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 선출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일각의 보도에 따르면 정대철 상임고문과 박영선 의원의 구도로 압축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정대철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측에서 ‘추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박영선 의원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경선도 불사할 모양새다.

▲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 후보의 협상안을 문재인 후보가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민주헌정모임' ⓒ뉴스1

정대철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측은 대체로 원로 및 중진 그룹으로 불리고 있다. 구민주계 중심 전직의원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헌정포럼’은 지난 4일 모임을 갖고 정대철 상임고문을 비대위원장으로 추천할 것을 결의하였는데, 이외에도 이들은 ‘민주당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재창당’을 주장하며 ‘당 주류의 퇴진’과 ‘당원의 대표 선출 권한 강화 및 모바일 경선 비중 축소’를 주문한 바 있다.

이에 반해 박영선 의원을 지지하는 측은 소장파 초·재선 그룹이라고 불린다. 우상호, 이인영, 김현미, 김기식, 신경민, 유은혜 의원을 포함한 이들 11인은 지난 6일 모임에서 박영선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비대위가 ‘혁신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선출될 비대위원장이 당 혁신을 책임지고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정대철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측은 ‘관리형 비대위’를 주장한다. 비상대책위원회의 권한과 임무는 지도부가 없는 현재 당 상황을 수습하고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당 혁신 등의 임무는 새로 선출되는 지도부가 짊어지는 것이 옳기 때문에 이를 위한 조기전당대회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가지고 있다.

물론 비대위원장에 적합한 인물로 언급되는 이들이 정대철 상임고문과 박영선 의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박병석, 이낙연, 원혜영 의원 등도 여전히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형성된 여론을 검토해보면 정대철 상임고문과 박영선 의원의 구도로 판이 짜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상황으로 보인다.

관리형이냐, 혁신형이냐

비상대책위원장을 누가 맡느냐의 문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앞서 비상대책위원회의 권한과 임무를 어떻게 볼 것이냐를 먼저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관례로 보면 비상대책위원회는 ‘관리형’의 임무를 맡는 것이 상식적이다. 지도부의 궐위 등 조직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전권을 갖고 등장하는 것이 비상대책위원회이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조직이 ‘비상’한 상황에 빠졌기 때문에 이것을 정상화 하는 것이 일반적인 비상대책위원회의 임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대철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측은 이러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정대철 상임고문의 경우 오랫동안 정치 일선에서 활약해왔으며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선출할 때 경선을 치르기도 한 경륜있는 원로 정치인이다, 현직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인 손익계산에 있어서 초연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조직을 추스르고 새로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조건을 정파를 초월해 협의하고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얘기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민주통합당이 처한 상황이 단지 조직적으로 비상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진단도 존재한다. 민주통합당은 ‘질 수 없는 선거’를 졌고, 지지층이 심각한 수준에서 실망감을 호소하는 상황이므로 지금 바로 당 혁신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철수 전 후보 등 당 외부의 흐름에 의해 훨씬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즉, 지금 구성될 비상대책위원회는 일반적인 수준의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비상’한 태도를 갖는 비상대책위원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 2012년 12월 5일 문재인 후보와 함께 미소짓고 있는 박영선 당시 공동선대본부장 ⓒ뉴스1

이를 위해서는 젊고 개혁적이고 선명한 야당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어야 한다는 것이 박영선 의원을 지지하는 이들의 논리다. 정대철 상임고문 같은 구시대의 인물로는 지지층에게 ‘혁신’의 신호를 보낼 수 없고, 이렇게 되면 민주통합당은 영원히 정권을 되찾아 올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박영선 의원이 그동안 강력한 대여투쟁력을 보여 왔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혁신형 비대위’의 수장으로 적합하다는 것이 이들이 가진 생각이다.

물론 정치라는 게 명분으로만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비대위의 성격과 권한을 둘러싼 논쟁은 당권을 둘러싼 파워 게임의 구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통합당 내의 주류-비주류 갈등은 이미 오래 된 이야기다. 조직에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들의 대립이 어떤 측면에서는 노선과 전략의 대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부분을 면밀히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권을 둘러싼 암투?

이번 대선을 전후해서 주류로 불리고 있는 세력은 친노-시민사회-486 등으로 구성돼있다. 비주류 세력에게 정서적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들의 ‘원죄’(?)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부터 훨씬 더 먼 과거의 일까지 돌아보아야 하겠지만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2년 4월 총선의 상황을 떠올려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비주류 세력은 이 당시에 현재 주류가 공천권을 쥐고 잘못된 선거 전략을 펴는 바람에 총선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배경에는 그 이전 ‘모바일투표’의 바람을 업고 당 대표로 당선된 한명숙 전 대표와 그를 보좌했던 친노 및 486 세력의 책임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때부터 이들은 주류의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으나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어진 지도부 선거에서 소위 ‘이-박 담합’(?)의 결과로 친노 세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해찬 전 총리가 당 대표가 되었으며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일방적으로 손학규, 김두관 후보를 꺾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 대선 패배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주류가 당의 운영에 대한 책임을 내려놓고 퇴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생각에 잠긴 이해찬 전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뉴스1

당 주류는 여전히 이런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들이 물러난다고 해서 민주통합당이 지지층들에게 더 좋은 모습으로 접근할 수 있는 비전이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노쇠한 정치인, 비리 전력자, 구태한 정치로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담아낼 수 없다는 항변에 아주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뒤집어 말하면 이것은 오만과 독선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자신들이 아니면 당의 미래를 책임질 세력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자신의 존재와 비전에 자신을 갖고 있더라도 대중적 실패를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지는 자세가 요구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지, 민주통합당 주류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납득할 수 없는 논리와 인물로 상황을 타개하려 하면 일각에서 예상하고 있는 분당시나리오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패배 속에서 그러한 시나리오가 작동하면 사실상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서의 미래는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당의 운명이 그야말로 등불 앞에 섰다는 평가가 여러 경로를 통해 나오고 있는데도 당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 아니냐는 충고를 귀담아 듣는 것이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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