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과 6월 3일에 방송된 EBS <리얼실험 프로젝트 X> 2부작 '최저생계비 한달 살기'의 한 장면이다.

'최저생계비 한달 살기'에서는 평소 부족함없이 생활하던 민성이네 가족과 대학생 정석호씨가 각각 법적 최저생계비인 약 112만원(주거비와 가구집기비 제외)과 약 43만원(주거비 포함)으로 한달 보내기에 도전했다.

동탄신도시 37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민성이네 가족은 '아이들이 돈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족의 소비습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는 취지로 이 힘겨운 생활이 도전하게 됐다고 한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정석호씨가 도전한 이유는 '사회복지 공부를 하면서 평소 고민했던 것들을 직접 경험해보겠다'는 것.

과연 이들의 한달 생활은 어땠을까. '짠함' 그 자체다. 평소 450만원으로 한달을 생활하던 민성이네 가족은 생활비가 4분의 1로 줄어든 탓에 외식과 간식을 확 줄이는 것은 물론 애들이 갖고 싶다는 축구공 하나 사주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 생일 때도 1만5천원짜리 케이크는 밥상에 오르지 못한다. 평소 즐겨먹던 족발을 포기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

한달 용돈 60만원으로 생활하던 대학생 정석호씨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43만원으로 용돈과 주거비를 전부 해결한다는 게 과연 말처럼 쉬운가. 빠듯한 사정의 정씨가 갈 곳은 20만원짜리 좁디좁은 고시원방밖에 없다. 샤워실은 당연히(!) 공동이며, 샴푸도 없이 비누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정씨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도 밥값을 아끼기 위해 집에 달려와서 밥을 먹는다. 거의 '만원의 행복' 수준이다.

발랄한 성격의 정씨는 점점 웃음이 줄어들고 무기력해진다. 소개팅에서 맘에 드는 그녀를 만나도 돈이 없으니 데이트에서 정작 할 게 없다. 무작정 교내를 걷기만 할뿐.

하지만 길을 걷는 것도 괴롭다. 음식점에서 흘러나오는 고기 냄새에 정씨는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사먹을 돈이 없다. 결국 그가 고기 대신 선택한 것은 달랑 계란 2알. 이것도 정씨에게는 '진수성찬'이고 '꿀맛'이다.

돈이 없다는 것은 생활 속에서 많은 욕망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친구와의 술자리, 야외로의 소풍 등 모든 생활에 '돈'이 들기 때문이다. 민성이 아빠는 "이러다가 친구들이랑 전부 헤어지게 생겼다"고 푸념하고, 대학생 정씨도 돈이 없으니 괜한 자격지심만 생긴다.

사실 이들의 '한달 반짝 가난하게 살기'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궁상스런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비롯해 수많은 지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약 2년 전 좁디 좁은 고시원 방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나로선 특히 대학생 정씨의 좁은 고시원방이 마음속을 후벼팠다. '방'이 아니라 거의 '닭장'이나 마찬가지였던 그곳. 침대에 누워 발을 벌리면 양 다리가 양쪽 벽에 닿을 정도로 좁았다. 옆방에서 말하는 것이 다 들리므로 사생활의 일정 부분도 포기해야 했다.

우리는 흔히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나 역시 돈이 없다는 것이 불편한 일이긴 해도, 불행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느끼게 되는 '돈'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물질'에는 개의치 않고 '정신'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살고 싶건만, 많은 부분에서의 행복과 불행이 '돈'에 좌우된다는 것을 부인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긴 한 걸까.

이번 실험에 도전한 민성이네 가족과 대학생 정석호씨는 '구질구질한' 한달이 끝나면 다시 예전의 풍족한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여전히 '최저 생계비'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은 이 프로그램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이 시대 수많은 타인들의 삶에 대해 상상할 기회를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돈의 위력'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절감하게 한다. 민성이네 가족과 대학생 정석호씨의 궁상스러운 '좌충우돌' 일상을 보는 게 즐거우면서도, 이들의 '도전'이 '일상생활'인 많은 타인들이 생각나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것은 과연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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