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조성민 ⓒ연합뉴스
지난 주말 아침에 눈을 떠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름이 조성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그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일이 기어이 일어나고 말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찌 그리도 슬프고 불길한 예감은 잘 빗겨나가지를 않는 것인지…

그동안 조성민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의 무책임함만을 원망하기에는 그가 겪어 온 길이 너무도 힘겨웠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조성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현 시점에서 무의미한 일일까?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한 기자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조성민의 죽음은 현재 한국 언론의 문제와 인터넷 문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지 대변해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 언론이 지적했듯 조성민의 죽음은 분명 악플러들의 악플이 한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지만, 그 이전에 언론의 천박한 옐로우 저널리즘이 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고 최진실과의 이혼 과정과 이혼 이후의 생활, 그리고 최진실의 죽음과 이후 최진실의 유산 문제를 둘러싼 스캔들 등 여러 이슈들이 조성민 본인의 확인 내지 코멘트 없이, 소위 ‘측근’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의 입에 의존해 쓴 일개 낙서만도 못한 추측성 기사들로 만들어져 쏟아져 나왔다.

일본 프로야구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와 연봉 5천만 원짜리 중간 계투 선수로 뛰는 상황에서도 조성민과 최진실을 둘러싼 온갖 가십성 기사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조성민을 흔들어놨다.

특히 그가 현역에서 은퇴한 뒤 야구해설자로 제2의 인생을 제대로 시작하려는 순간 터진 최진실의 자살 사건과 최진실의 유산을 둘러싼 여러 일들이 조성민 본인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면서. 그는 야구 해설자는 고사하고 희대의 패륜남이 되어 ‘인민재판정’에 서야 했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기사, 그리고 그런 쓰레기만도 못한 기사에 광기의 악플을 쏟아낸 몰지각한 악플러들의 행태에, 야구인으로서는 물론 일반인으로조차 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조성민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언론 환경과 인터넷 환경이 제2 제3의 조성민이 내일, 모레, 아니 당장 몇 시간 후에라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2년여간 이른바 ‘타진요’라는 인터넷 카페의 회원들과 법정공방을 펼쳐온 가수 타블로는 오늘에서야 기나긴 법정공방에서 해방됐다. 그동안 그는 아버지를 잃었고, 가수로서 그토록 좋아하는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을 잃었다.

‘타진요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서 처벌을 받은 누리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타진요의 주장과 이를 받아쓰기한 언론과 막가파식 보도에 동조해 악플을 쏟아낸 수천 수만의 누리꾼들은 단지 사법당국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 같은 현실에 애써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조성민의 죽음을 악플러 탓으로 몰아가고픈 언론과, 잘못된 언론 보도 때문에 악플을 달게 됐다고 여기는 악플러들이 현재 벌이고 있는 소리 없는 핑퐁게임도 타진요 사건의 일련의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스포츠 스타들이 연예인들과 연애 내지 결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그 때문에 연예매체를 비롯한 미디어에 노출이 급격하게 늘어남에 따라, 스타급 스포츠 선수들의 연예인화는 앞으로도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직 야구선수 故 조성민의 발인이 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병역기피 논란으로 언론의 ‘마녀사냥’식 보도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당했으며, 기도 골 세리머니 때문에 비기독교인들로부터 온갖 악플에 시달려왔고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박주영이나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그동안 한국 축구에 기여한 수많은 공헌에도 불구하고 패륜아로 낙인 찍혀 있는 이천수.

런던올림픽에서 탁월한 기량으로 각종 메달을 따내고 한국 스포츠 역사를 새로 쓴 김재범, 기보배, 손연재 같은 선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논란에 휩싸이고 그런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과 그와 같은 부적절한 보도에 악플로 화답하는 ‘키보드 워리어’,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을 수수방관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의 ‘침묵의 카르텔’에 선수로서 최선을 다할 의욕이 꺾이고, 선수생황 자체를 계속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분명 한국 스포츠를 병들게 하고 있다.

조성민이라는 한 야구선수의 죽음은 그 자체로도 안타깝지만 제2 제3의 조성민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수 있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한국 스포츠 미디어의 위태로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더욱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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