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새천년민주당의 국민경선은 ‘16부작 주말 드라마’로 불렸다. 이인제 의원의 중도 사퇴와 경선 이후 후단협의 출현으로 얼룩을 남기도 했지만 정당 사상 최초의 경선다운 경선이었고 흥행 성적도 괜찮았다. 반면 지금의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은 어떤가.

▲ 한겨레 10월9일자 1면.
9월에서야 겨우 시작된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을 지켜보고 있으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잡탕정당편’을 보는 기분이 이럴까 싶다. 내부적으로는 이미 갈라선 것이 분명한 이질적 세력이 대선이라는 법정에 나오기 위해 억지로 함께 앉아있는 느낌이랄까.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잡탕정당편’을 보는 기분

경선 초반부터 조직선거와 동원 논란, 박스떼기, 명의도용 문제로 삐걱대던 통합신당 경선은 10월 2일 손학규-이해찬 두 후보가 동반으로 경선을 보이콧 하며 파국으로 치달았다. 국민과의 약속인 경선 일정은 누더기가 됐다. 명의도용 문제로 수세에 놓인 정동영 후보는 캠프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시도를 물리력으로 저지하기도 했다.

경선 과정에서 세 후보가 벌이는 싸움을 보면 이들이 과연 경선 이후에도 당을 함께 할 생각이 있는 후보들인지 의심스럽다. 이런 상태라면 10월 14일로 예정된 ‘원샷 경선’이 제대로 치러질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이혼을 전제로 ‘4주간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통합민주신당은 창당 시점부터 온갖 욕이란 욕은 도맡아 얻어먹는 동네북 신세였다. ‘잡탕정당’이란 조롱도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개혁을 바라는 범여권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대통합민주신당을 관심있게 지켜봤다. 정치란 어디까지나 상대평가이지 절대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 배경이 유치하고 그 행태가 졸렬하다 해도 통합신당보다 더 나은 정당이 없고, 통합신당 후보보다 더 나은 후보가 없으면 ‘미워도 다시 한번’ 선택을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선 과정에서의 갈등도 그렇다. 정치판에서 서로 다른 정파나 계파가 싸우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오히려 힘있는 보스나 보이지 않는 손이 일사천리로 교통정리 해주시는 것보다 공개적으로 싸우고 논쟁해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고 본다.

해도 너무하는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갈등

▲ 경향신문 10월8일자 4면.
문제는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다. 우선 싸우는 속내가 그렇다. ‘정동영-반 정동영’ 구도로 전개되고 있는 통합신당의 갈등 가운데 상당 부분은 ‘대권-당권 거래설’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정동영 후보가 김한길 의원 그룹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대신 김한길 그룹에 차기 당권을 보장했다는 것이 당권 거래설의 핵심이다. 대선이 코앞인데 내년 총선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코미디치곤 정말 예의없는 코미디다.

이러다보니 대선용 정당이 대선이나 제대로 치를 수 있겠냐는 회의가 통합신당 내부에서부터 나온다. 공식적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각 캠프에서는 이미 경선에서 어느 후보가 이기면, 다른 한쪽은 장외에 있는 문국현 후보에게 달려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2002년 후단협처럼 당내 후보 흔들기에 매달린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당내 경선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뒤로는 경선 일정 연기를 관철해내는 모습이나, 공권력을 힘으로 무력화 시키는 장면이다. 구성원을 놓고 본다면 한나라당보다는 대통합민주신당 쪽에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정당의 구성 원리나 경선 과정을 놓고 보면 한나라당보다 민주적 소양이 높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선출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한나라당을 향해 여전히 ‘민주개혁세력’ 운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최성진은 현재 한겨레21 정치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