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하면서 아주 가끔 이 방송을 누가 들을까 궁금해진다. 내 경우 오전에 데일리 프로그램만 두 개를 제작하는데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아침의 향기-장리나입니다>라는 로컬 프로그램이고(이 시각 서울과 부산에서도 각각 로컬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11시부터 12시까지는 원불교 교화프로그램인 <원음의 소리>를 릴레이로 방송하고 있다.

<아침의 향기>라는 로컬프로그램의 경우 방송 시작과 더불어 득달같이 문자로 안부를 전해오는 충성도 높은 익숙한 번호 -휴대전화의 뒤 네자리-의 청취자들이 있다. 로컬프로그램이라 지역이 비교적 제한돼있어 청취자와 근거리의 공간을 유지하고 있고 아기자기한 사연과 지역 정서 또는 문화적 색채가 확연히 구분되어 개인의 음악적 특성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이에 비해 종교 방송으로서 프로그램 성격이 명확한 <원음의 소리>는 지역적으로나 청취층이 좀더 광범위할 것으로 예측된다.

▲ 김사은 PD가 제작하는 원음방송 라디오프로그램 '아침의 향기' 홈페이지
지난 2일 <원음의 소리> 시간에 원불교 특집 다큐멘터리 “그리운 금강산 그리운 대종사님”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방송했는데 크리스챤인 친구가 서울에서 “대종사님의 행적을 따라 금강산 잘 다녀왔다” 고 문자를 보내왔다. 부산의 청취자는 다큐에 출연한 서울의 교무님께 “방송 잘 들었다”며 안부 전화를 한 것을 다시 서울에서 내게 연락을 주기도 했다. ‘어디서 누군가 듣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사명감이 투철해진다.

축산 농민인 K씨 "우리집 소가 이 방송 더 좋아해요"

최근에는 청취층에 대해 아주 색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침의 향기> 퀴즈 코너에서 정답을 맞춘 사람과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하루는 충남 서천의 K씨가 주인공이 되었다. 30여마리의 한우를 키우고 있다는 이 여성분은 최근 수입소고기 문제로 인한 축산농가의 어려운 실정을 심각하게 전달하기도 하고 고통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분이 인터뷰 말미에 “사실은요, 저보다 우리 집 소들이 이 방송을 더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소가 방송을 듣는다고? 이유인즉, <아침의 향기>에 채널을 고정하고 소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데 본인보다 소들이 이 방송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얘기다. 뭐 클래식을 들려주면 사람 못잖게 식물이나 동물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발육상태 및 수확도 좋다는 얘긴 들었지만 소들이 우리 방송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래서 혼잣말로 ‘이젠 소들이 좋아할 노래 선곡에도 신경을 써야겠군……’ 웅얼거린 것을 작가가 듣고는 이튿날 오프닝에 “아침의 향기 가족여러분, 아침의 향기를 듣고 있는 소님, 말님, 닭님 모두 안녕하세요?”라고 써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 김사은 PD의 금강산 취재 모습
강아지들도 우리 청취자

그 말 역시 틀린바가 없는 것이 충남 서천의 K씨 사연 이후 익산 알찬어린이집의 교사 S씨는 <아침의 향기> 애청자인 알찬어린이집의 동물가족을 소개해왔다.

사랑하는 꼬순이(닭)를 AI 때문에 시골로 보낸 이후 보고 싶다는 사연, 꼬순이가족 말고도 알찬이, 알봉이, 삼식이 등 삼남매 강아지가 있는데 어느 날 알찬이와 삼식이가 사라져서 아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2보, 개장수 아저씨가 데려간 삼식이와 알찬이를 사신 분이 어린이집 근처 지나다가 전단지보고 다시 돌려주었다는, 그리하여 무사히 어린이집으로 돌아왔다는 3보까지……. 이정도 되면 거의 라디오 동물농장이나 라디오 주주클럽쯤 되는 것 같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사진까지 올려놨는데 시추와 코커스의 교잡종이라는 알찬이와 삼식이가 아닌게 아니라 너무 귀엽다. 이 친구들을 영영 잃어버렸으면 알찬어린이집 원생 뿐 아니라 <아침의 향기> 스탭들도 청취자를 잃은 슬픔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을게다. 얼마나 소중한 청취자인가!

동물들과도 소통하고 싶어

황희정승의 일화가운데 누렁소 검은소 이야기가 떠오른다. 황희가 논에서 일하는 두 마리 황소를 보고 농부에게 “어떤 소가 더 일을 잘 하느냐”고 묻자 농부가 멀리서 달려와 귀엣말로 말한 후 “아무리 미물이지만 짐승이라도 저 안 좋은 말을 알아 듣습니다”라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이후 황희는 크게 깨닫고 평생 겸손하게 살며 덕을 베풀었다는, 익히 잘 알려진 얘기다. 한동안 잊고 지낸 이 일화가 불현듯 떠오른 것은 우리 방송을 잘 듣는다는 동물 가족들의 이야기를 접한 이후다.

농부는 황희에게 “짐승도 저 안좋은 말을 알아 듣는다”는 큰 교훈을 가르쳐주었는데 서천의 한우 30두 말고도, 알찬이 알봉이 삼식이를 생각하면 이제부터 ‘미친소’ 이야기나 ‘보신탕’ 이야기도 가려서 해야 할 것 같다. 그들도 엄연한 우리 애청자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작금의 이 혼란스런 시국을 들으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또다시 궁금해진다. 이 애청자들과도 소통하고 싶다.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전북여류문학회장을 맡았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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