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화들짝 놀란 모양새다. 신년 벽두, 현역 군인인 상병 정지훈(비)이 당대 최고의 톱스타 가운데 한 명인 김태희와 열애한다는 뉴스가 터졌다. 그야말로 인터넷은 타오를 듯한 지경이다. 연예 전문 매체를 자임하는 ‘디스패치’가 단독 보도를 한 이후 관련 내용은 주제어를 달리해가며 계속 검색어 순위 상위에 머물렀고, 추가 기사의 건수는 헤아리기조차 버거울 지경으로 쏟아졌다.

▲ 지난 6월 가수 비(정지훈)가 '2012 병역명문가 시상식'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모습. ⓒ뉴스1

각종 논란이 일었다. ‘디스패치’의 예고 특종은 분명 둘의 열애 사실 그 자체였는데, 불길은 엄한 곳을 태웠다. 연예사병이라고 불리는 현역 군인 정지훈이 김태희와 만난 시간, 장소가 문제가 됐다. 곧 정지훈의 휴가 일수가 공개됐다. 휴가를 나와서 어디에 있었는지도 홀딱 까졌다. 해병대 출신 현빈과 휴가일수 비교가 횡행하더니, 국방부는 급기야 정지훈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국방전문 기자 출신인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정지훈 상병이 출타한 것은 공무출타로 (신곡을) 연습하기 위해 나간 것인데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적인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사적인 접촉은 규정위반으로 볼 수 있다”며 정지훈에 대한 징계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밖에도 정지훈의 규정 위반 사례는 깨알 같고 자세하다. 김태희와 만난 일자가 모두 공개된 것은 물론 심지어 누구 차를 타고 어디로 이동했는지까지 죄다 문제시되는 분위기다. 워낙 여론의 반응이 뜨겁다보니 국방부는 이번 기회에 아예 연예 사병 제도 자체를 손보겠다며 부랴부랴 성난 여론 달래기에 전념하고 있다. 앞으로 모든 연예 사병은 출타 시 간부가 대동하도록 할 것이고 무조건 10시 이전에 귀대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뜨거운 논란에 해당할 ‘비-김태희 열애설’에 대해 언론이 물불 가리지 않고 기사를 쏟아내는 상황이야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뉴스의 포털 종속화 이후 언론들이 이른바 ‘스팟 뉴스’를 통해 피 말리는 클릭 경쟁을 하는 것이야 언론 환경의 개혁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기사를 읽고 분노하고 있는 누군가들의 태도는 왜 그리고 무엇을 겨냥점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난독증의 양상이다.

우선, 정지훈의 휴가 일수와 관련된 부분은 정지훈의 잘못이 아니다. 이건 연예 사병을 관리하는 국방부의 책임이고, 군의 문제이다. 정지훈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연예 사병들이 휴가와 관련한 구설수에 오른 지 꽤 됐지만, 군은 오래도록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대책을 만들지 않아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국방부의 필요에 의해 그렇게 군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군대가 청년들의 젊음을 담보 잡는 방식은 여전히 수 십 년 전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하등 달라지지 않았다. ‘의무’라는 무조건적인 이름으로 예외 없이 젊음을 정지시키는 방식이다. 연예사병은 언젠가부터 이 방식의 폭력성을 위장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연예인의 입대는 두 가지 논리적 구조로 구전되는데 우선 한 가지는 ‘저 유명한 연예인도 우리랑 똑같이 군대에 간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연예인을 보면 요즘 군대에서는 충분히 재능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은 일반 군인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다시 군에 동원되고, 활용되는 셈이다.

▲ 가수 비(정지훈 일병)는 지난 9월 15일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제9회 전우마라톤대회에서 사복을 입고 외부 댄스팀과 함께 축하 공연을 펼쳤다. 국방홍보원 주최로 열린 이행사에는 현역병, 주한미군, 군간부 및 일반인 등 5,100여 명이 참가했다. 연예사병 정지훈은 아마 아무런 군말않고 이런 행사 동원을 이행했을 것이다. ⓒ뉴스1

공과에 대한 보상, 엄벌 체계가 확실한 군대에서 그렇게 동원되고 활용된 군인들에게 군이 줄 수 있는 보상은 사실상 ‘휴가’ 밖에 없다. 대체복무 시절 공연을 했단 이유로 현역병으로 재입대해야 했던 싸이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두 번째 군번을 받았던 시절 생애 가장 많은 공연을 했고, 그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부대에서 각종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후일담으로 한 동안 토크쇼를 섭렵했다.

정지훈 역시 마찬가지인데, 입대 이후 각종 군 포스터를 찍고 군 홍보영상을 찍고, 뮤지컬에 출연하고 심지어 국가행사란 이유로 여수 엑스포에 불려가 공연까지 했다. 이 보상을 군이 ‘휴가’로 했단 것 자체는 기존의 군 체계에서 불가피한 측면이고 특별히 문제삼기 힘든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즉, 정지훈의 휴가 문제는 군인 정지훈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 군대 그 자체의 모순이다.

국방부가 부랴부랴 문제 삼겠다고 나선 대목들 역시 일반 군인이 휴가나 외출을 나와서 하는 행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외출했다 복귀하며 지인이 제공한 차를 타고, 외출을 나가 사적인 접촉을 했다는 것이 이 소동 끝의 ‘규정위반’ 문제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국방부는 “다른 장병들과의 형평성에 맞게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모든 현역 군인들이 외출이나 외박 시 위수지역 규정이나 기타 다른 규정들을 피해 ‘젊음을 불사를 꼼수’를 부리는 것 자체를 모두 정지훈의 문제와 같이 단죄할 것인지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번 논란에서 오히려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그리고 연예인의 인권에 대한 우리의 헐거운 감수성이다. 군인 정지훈이 다른 군인에 비해 특별하지 않단 논리 구조라면 연예인의 인권이 시민으로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로서 역시 특별하지 않아야 한단 주장 역시 성립해야 할 것이다. 정지훈과 김태희의 문제는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온갖 흥미진진한 사생활의 소문들로 무성한 공간’에서 펼쳐진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그 둘의 문제로 보호받아야 할 지점은 있는 것이다.

정지훈과 김태희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은 단지 연예 뉴스의 구성적 부속물 쯤 되는 사건으로 끝까지 찢고 발겨져야 하는 무엇이 아니고, 늘 침해되어도 마땅한 대상은 당연히 아니다. 현역병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생한 당신이 보기에 정지훈의 휴가가 ‘특권’이라는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문제는 그 분노가 누굴, 어딜 향해야 하는가 하는 점일텐데,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찾았다. 그건 병사 정지훈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징집 체계에서 연예인을 특별 대접하는 국방부의 문제이고, 그런 특별 대접을 꾸역꾸역 일반화해야만 겨우 낙후된 징집제의 문제가 어느 정도 희석된다고 믿는 아둔한 체계에 있다. 또한 정지훈이 특권화 되어선 안 된단 당신의 굳건한 믿음이 그러나 연예인도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의 문제는 항시 침해 가능한 것쯤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되묻고 싶다.

삐뚤어진 연예 저널리즘과 그 저널리즘의 무분별한 수용자들이 벌이고 있는 이중의 장단 위에서 국방부는 그저 이번 사건의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지 않기만을 고대하며 재빨리 덮기에만 급급하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까닭 모를 복수를 당하는 이병헌은 끝내 김영철을 향해 이렇게 절규한다.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개처럼 당신을 위해 일했던 나에게” 지금, 정지훈 상병의 심정도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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