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14일 오전 10시

이소정씨(가명·30세)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새벽에 온 경련으로 아침 내내 고통스러웠던 소정씨는 간신히 얕은잠에 빠져 있었다.

기자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사업장 노동자였던 소정씨를 트위터(@sojungume)로 알게 됐다. 추위가 다소 누그러진 11일 오후, 소정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을 찾아갔다. 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을 할 수 없는 소정씨는 기자를 보며 "아침에도 경련이 일어나서 주사를 맞았다. 요즘은 너무 아파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고 전했다.

▲ 이소정씨는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다. ⓒ반올림 제공

이소정씨는 2003년 2월 4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사업장에 입사를 해 '카피 라인 공정'(반도체 생산에서 배선공정에 사용되는 물질을 기존의 알루미늄에서 구리로 대체하는 공정) 오퍼레이터로 만 2년 동안 근무하다가 2005년 2월 28일 대학진학을 위해 퇴사했다. '꿈'이었던 대학생활이 채 시작되기도 전, 2005년 3월 중순부터 눈이 침침해지면서 시력이 나빠지더니 2007년 8월 경 본격적으로 희귀병인 '다발성 경화증'의 증상이 나타났다. 결국 이소정씨는 2008년 7월 1일 다발성 경화증 확진을 받았다.

다발성 경화증은 뇌와 척수에 장애를 유발하는 신경학적 질환이다. 이 질환은 진행성이어서 시간이 경과하면서 악화된다. 소정씨는 자신의 병에 대해 "지금은 경추와 뇌로 발병이 왔다. 현재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는데, 치료진들은 몸의 체계가 무너진 것이라고 말한다"며 어눌한 말투로 설명했다. 어눌한 말투 역시 다발성 경화증의 대표적 증상이다.

이소정씨는 2011년 7월 1일 요양급여신청서를 근로복지공단평택지사에 접수했지만 작년 4월 "업무와 재해와의 인관관계를 불인정한 판정에 따라 요양급여신청서를 불승인한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현재는 17일 발표될 재심사 결과를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삼성은 '또 하나의 가족'을 앞세우며 1등 기업임을 자부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에서 일을 하던 노동자 30명(2012년 3월 기준)은 직업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삼성그룹 내 다른 사업부까지 합치면 사망자의 수는 50명이 훌쩍 넘는다.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확진을 받고 "한동안 눈물만 흘리며 미쳐 있었다"는 이소정씨는 삼성에 대해 어떤 심정을 갖고 있을까? 기자의 예상과 다르게 소정씨는 "나는 삼성을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과거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함께 인터뷰에 참여했던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많은 전문가들은 다발성 경화증이 일어나는 이유를 과도한 교대 근무, 작업 중 받게 되는 스트레스, 유기용제와 같은 발암 물질 노출로 보고 있다"며 "소정씨는 모든 요건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노동자가 유기용제 노출과 빈도를 증명해야 하는 지금의 불합리한 구조가 산재보험 취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인터뷰 도중 약 기운이 강해져 소정씨는 병실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던 소정씨는 이종란 노무사가 선물한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를 손에 꼭 쥐며 "최근 트위터 하게 된 것도 쌍용차 김정우 아저씨가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라고 해서 시작한 것"이라면서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 삼성 반도체 노동자 이소정씨 ⓒ반올림 제공

아래는 이소정씨와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인터뷰 전문.

미디어스(아래 미) : 증상과 원인에 대해서 말해달라.

