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9일 기획재정부, 국제통화기금(IMF),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연도별 국내 및 세계 경제성장률을 분석한 결과, 작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는 2.1%로 IMF가 전망한 세계경제 성장률 3.3%보다 1.2% 낮다고 한다. 이 차이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격차다.

▲ 새해 들어 코스피가 나흘 연속 하락하여 2천 선이 무너졌다. 사진은 8일 장을 마감한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뉴스1

이 소식을 접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완전한 저성장 기조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작년 GDP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9년을 제외하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았으며 올해 전망치 또한 3.0%로 전망돼 IMF가 내놓은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인 3.6%를 하회하고 있어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저성장이 왜 문제인가?

사실 ‘저성장’이라는 말이 ‘호환·마마·전쟁’과 같은 말은 아니다. 선진국의 경우 우리나라 보다 훨씬 낮은 수치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로존의 국가의 경우 1% 내외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경제 구조가 고도화된 국가일수록 성장의 속도가 더뎌진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저성장의 원인이 경제 구조가 고도화됐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문제’에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일부 전문가들이 ‘일본식 장기불황’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으며 부동산 시장은 침체되고 심각한 수준의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저성장이 실질적인 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새 정부에 이러한 상황의 타개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같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며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해서 성장률을 제고해야 불황의 늪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새 정부가 추구하는 ‘복지 정책 확대’라는 목표와 복잡하게 얽혀있다. 성장률 제고와 복지 정책 확대는 둘 다 정부의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양자는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으나 상충되는 부분도 함께 가지고 있다. 성장률을 제고하기 위한 방책은 새로운 부양정책을 도모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내수확대와 구매력 제고를 위해서는 사회안전망 확충과 같은 장기적인 정책들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성장 극복과 복지 확대를 위한 전제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조치를 위해 필요한 재원을 발굴하는 문제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수위의 기본적인 입장은 복지정책을 위한 재정조달과 관련해 세율을 인상하거나 과표를 조정하는 등의 직접 증세는 검토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세수 확대를 위해서는 세출 구조조정과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다소 소극적인 대응을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9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인수위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국민의 조세부담률을 19%에서 21%까지 올리겠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 지하경제 양성화의 첫 번째 조치로 ‘가짜 석유 근절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정부가 정유사와 주유소의 석유제품 입·출하량을 모두 보고받는 시스템을 마련해 가짜석유 유통 여부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65억원의 예산도 미리 배정해놓았다.

▲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강석훈 인수위 국정조정기획분과 위원과 류성걸 경제1분과 간사. ⓒ뉴스1

다른 해결책으로는 정부 차원의 ‘재정개혁’을 언급하고 있다. 매년 정부 예산을 편성할 때 기존 예산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원점에서 타당성을 검토해 최소한의 필요한 예산만을 짜도록 하는 ‘제로베이스 예산편성’을 의무화 하겠다는 것이다. 옥동석 인수위원은 8일 ‘정부개혁의 핵심은 재정계획’이라며 ‘톱다운(top-down) 방식의 예산편성을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는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을 토대로 부처별 예산 한도를 미리 정해주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책에 대한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역대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구한 과제이고 지속적인 성과를 보여 왔다.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추가로 어느 정도까지 재원을 발굴할 수 있을지가 확실치 않다. 정부 차원의 재정개혁 문제도 마찬가지다. 제로베이스에서 예산을 검토하더라도 결국 부처별로 지켜야 할 사업들은 정해져있기 마련이다. 사업의 연속성이라는 문제도 있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일수록 기한은 길게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고 이런 경우 예산의 편성에 있어서도 기득권의 문제가 아닌 일종의 ‘경로의존성’이 작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 차원의 재정개혁이 어느 정도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도 빈 말이 아닌 상황이다.

결국 핵심은 증세

저성장 문제와 복지 정책의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런 한계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멘토 조차 이러한 시각에 일부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줄·푸·세’로 요약됐던 당초의 입장에서 일정 정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김광두 원장은 ‘복지를 늘려야 하는 흐름으로 되면서 세금감면은 포기했다’면서 ‘금융소득종합과세기준을 4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낮춘 것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라는 뜻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비록 ‘부자 증세’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아니지만 향후에 증세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그는 ‘일본의 경기침체 20년 과정을 보면 경기대책 시기를 항상 놓쳤다’며 ‘인수위에서 10조원의 경기부양용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해 꼭 복지 확대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추가적인 재정 확대의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인수위 역시 대통령 직속 기구로 ‘국민대타협위원회’를 상설화 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이 왔을 때 조세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작동시켜야 할 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이는 명백하게 증세를 염두에 둔 것이다.

보수정부만 할 수 있는 개혁?

▲ 고민스러운 표정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뉴스1
넓게 보면 9일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밝힌 것도 이러한 흐름의 일부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획재정부는 종교인 과세로 인한 세수 확대를 연 1천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초 박재완 장관이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를 강조하며 종교인도 소득세 부과대상에 예외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도 일치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증세 흐름이 보수정부니까 가능한 개혁이지 않느냐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추진했으나 ‘공산국가도 아닌데 이렇게 종교를 탄압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반발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기억 때문이다. 보수정권 하에서도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쉽지 않으나 이는 적절한 ‘당근’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결 가능하며 바로 이러한 방식에 보수정부가 더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증세 논의가 쉽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정도는 받아들일 만한 지적일 수 있다.

물론 증세를 한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보증할 수 없다는 것 또한 함정이라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증세조치를 취하는 것에 더해 핵심적인 국가기간산업을 모조리 민영화 하는 것으로 재정 조달을 하는 등의 방식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새 정부의 재정정책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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