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북쪽 끝 도봉산. 산등성이마다 노랗고 붉은 단풍이 천연색 수를 놓았습니다. 붉은 빛깔로 물든 암자는 한 폭의 수채화입니다.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은 울긋불긋한 산세를 내려다 보며 산행의 피로를 잊었습니다.”

“친인척 측근 비리 의혹의 충격을 딛고 일 중심의 경제 사령탑 행보를 재개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주 접하는 방송 뉴스의 리포트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가. 그렇다면 이미 기자들의 ‘전지적 작가 시점’ 화법의 익숙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취재대상의 속내까지 꿰뚫는 기자의 독심술에 둔감해졌다는 의미다.

방송기자연합회(회장 이재강)는 10일 <방송보도를 통해 본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라는 책을 냈다. 현업 언론인들과 교수 등이 머리를 맞대고 방송보도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사실관계 확인 부족, 정치적 편향, 광고주 편향, 출입처 동화, 자사 이기주의, 시청률 집착, 관습적 기사 작성 등이 그것이다. (▷바로가기: 방송보도를 통해 본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SBS 심석태 기자는 14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저널리즘의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이런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제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만 해 왔는데 우연히 기회가 닿았다고 한다.

심석태 기자는 ‘정당 저널리즘’을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점으로 짚었다. 특히 요즘 들어 정치적 편향성이 심해진 부분을 지적했다. 심석태 기자는 언론의 정당 편향 보도에 대해 “당에서 말하는 것과 언론 보도가 거의 다르지 않다”며 “단순히 조중동의 저널리즘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엄정한 저널리즘 원칙을 갖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기자들이 ‘문제 많은’ 기사를 쓰는 원인을 물었더니 심석태 기자는 “기자들 스스로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출발할 때의 마음을 잘 가지고 가라”고 조언했다.

심석태 기자는 “정보 유통 창구가 다양해지는 것과 언론 기능의 축이 바뀌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이런 때일수록 정보 검증을 체계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난무하는 정보 속에서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신문, 방송 등 기존 언론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다.

다음은 심석태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 전문.

▲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특별위원회 심석태 위원장
1. <방송보도를 통해 본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라는 책을 내게 된 계기는? 저널리즘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에 재작년에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번역된 걸 보다가 부족한 것 같아서 영문판을 사 봤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자는) 이런 움직임이 미국에서는 활발하다는 것을 알았다. 중견 언론인, 원로급 언론인이 문제의식을 갖고 모여, 재단 지원을 받아 계속 활동했다고 한다.

한국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쯤 누군가가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할 텐데 하면서 고민하다가 방송기자연합회 회장을 하던 임대근 선배와 마침 그 이야기를 하게 됐다. 선배도 같은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송기자연합회 차원에서 먼저 해 보자, 이렇게 해서 이런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23년째 기자를 하고 있지만 원로 언론인들만큼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인사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나서주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우선 시작한 후, 나중에 좀 더 비중 있는 사람들을 영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작업 시작할 때, MBC, KBS 등 언론사들의 연쇄 파업이 시작돼 위원회 구성에 애를 먹었다. 현업 기자들 중심으로 짜다 보니까. 7월에 겨우 시작돼서 이제 보고서가 나왔다.

2. 저널리즘특위의 활동과 책 발간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언론현업단체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되돌아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일단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생각을 하고, 기사를 쓰다가도 참고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고, 출발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아직 앞으로의 계획이 잡히진 않았다. 시간을 두고 피드백을 받아 구체화시킨 후, 좀 더 심도 있는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한다.

3. 서문에 “방송 저널리즘이 신문이나 인터넷 저널리즘에 비해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나마 낫다는 거다. 신문을 보면 조중동과 조중동 비슷한 것이 있고 다른 편에는 한겨레 경향, 요새는 한국까지 세 개의 신문이 있다. 제가 볼 때는 양쪽 다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한쪽 편을 들면서 상대방은 아주 나쁜 언론이라고 한다. 현장에 있을 때나, 예전에 언론노조에 있을 때나 항상 주장한 바가 있다. 경향 한겨레가 기본적으로 조중동 저널리즘을 비판하려면 이중기준을 쓰지 않고 당당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 한겨레도 민주당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비판보다는 감싸려고 하고, 당시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뭐 걸리는 게 있으면 세게 쓴다. 최근에 한 언론도 <방송보도를 통해 본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MBC를 조지기 위한 도구로 쓰더라. 이 책을 소개하는 기사에서조차 말이다. 이러니 방송이 신문, 인터넷 언론에 비해 좀 낫다고 보는 것이다.

