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SM의 저주'일까?

1997년이 응답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돌이 그룹을 내버려두고 개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배신'이라 불릴 만큼 금기시되는 행동이었다.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인식이 강했던 그때까지만 해도 개인 활동이라는 것이 그룹을 내팽개쳐두고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그룹을 와해하는 불온적 씨앗이라 염려를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21세기다. 이제는 아이돌이 대놓고 티비 앞에서 사장님을 향해 "개인 활동 좀 주세요"라는 투정을 부리는 시기다. 개인 활동 없이 그룹을 지키는 멤버가 각광을 받던 지난 세월과 달리 이제는 오히려 개인 활동이 없는 아이돌은 바보 취급을 받는 시대인 것이다. 심지어 그룹 활동이 개인 활동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 정도로 치부하는 아이돌도 적지 않다.

생계가 어려워 한 우물만 파서는 먹고 살기 어려워진 요즘, 틈새 공략을 노리는 아이돌 또한 존재한다. 그룹으로 구성된 아이돌의 개인 활동은 솔로 앨범과 예능 고정 출연과 같은 보편적인 일거리를 시작으로 뮤지컬과 연극을 비롯한 티비 밖 공연 활동으로 시선을 돌리는 수준으로 다양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누구나 흔하게 뛰어들면서도 유달리 어렵고 까다로운,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은 성공하고 싶어 하는 아이돌 개인 활동의 꽃은 연기자로의 데뷔가 아닐까.

아이돌 -> 연기 활동의 절차를 익숙하게 각인시킨 것은 일본 아이돌 문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최대 규모의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자니스 사무소'가 바로 전설의 시작이다. 이미 80년대 이전부터 꾸준히 자사의 아이돌을 브라운관에 투입시킨 자니스의 저력은 어느 순간 방송사와 맞먹는 권력이 되어버렸다. 어느 드라마에 인기 있는 연기돌을 출연시킬 때면 마트의 1+1 전략으로 다소 인기가 적은 이제 막 키워지기 시작한 어린 아이돌을 함께 투입시킨다든가, 자니스 소속의 아이돌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오프닝, 엔딩 음악은 반드시 자니스 소속 아이돌의 음악으로 구성된다든가. 심지어 동 시간대에 자니스 소속의 아이돌이 여러 방송사에 출연할 수 없도록 경고하는 것은 물론, 초상권을 엄격히 따지는 사장의 규율에 따라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의 야마시타 사진을 실내화로 대체한 경우도 있다.

이런 방식은 국내의 한 아이돌 기업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바로 최근 국가마저 건설한 국내 최대 규모의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SM 엔터테인먼트'말이다. 자니스 사무소와 SM 엔터테인먼트의 유사성에 의문을 갖는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SM 엔터테인먼트의 멘토가 바로 자니스 사무소이며 SM 엔터테인먼트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가 그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토록, 일본의 성공한 연기돌 문화를 꽃피운 자니스 소속사를 빼다 박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워너비 기무라 타쿠야는 커녕 단 한 명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시청률과 대중의 인정을 동시에 받은 설득력 있는 연기돌이 탄생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SM의 저주일까? 지난 SM 출신의 아이돌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시청률을 재확인하면 그저 참담하기만 하다. 일단 SM의 이사님, 선배 아이돌 강타의 성적부터가 좋지 않았으니. 그가 출연했던 KBS 드라마 러브홀릭은 내 인생 최악의 드라마로 기억되고 있다.

그 밖의 유노윤호 출연의 맨땅에 헤딩, SM 연기자 이연희와 아이돌 최강창민이 주연으로 만난 파라다이스 목장을 비롯하여 역시 SM 소속 아이돌- 에프엑스 설리와 샤이니 최민호의 단독 주연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난폭한 로맨스의 소녀시대 제시카, 최근 SM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연기돌로서 다져지고 있는 남자 윤아 최시원의 아테나, 포세이돈, 드라마의 제왕까지. 애국가 타임을 위협하는 수준의 절망적인 시청률도 있고 최악의 숫자를 겨우 면한 드라마도 있었지만, 문제는 하나같이 이 작품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으며 출연했던 SM 연기돌에 대한 반응은 시청률보다 더 나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SM 연기돌중 나은 평가를 받고 있는 소녀시대의 윤아 역시 뭘 찍어도 된다는 KBS 일일극 너는 내 운명의 기록적인 성공을 제외하고선 나머지 드라마의 성적과 대중의 평가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운 역시 지독히도 나빴다. 맨땅에 헤딩이나 파라다이스 목장과 같은, 어차피 안 될 것을 짐작하고 넘어가는 농담 같은 수준의 드라마는 그렇다치더라도 아이리스2라고 부를 만큼의 물량 공세를 쏟아냈던 아테나와 근사마 장근석과 윤아가 함께 호흡한 사랑비, 무려 명민좌 4년의 휴식을 깨운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까지 높은 기대치에 비해 만족스러운 성적을 가져가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리 연기하는 아이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나쁘다고 해도 최근에는 그런 평가가 섭섭할 만큼의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는 아이돌 또한 적지 않다. 이미 몇 번의 작품으로 대중에게 큰 신뢰를 얻게 된 JYJ의 박유천의 경우 이제 아이돌치고는-이라는 평가가 서운할 만큼의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고 있고, 응답하라 1997에서 네이티브 수준의 사투리 연기로 좋은 평을 받았던 에이핑크의 정은지나 첫사랑 신드롬, 수지 신드롬을 일으킨 미스에이의 수지 또한 작년 한 해를 휩쓴 인상적인 연기자이며 아이돌 출신의 연기돌이다.