이소정(아래 소정) : 뇌하고 척수에 염증이 발생하는 병이다. 그래서 어디에 발병하느냐에 따라서 증상이 다 다르다. 대부분이 시신경으로 많이 오고, 척수로도 많이 온다. 근력도 다 빠지게 돼 몸을 혼자 움직일 수 없다. 자가 면역력 체계가 떨어지는 병이기도 하다. 균형도 잡히질 않는다. 치료진들은 몸의 체계가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란(아래 종란) : 희귀난치성 질병인 다발성 경화증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덜 돼있지만, 역학조사평가위원 중 일부는 유기용제와의 연관성이 증명돼 있다고 얘기한다. 최근에는 교대 근무도 이 병을 발병시키는데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 외에는 스트레스도 큰 요소이고. 소정씨의 환경은 3가지 요소가 다 있었다. 화학약품 가짓수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데에다가 작업 라인에 노후화된 설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인 노출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 : 현재 몸은 어떤 상황인가? 또, 증상이 악화된 과정을 듣고 싶다.

소정 : 되게 안 좋다. 오늘 아침에도 경련이 일어나서 선생님이 수면제를 놔버린 것 같다.

종란 : 덧붙이면 소정씨는 퇴사할 때 이미 시력이 안 좋아지는 전조 증상이 있었다. 그렇게 악화되다 2008년 확진을 받았다. 다발성 경화증 환자들이 이 병 확인하는데 오래 걸린다. 뇌졸증이나 중풍 등으로 오진이 내려지기도 하고. 계속 재발이 있는 병이다. 마땅한 치료제가 아직까지는 없다. 현재는 재발을 막기 위해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또, 통증을 줄이기 위해 각종 진통제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병이 다 있나 싶다. 소정씨는 진행이 빠른 편이다. 휠체어 탄지 5개월됐다. 하반신도 마비된 상태다. 손톱도 혼자 못 깎는 등, 간병이 너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으로는 간병인 지원이 되지 않는다. 산재 인정되면 간병비와 최소 생활비를 지급 받을 수 있다.

미 : 증상을 언제 알게 됐나?

소정 : 2008년 중순에 알게 됐다. 고대 안암 응급실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다.

미 : 일을 한 기간과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소정 : 2003년 들어가서 2월달까지 기초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CMP(화학적 처리를 하는 공정), Photo(빈 웨이퍼에 사진을 찍는 공정), Etch(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 내는 공정), Clean(각 종 화학물질로 씻어내는 공정) 등을 담당했다. 대부분 Photo일을 했다. Photo 공정에서 사용되는 PR용액이(Photoresist·감광제) 문제였던 것 같다. 벤젠 같은 게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대학진학을 위해 2005년 2월에 퇴사했다. 2008년 이후로 이렇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미 : 병을 확진 받았을 때의 심정은 어땠나?

소정 : 이게 뭐지?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인터넷에다 다발성 경화증 찾아보기도 하고. 한동안 미쳐있었다.

미 :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

소정 : 현재 연락은 안 된다. 사이가 그렇게 됐다. 이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긴 이야기이다.

미 : 병을 확인하고 나서 했던 대응은?

소정 :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미 : 하루에 몇 번 경련이 오는가 ?

소정 : 오늘 아침에도 왔다. 밤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맨날 운다. 요즘 특히 더 그렇다.

미 : 이소정씨가 떠난 후에 삼성의 작업 환경이 개선됐다는 얘기는 있었나?

소정 : 내가 있었던 라인 없어졌다. 문제가 됐던 5라인도 없어질 것이다. 없어질 라인들이 많다.

미 : 반올림과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 때문이라고 보는가?

소정 : 그래 보인다.

▲ 이소정씨의 두 손. ⓒ미디어스

미 : 삼성으로부터의 연락이 없었나?

소정 : 연락처를 숨긴 것도 있지만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 적은 없다.