방송은 요즘 좀 특이한 현상을 겪고 있다. 김재철 사장 등등.. MBC가 많이 망가져 있다. SBS만 놓고 보면 SBS는 영향을 덜 받는 쪽이다. 이쪽, 저쪽에서 다들 자기 편이라고는 말 못한다. 2007년 대선 현장반장을 하면서 열린우리당 쪽 취재를 할 때 그쪽에서도 항의, 어필을 받았고 한나라당에서도 어필을 받았다. 왜? 양쪽 다 비판하니까. 비판할 게 있으면 하니까. 그런 것들을 보면 방송이 신문보다 정파적인 양상은 좀 덜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신문 입장에서는 (우리가) 무슨 사건이 터졌을 때 시원하게 말 못한다, 기회주의적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언론이 이중 기준을 가져선 안 된다고 본다. 내가 속해 있는 그룹에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 따지는 것이 기사 판단에 큰 영향을 주는데, 저널리즘적 판단이 우선해야 한다. 정치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기자가 되면 안 되고, 정치를 해야 한다.

4.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를 ‘사실관계 확인 부족’ ‘정치적 편향’ ‘광고주 편향’ ‘출입처 동화’ ‘자사 이기주의’ ‘시청률 집착’ ‘관습적 기사 작성’ 등으로 정리하며, 기사 작성의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점은?

다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선순위가 없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실관계 확인 부족이 제일 문제다. 그런데 요즘은 정치적 편향을 비롯한 ‘편향’이 가장 문제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소속기관에 따라 정치적 편향 기사를 쓰고, 이익에 따라서 광고주 편향 기사를 쓰고, 같은 출입처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출입처 동화 기사를 쓴다.

개인적으로는 자사 이기주의의 심각성을 짚고 싶다. 요즘 많은 기자들이 회사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발벗고 나선다. 회사원처럼. 자기 회사와 정치적으로 맥을 같이 하는 정치집단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뛰기도 한다.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면 팩트 확인이 덜 돼도 막 내보내는 경향이 있다.

5. 이런 문제점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기자들이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 왜 기자가 필요한지도 생각지 않고. ‘있어 보이니까’, ‘괜찮아 보이니까’ 기자를 한다. 모두들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무엇무엇을 바로잡겠다”고 한다.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순식간에 브레인 워시하고 철저한 조직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럼 기자는 없고 회사만 남는다. 한국 사회의 기자교육 시스템에서 ‘기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가 사라져서 그런 게 아닐까. 출발할 때의 생각을 잘 갖고 가야 한다.

6. 책에서 언급한 사례에 대한 본인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아주 많다. 나도 그런 경험이 많고 주변에서도 많이 봤다. 이런 일들이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태연하게,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인상적일 뿐이다.

7. 방송 뉴스의 한 꼭지는 보통 2분이 안 된다. 이런 형식이 굳어져 있어 변화를 꾀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형식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는 없다고 본다. 2001년에 쓰나미 났을 땐 그날 점심부터 다음날까지 하루 종일 방송했다. 내용에 따라 1~2분짜리를 여러 개 넣을 수도 있고, 5~6분짜리를 구성할 수도 있다. 포맷은 지금도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떤 문제를 본질적으로 파헤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짧은 시간 안에도 필요한 부분을 다 담을 수 있다. 특히나 훈련된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8. 기자도 ‘휴일 스케치’에 대해서는 보도라기보다는 ‘쉬어가기’의 의미로 이해했기 때문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왔다. 시청자들 역시 기자들이 전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 설명’에 익숙할 듯한데.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까. 단순히 ‘구색 맞추기용’라면 아예 없애도 되는 것인가.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갈렸다. 현업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교수위원들은 부정적으로 봤다. 적어도 뉴스 시간에 굳이 넣을 정도라면 정확한 정보가 포함된 기사로 넣거나, 그게 아니면 그림 보여주기로 가든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막 들어와서 기사 쓰기 훈련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해 문학작품 쓰듯이 기사를 쓰는 것은 상당히 좋지 않다. 각 방송사 보도국 차원에서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9. 방송기자연합회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기자들의 기본적인 업무 매뉴얼로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에게 많이 전달되고 있는지. 또, 이 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많이 찍어서 돌리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각 보도국으로 몇 십권 씩은 갔다. E-book으로 올라와 있기도 하고. 많이 홍보가 돼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됐으면 좋겠다.

