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의 재원조달 정책인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11일 조선일보는 무려 3개면에서 이와 관련한 기사를 쏟아냈다. 기사의 핵심은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유로존 위기를 불러온 그리스와 비슷한 수준이며 지하경제 양성화에 성공하면 370조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의 추가 재원이 발생해 복지 확대 등의 정책 목표를 충족시킬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한 기사를 공격적으로 배치한 조선일보

정확한 지하경제 규모는?

조선일보가 보도한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24% 정도다. 이는 다양한 연구결과들을 분석한 결과이다. GDP 1천552조원 규모에 24%를 잡으면 그게 372조원이라는 얘기다. 즉, 지하경제 규모가 0%가 되면 372조원이 생긴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인수위의 목표는 이 중 53조원을 추가 징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는 지하경제 규모의 심각성을 말하기 위해 주로 오스트리아 빈츠대학교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의 견해를 인용한다. 슈나이더 교수는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를 2004년 기준 GDP의 27.6%, 2010년 기준 GDP의 24.7%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OECD국가 중 5위가 돼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문제는 정확한 지하경제 규모가 통계를 내는 주체마다 제각각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조세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2008년을 기준으로 GDP의 17% 정도이다. LG경제연구원은 2004년 기준 GDP의 18.6%로, 현대경제연구원은 2006년 기준 GDP의 22% 정도로 파악한다. 선거 기간 동안 박근혜 캠프는 각종 연구의 평균값인 24%를 가정해 정책을 짰다. 그야말로 주먹구구다.

▲ 부가가치세 도입의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던 한국경제의 산 증인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 ⓒ뉴스1
지난 시기 지하경제 규모를 추산한 자료를 다 찾아보아도 마찬가지 결과다. 같은 시기더라도 어떤 기관은 지하경제 규모를 10%대로 파악하고 어떤 기관은 30%대로 파악한다. 갈팡질팡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다. 강만수 회장은 재정경제부 차관이던 시절 이렇게 말했다. “지하경제 규모가 얼마나 되는 지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지하경제가 아니다.”

그리스 수준인가?

조선일보가 들먹이는 ‘그리스 스토리’도 황당한 것은 매한가지다. 조선일보는 ‘그리스의 지하경제는 GDP의 4분의 1 수준’이라며 ‘지하경제 양성화에 실패하면서 복지 지출을 뒷받침할 세수 확보에도 함께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지하경제가 양성화 실패가 오늘날 그리스 문제의 핵심이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난 해 내내 보수언론은 그리스 문제를 ‘과도한 정부 지출로 인한 복지병의 결과’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지하경제 양성화 실패와 복지 지출을 위한 세수 확보 실패가 그리스 위기의 원인인 듯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실제 그리스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르다. 유승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6월 프레시안에 기고한 시평을 통해 ‘남유럽 위기는 화폐는 통합됐지만 시장이 통합되지 않아 경상수지 불균형이 구조화 된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는 한 전문가는 ‘유로존으로 묶이면서 환율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된 것이 핵심’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 지하경제 천국인 그리스처럼 우리나라도 이대로 가다가는 지하경제 때문에 파탄이 날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조선일보의 기사

굳이 ‘지하경제’와의 연관성을 찾자면 그리스의 독특한 정치문화와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에는 정치로 유명한 3개 가문이 있다. 파판드레우, 카라만리스, 미초타키스 가문이 그것이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대통령, 총리, 야당 당수, 각 부 장관 등의 요직을 독식했다. 나머지 공직들은 이들 가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그리스 정부가 회계조작을 통해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숨긴 주된 이유는 이런 ‘정치적 문제’ 때문이었다. 이 덕분에 그리스 정부는 돈을 더 써서 2009년 총선 직전에는 1만개가 넘는 공직을 만들어 내 다시 ‘선심’을 쓸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공직에 오른 사람들의 대다수는 부정부패에 연루됐고 이런 사례의 대부분은 세금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이들의 부패 때문에 일반 서민들도 ‘우리가 왜 세금을 내야 하는가?’라는 회의적 시각을 가지게 됐다. 굳이 우리나라의 사례에서 찾자면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들이 끼리끼리 요직을 독차지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하경제 규모의 문제는 이런 정치적 구조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앞서 인용한 슈나이더 교수의 경우 지하경제의 개념을 ‘공식통계(국내총생산)를 계산하는데서 누락된 생산적인 시장 경제활동’으로 정의한 바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공식통계에서 누락된 사유를 파악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희갑 아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해 12월 27일 머니투데이에 기고한 시평을 통해 ‘지하경제는 보고되지 않았을 뿐 분명히 생산적인 활동’이라며 ‘처벌이 강화되면 생산적 활동 자체가 위축되는데 이것에 따른 손익계산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슈나이더 교수 본인도 ‘처벌과 기소에 의한 억제책은 그 실증적 효과가 모호하고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해왔다는 게 최희갑 교수의 주장이다.

조세연구원 측도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세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하경제의 기준을 소득세 탈루에 한정할 경우 GDP의 2~3%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제 역대 정부는 지하경제의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왔다. 부가가치세 신설과 세무행정 및 과세정보의 전산화, 금융실명제 및 부동산실명제의 실시, 신용카드 발급 확대 및 결제액 소득공제 등의 정책 등이 모두 지하경제 규모 축소를 목표로 한 것들이었다. 이제 와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외쳐봐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안철수 전 후보 ⓒ뉴스1
일부에서는 ‘간이과세제도’를 손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일보가 지난 해 12월 24일에 보도한 내용을 보면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하려면 소규모 자영업자에 적용되는 간이과세제도 등을 축소하는 인기 없는 정책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간이과세제도는 연간 매출액이 4천 8백만 원 이하인 영세자영업자의 경우 세금계산서 수수 면제, 세금계산 간소화 등을 통해 매출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과세를 하는 경우를 말하데, 현실적으로 이러한 제도 덕분에 영세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소득세 탈루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물론 간이과세제도의 축소는 서민층인 영세자영업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선거 기간 중 안철수 후보는 오히려 간이과세제도의 확대를 검토하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박근혜 당선인 측의 지하경제 양성화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정책의 시행이 실패할 경우 다음 순서는 증세를 논의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지금의 ‘지하경제 양성화 논의’ 자체가 증세를 위한 어떤 사전작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까지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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