종란 : 사측의 태도에 문제가 많다. 소정씨가 근무했을 당시(2003년~2005년)에는 안전교육을 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보호도구도 없었다. 환기시설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7년도 황유미씨의 백혈병 건으로 반올림 활동이나 언론보도를 통해 조금씩 바뀌었다. 그러나 삼성의 태도는 '개인 질병일 뿐 직업병은 아니다'에서 더 나아간 것이 없다. 재직 중 발병한 사람들에게는 '회사에서 치료비를 대줄 테니 반올림에는 연락하지 마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런 분들의 친척 분들이 연락해서 반올림을 알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2011년 '퇴직자 암 지원제도'를 만들고 선전을 했다. 퇴직한 지 3년 이내, 14가지 암에 한해서 그리고 재직 당시에 1년 이상 근무하고 특수 건강검진대상자였던 사람들에게만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그러한 제도를 만들었지만 소정씨는 '암'이 아니기에 대상이 아니다. 반올림에 있는 피해자 대부분이 삼성 지원 제도의 수혜자가 아니다. 거의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소송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거의 대부분 삼성이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해 산재가 인정되지 않도록 방해한다.

미 : 삼성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소정 : 나는 '삼성 타도'하자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다 있다.

미 : 동료들과 연락을 하고 있나? 무슨 말을 하나?

소정 : 연락하고 있다. '과장 달아야지, 대리 달아야지, 다닐 수 있을 때 다녀야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미 : 당시에 일이 힘들거나 하지 않았나?(소정씨는 이 질문에 답하고 증상이 악화돼 병실로 들어갔다.)

소정 : 처음 신입사원 때, 언니들이 혼낼 때는 많이 힘들었다. 단순작업이라 일을 배우고 나서는 조금 괜찮아졌다.

미 : 유독 삼성에서 희귀질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란 : 삼성에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기업·조직문화'와 큰 상관이 있는 것 같다. 굉장히 노동강도가 세고 성과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높다. 정확도를 요구하면서도 실수 없이 일을 매우 빨리 처리해야 한다. 교대 근무도 인간의 생체 리듬과 맞지 않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그것도 발암의 주요 요인이라고 밝혀지고 있다. 현재 삼성 반도체에서 직업병 피해를 당했다고 제보를 주신 분들은 100명 정도 된다. LCD나 삼성 전기, 삼성 SDI 등 전자제품을 만드는 곳의 피해 제보까지 합하면, 한 160명 정도가 질병을 앓고 있다. 반올림이 삼성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대책위로 시작했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피해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미 : 산재 판정을 받기 위해 장애가 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종란 : 산재 인정기준이 협소하다. 과정도 매우 복잡해 노동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근로복지공단의 폭력행정이나 태도도 문제다. 특히 질병판정위원회가 생긴 이래로 산재 인정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지적하고 싶다.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포함돼 있지만 직업병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어떤 물질에 노출돼 병이 발발했는지에 대해서 노동자가 증명해야 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병 인정률이 낮은 것이다. 명백한 개인 질병이라는 걸 국가나 사용자가 증명(반증)해서 폭넓게 산재를 인정하는 것이 산재보험 취지에 맞다.

미 : 구체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의 행태는 어떠한가?

종란 :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는 전문가들의 의학적 분석을 토대로 다양한 사회적인 업무관련성을 판단해야 하는데, 소정씨의 산재 인정 여부를 담당하고 있는 '경인 질병판정위원회'는 "해당 작업의 유해인자와의 과학적, 역학적인 인과성이 명확하지 않아 업무관련성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판정이 빈번하니 경인 질병판정위원회가 노동자들에게 욕을 먹는다.

미 : 현재 언론은 '이건희 회장의 생일' 보도에는 경쟁을 올리면서 노동자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있다.

종란 : (침묵)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언론 보도는 보기도 싫다. 직업병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진다. 한 개인의 생일은 그렇게 보도하면서..더 심각한 문제는 가려지고. 마음이 아파서 볼 수 없다. 피해자와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미 : 반올림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어떠한가?

종란 : 예전보다는 많이 알려졌지만, 이건희 생일 잔치만큼은 알려지지 않았다(웃음).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말 따뜻하신 분들도 많다. 아는 사람들은 많이 지지해주신다. 소정씨 트위터에도 따뜻한 반응이 많다.

미 : 17일 산재 판정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이라 보는지.

종란 : 정상적인 판정기관이라고 하면 산재로 인정할 수밖에 없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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