10. 새로운 소식을 얻는 통로가 많아져 방송뉴스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점을 고쳐 원칙을 지키는 보도를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보지 않으면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통로는 많아졌지만 그곳에서 유통되는 내용, 정보 자체는 여전히 체계를 갖추고 제도화되어 있는 언론사에서 생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널리즘 원칙 면에서 보더라도 현재 SNS 등에서 나오는 정보는 자기 생각, 자기 정보인 경우가 많다.

요즘도 검증되지 않은 얘기가 나오고 있지 않나. 수개표하자는 주장은 SNS를 통한 자가정보에 의해 나왔고 확대재생산됐다. 이를테면 출구조사 결과가 몇 시에 뒤집혔다더라 하는 것 등.. 정작 출구조사한 사람들은 모르는 팩트를 자기들끼리 만들어내 기정사실화했다.

정보 유통 창구가 다양해지는 것과 언론 기능의 축이 바뀌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오히려 지금처럼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언론이 제자리를 찾는 게 훨씬 중요하다. 과거는 정보가 없어서 문제였지만 지금은 가짜 정보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정보 검증을 체계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디어스도 마찬가지고.

11. 문제점은 잘 분석돼 있지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은 부족한 것 같다. 특위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사실 하루에 끝낼 일은 아니다. 누가 밀어붙일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12. 현재 우리 언론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해결 방향은.

‘정당 저널리즘’이다. 당에서 말하는 것과 언론 언급이 거의 다르지 않다. 정파성을 가진 게 문제다. 경향 한겨레가 조중동을 비판해도 조중동 보는 사람들은 꿈쩍도 안 한다. 저들도 자기 편 들어주는 건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편에 유리한 기사 나올 땐 세게 쓰고, 나쁜 일이면 줄여 쓰니까. 하지만 이럴 경우 백전백패다. 조중동은 몇 백만 부를 보지만 여기는 몇 십만 부를 본다. 편 들어주기를 하면 30만 명을 끌어오겠다고 하면서 상대쪽이 300만 명을 경도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이다. 엄정한 저널리즘 원칙을 갖고 가는 것이 산술적으로 봐도 유리하다.

명분이 없는 것도 문제다. 박근혜 당선인이 세종시 문제로 MB를 비판할 때는 잘한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아 이게 박근혜 후보를 도와준 게 됐네’라고 생각하며 그 다음부터 조지기 시작하는 거다. 이런 이중기준으로 경향 한겨레도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이래서 되겠냐, 기준이 있어야지 하면서. 이렇듯 공정성, 중립성에 대해 돌아보는 움직임이 일반화되어야 한다.

13. 마지막 질문이다. 기자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 하나만 꼽는다면?

(웃음) 되게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팩트’가 모든 것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팩트만 제대로 확인하면 기사의 반은 옳게 가게 돼 있다. 조선일보가 예전에 4대강 비판한 걸 본 적이 있나? 그런데 요즘은 한다. 그건 팩트를 제대로 본 게 아니다. 아니면 예전에 제대로 본 게 아니든지. 정권이 바뀌려고 하니 같은 일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것이다.

취재를 통해 균형 잡힌 팩트를 찾고, 그게 공감이 되면 다음부터는 대화가 된다. 문제 해결에 대해 논할 수 있다. 하지만 아예 ‘틀린’ 팩트를 갖고서는 얘기가 안 된다. 앞으로 SNS든 뭐든 아무리 새롭고 기발한 것이 나오더라도 체계화된 시스템을 갖춘 언론의 필요성은 유효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