문제는 단순히 숫자놀음을 떠나 SM아이돌에 대한 대중의 전반적인 인식이 나빠질 정도로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만족스러운 평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록 시청률이 낮을지언정 작품의 퀄리티가 높거나 연기자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면 대중의 평이 나쁠 수가 없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도 SM의 아이돌이 얻은 수확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것은 연기력 논란이 부른 아이돌 연기자에 대한 불신뿐이었다. 일례로 작년 연기력 논란으로 대중의 비난을 심하게 받았던 배우 중 이연희와 제시카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들은 모두 SM 소속의 연기자와 아이돌이다. 제시카가 출연했던 난폭한 로맨스와 이연희가 출연한 드라마 유령은 드라마와 다른 배우들에 대한 평은 좋았지만 이 드라마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마저도 두 배우를 심각하게 질타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적절한 시기와 선택을 좌우하는 센스가 부족했거나 어쨌거나 연기돌의 기본인 연기력이 재앙 수준이라서. 하지만 나는 최근까지 SM아이돌이 출연한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위화감'을 마주하며 이것이야말로 그들을 밀어내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SM의 아이돌은 작품에 투입된 그 순간까지도 지나치게 SM 같다. 너무나도 매니악하다.

90년대, 하얀 풍선과 노란 풍선이 부딪치던 그 시절. DSP는 따라쟁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집요하게 SM의 성공을 뒤쫓아댔다. 그 수준도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HOT가 다섯으로 성공하자 그들은 곧 하나를 더 붙인 6인의 젝스키스를 만들었고, 세 명의 SES가 등장하자 곧 한 명을 더 붙여 4인의 핑클을 내보냈다. 교실은 SM파와 DSP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희한하게 SM 소속의 아이돌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SM을 선택했다. 그것은 DSP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토록 첨예하게 맞부딪히면서도 우리들은 당시 유행했던 노래방에 갈 때면 어김없이 DSP의 노래를 선택했다. 커플과 예감, 루비와 내 남자친구에게 같은 노래들은 멜로디가 쉬웠고 대중적이었으며 주로 사랑을 노래해서 아이돌의 팬이 아닌 사람과 마주해도 부담 없이 그 노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마치 어른이 된 기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HOT의 노래들은 한마디로 관상용이고 무대용이었지 노래방에서 신나게 외쳐 부르며 하나가 되는 대중적인 음악은 아니었다. 톡 까놓고 말해 어르신들 앞에서 '아이야' 따위를 부를 수 있겠는가. 나는 모르는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를 부르는 오덕후 친구를 마주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SM의 지향성은 대중성이 아닌 매니악이었다. 분명 소녀시대를 비롯한 SM의 아이돌은 국내에서 가장 큰 인지도를 가진 아이돌임이 틀림없으나, 그들이 들고 나오는 앨범과 무대는 때론 낯설고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기존의 아이돌과 다른 고차원적 이미지로 SM의 아이돌을 바라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줬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3국의 아이돌 중 가장 아이돌이라는 이미지에 근접한 아이돌은 SM의 아이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SM의 아이돌이 80년대부터 관심을 뒀던 일본 아이돌에 대한 향수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가진 아이돌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위험한 13인의 아이들을 제외하면 타사의 아이돌에 비해 그럭저럭 큰 사고도 없이 반듯하고 밝다. 발 구르는 소리마저 딱 들어맞는 화려한 군무는 SM의 무대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쾌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무대 전용의 카리스마다. 안방극장에 어울리는 감동과는 다른 느낌인 것이다.

흔히 무대 위의 아이돌에게 선배 가수는 카메라를 잡아먹으라는 조언을 한다. 하지만 배우에게 필요한 시선은 카메라를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드라마로 뛰어든 SM의 아이돌 중에서는 분명 너무한 수준의 연기력을 가진 아이돌도 있지만 제법 괜찮은 연기력을 지닌 아이돌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건 그가 어떤 작품을 출연하건 하나같이 마치 검은색 머리 위의 물들인 노란 머리가 끼어든 듯한 위화감을 느낀다. 단순히 연기력뿐만이 아니다. 의상 선택에서부터 헤어스타일은 물론 카메라를 의식하는 시선,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태도에서부터 하나같이 연기자가 아닌 SM 아이돌의 느낌을 받을 뿐이다. SM에서 정말 그럴듯한 연기돌이 탄생하려거든 어디까지나 SM 특유의 색을 빼버리는 과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 드라마에서든 나는 SM이다를 강렬하게 외치는 듯한 그들의 이질감은 하나같이 부유하는 기름처럼 느껴져 어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연기돌 없는 SM의 아이돌이 연기력을 늘리는 것보다 먼저 갖추어야 할 배우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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