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과 야권 전반의 반성을 요구하는 지적이 각계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소위 ‘50대 표심’이다. 선거 당일, 투표율이 매우 높아 문재인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는데 막상 결과는 그렇지 않았던 반전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증거다. 특히 50대 표심의 변화는 민주통합당 측에 더욱 큰 충격을 안겼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1997년과 2002년에는 3, 40대로 민주정부 탄생에 기여해온 세대이기 때문이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50대'에게 묻는 것은 정당한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젊은 층의 여론은 매우 사납다. 이들은 지난 선거들에서 제기된 ‘20대 책임론’을 그대로 돌려주기라도 하듯 SNS 등의 공간에서 ‘5, 60대 책임론’을 공격적으로 유포하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잠시만 살펴봐도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복수로부터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등의 다소 진지한 제안까지 이와 관련한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실망감에 대한 대중의 즉자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변화를 거부하는 늙은 사람들이 세상을 망쳤다’는 공통된 정서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단지 인구의 고령화가 유권자의 보수화를 촉발한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 23일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50대 보수화론의 오류’라는 제목의 칼럼은 이런 목소리의 대표적 사례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이 칼럼을 통해 연령효과와 세대효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연령효과는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보수화되는 경향을 지칭하는 말이고 세대효과는 특정 세대의 역사적 경험이 이후의 정치적 선택을 결정하는 경향을 일컫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개념을 뒤섞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예시한 SNS에서의 모습과 같은 것들이 이러한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 ⓒ뉴스1

5,60대 보수화 과정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 역시 지난 26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한귀영 연구위원과 비슷한 지적을 내놓았다. 김윤태 교수는 민주화 이후 영남의 20대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호남의 60대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상황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5, 60대의 인구 증가가 핵심이 아니라 5, 60대의 보수화 과정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윤태 교수가 말하는 5, 60대의 보수화 과정은 소위 민주화 세력의 흥망성쇠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들은 1987년에는 ‘넥타이 부대’의 일원이었으며 1997년의 정권교체와 2002년 참여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다. 하지만 민주정부의 정책적 실패로 이들이 얻은 것은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등에 따른 소득 감소와 잦은 부동산 가격 변동으로 인한 자산의 불안정화였다. 이러한 상황은 가계를 부양해야 하는 연령에 이른 이들에게 삶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게 했다. 이에 따른 배신감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권을 지지하지 않는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김윤태 교수는 이것만이 50대 보수화의 원인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의 지나친 좌클릭과 가벼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남긴 인상이 연령효과가 부정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보수화된 보수적 50대들의 최대결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김윤태 교수의 분석이다. 즉, 야권이 이길 수 있는 선거 전략은 50대의 세대효과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연령효과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민주통합당이 수립한 선거 전략은 이러한 부분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세대에 대한 야권의 전략 부재

내일신문이 지난 27, 28 양일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한국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2012년 대선 유권자 분석 결과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야권은 ‘민주화 세례’를 받은 4, 50대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예측하였지만 이 조사에 따르면 50대 가운데 10년 전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47.1%와 60대 중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56%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앞서 인용한 한귀영 연구위원과 김윤태 교수의 지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50대 표심’에 대한 이러한 지적들을 되짚어보면 결국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이들에 대한 야권의 전략 부재와 안이한 대응에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국민을 세대로 구분해서 피아로 가르고 이에 알맞은 대책을 내놓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필요했던 것은 개별적 인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전이었다. 국민들은 이미 ‘안철수 현상’을 통해 대선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국민들이 요구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 빠진 자신들을 위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는데 민주통합당은 이러한 요구를 ‘정권교체’와 ‘과거사 논쟁’, 그리고 ‘세대론’ 프레임으로 대체하려 했다. ‘독재의 상징인 이명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문재인을 젊은이들이 뽑읍시다’로 밖에는 요약할 수 없는 선거 캠페인들이 지루하게 이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8년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국내의 수많은 진보적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오바마의 선거 전략에 주목했다. 반복되는 구호를 통한 연설법과 맵시 있는 패션 감각, 스포츠맨으로서의 건강한 이미지, 탈권위적 발언 스타일, 근사한 TV광고,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기였던 블랙베리 스마트폰 활용 등을 따라 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이어졌다. ‘스핀닥터’라고 불리는 선거 전략가들의 역할이 커졌고 오늘날 우리들이 경험하는 선거는 어떤 ‘기술’들의 총체인 것처럼 느껴지게 됐다.

▲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뉴스1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은 오로지 기술만의 승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바마의 승리에는 ‘Yes, we can.’으로 대표되는 어떤 ‘북돋음’의 정서가 큰 역할을 했다. ‘변화와 희망(Hope and Change)’이라는 슬로건 역시 승리의 비결이었다. 오바마는 단지 부시 대통령 심판을 말한 게 아니라 희망을 만들어 가자는 비전을 제시했고 이것을 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한 것이다.

한국 민주당이 미국 민주당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에게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국민을 세대로 구분해서 취약한 부분을 찾고 선거 전략으로 여기에 대응하는 것은 단지 선거 기술에 해당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배가 나왔으니 뱃살을 빼고 허리 근육이 부실하니 허리 운동을 해야 한다는 식인데, 이런 처방들은 당장의 미봉책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식사조절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보다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정치의 영역에서 이것은 결국 ‘지도자가 국민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젊은 오바마가 지역 사회 조직가로 헌신하고 젊은 노무현이 부산에서 반복된 낙선을 기록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50대 표심’을 비난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이들에게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가 과연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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