀이 자본금을 축적한다할지라도 자체 케이블 TV채널의 소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때 IPTV가 가능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따라서 국민방송설립의 현실적 대안은 우선적으로 RTV를 살려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RTV 부조정실 모습 ⓒ RTV

시민방송 RTV 설립을 예로 살펴볼 때, 방송을 설립하고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RTV 발자취에서 드러나듯이, 1995년 국민주방송설립운동이 시작된 후 7년만인 2002년에 드디어 RTV가 개국됐다. RTV는 개국 10주년을 넘어, 태동으로부터 20년의 역사를 채워가고 있다.

<시민방송 RTV>
1995년 '방송개혁국민회의' 국민주방송설립운동 시작
1997년 03월 각계 인사 ‘국민주방송 설립지지 100인 선언’ 발표
1999년 (사)국민방송실현을위한시민모임 창립
2000년 12월 (재)시민방송 준비위원회 발족
2001년 05월 (재)시민방송 법인 등록
05월 (재)시민방송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등록
08월 (재)시민방송과 (사)국민주방송 통합
09월 SkyLife(한국디지털위성방송), (재)시민방송을 시민채널사업자로 선정
2002년 09월 RTV 개국, 1일 10시간 방송
2003년 02월 서울 강북 케이블 진출 (MSO 큐릭스)
2004년 03월 수도권 케이블 진출 (MSO 태광)
2005년 11월 RTV, 방송위원회 ‘중계송신 대상 방송’(RO)에 선정,
전국 50개 지역 RO 의무송출 시작
2006년 03월 전국케이블TV 진출
2007년 11월 방송위원회의 ‘공익성 방송분야 해당채널’에 선정
('시청자참여․사회적 소수 이익대변 분야)

2007년까지 발전해온 RTV는 2008년 MB정부 출범으로 공영방송의 선전도구화 작업과 함께 언론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시청자제작’ 분야에서 유일하게 신청된 시청자전문채널임에도 불구하고 케이블TV 의무편성이 되는 2009년도 공익채널 선정에서 탈락되어 500만 가구의 가시청이 중단되었다. 동시에 2009년부터 방송발전기금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그럼에도 ‘RTV의 깃발’을 내릴 수 없다는 RTV 일원들의 단호한 의지로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빚더미에 앉아있는 실정이다. RTV 탄압은 단지 RTV만의 문제가 아니다. RTV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소외계층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또 RTV에 콘텐츠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적지만 제작지원비를 받아 연명하던 시민사회의 여러 단체들이 RTV 탄압으로 연달이 문을 닫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시민미디어계의 ‘죽음의 도미노 현상’인 것이다.

반면에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로 친정부 언론의 방송진출을 허가해 종편채널의 전성시대가 되었으며, 적자행진을 하던 종편채널의 종말이 다가오나 했더니 대선을 호기로 삼에 기사회생하고 있다. 국민방송 설립운동에서 무엇보다 ‘돈이 문제다’라는 말이 나온다. 돈만 있으면 방송설립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미일 터이다. 하지만 방송은 ‘한겨레신문’ 창간과는 다른 제도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언론자유를 보장하려는 의지는커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장악과 탄압을 일삼고, 언론을 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킬 방법만을 구상하는 권위주의 정부체제하에서는 더욱이 어려운 일이다. RTV의 사례에서처럼 시민들의 희망과는 별개로 어렵게 탄생되었지만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럼에도 위기의 RTV를 이 기회에 함께 살린다면 국민방송 설립의 꿈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RTV 기획회의 모습 ⓒ RTV

한국케이블방송협회(2012년 10월말)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및 위성방송사업자 현황 (2012년 6월) 자료와 RTV 측에 따르면, RTV는 현재 케이블과 위성으로 420만 가구에 송출되고 있다. 즉, 케이블(SO)은 티브로드 21개사 전체(97만)와 씨앤앰 17개사 중 7개사(약 63만)를 합해 전국 160만 가입자에게 디지털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경기, 충남, 전북이 송출지역이다. 위성방송은 스카이라이프(SkyLife) 전체가입자 380만 중 SkyOn 가입자 260만 가구로 송출되고 있다. 2009년부터 RTV 가시청 가구는 절반으로 감소했으나 전국적으로 아직 420만 가시청 가구가 남아있다. RTV 시청요구가 높아진다면 상황은 다시 호전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인터넷방송이 일반 TV채널 영역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민방송 설립을 위한 자본이 모금된다 해도 IPTV를 통한 콘텐츠 전파엔 시간이 걸리고, 특히 조합원에게 ‘국민TV방송’ 시청을 위해 별도로 셋톱박스 설비를 나눠주는 방식은 실효성면에서 의문이 더 많다.

RTV 측은 ‘뉴스타파’, ‘국민TV방송’ 설립추진위원회 측과도 교통하고 있다고 전하지만,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난 사항은 없다. ‘뉴스타파’나 ‘국민TV방송’뿐만 아니라 한겨레의 ‘하니TV’, 오마이뉴스의 ‘오마이TV' 등도 RTV 활용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국민방송 추진을 기회로 RTV 시민방송을 함께 살리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이 있다. 국민방송 대안을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시민방송 RTV는 언론탄압의 고비를 힘겹게 넘어 이제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국민방송 설립을 위한 모금도 중요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시민방송을 살리는 것 또한 급한 일이다. 춘천MBC 박대용 기자도 RTV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뉴스타파‘와 ’국민TV방송‘ 등이 인력을 보강해 양질의 언론콘텐츠 생산에 집중하고, RTV가 케이블과 위성을 통한 콘텐츠 전파에 힘을 쏟는다면 이것이 상생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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