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패배’를 넘어 48%의 ‘배제’로 받아들여진 이번 대선의 후유증은 길고도 깊다. 선거 직후 많은 사람들이 ‘멘붕’적 패닉에 접어든 것은 도래할 5년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다는 것이고 반드시 이겼어야 했다는 의지가 또 그만큼 깊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정권 한 번 바뀐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란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정치는 한 판의 승부가 아니라, 지속적인 흐름이며 과정의 실패를 통해 끝내 변화해가는 무엇이다. 그 흐름과 과정 속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단단해지고 궁극적으로 강화되어 갈 것이란 점은 48%의 국민이 성숙된 자세로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확인된다.

그래서 ‘소용돌이’처럼 일고 있는 선거 결과 부정 의혹은 치기어리고, 위험천만한 일이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절차적 정당성’은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다. ‘1인 1표’란 대의제 민주주의 원리는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된 것을 전제로 한 운영 체계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선거이건 간에 결과에 대한 의혹이 있다면, ‘재검표’를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문제의식일 수 있다. 의혹이 있다면 풀어야 할 것이고, 의혹의 마지막 한 점까지도 명명백백하게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시민의 타당한 권리이다.

▲ 제18대 대선 및 서울시 서울시 교육감 재선거 일인 19일 오후 서울 중구구민회관에 마련된 중구선거관리위원회 개표소에서 관계자들이 투표지를 분류기로 분류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하지만 지금 일고 있는 선거 부정 의혹과 이에 따른 ‘개표 결과 부정’ 그리고 ‘재검표 요구’는 일종의 ‘역공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실하다. 정황적 추론 외에 내용적 근거가 없고, 주장을 입증할 합리적 근거 또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저들은 능히 그런 짓을 했을 것’이란 맹목적 불신과 비이성적 울분 뿐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부 기자는 “선거 부정 의혹은 타진요 수준의 논리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조소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만큼 이번 대선의 결과가 명확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입장은 민주통합당 관계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에서 선거 부정 의혹을 담당하고 있는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일부 ‘실수’가 있을 순 있지만, 일부 인터넷의 주장은 사실상 성립되기 어렵다”고 분명히 밝혔다. 개표 과정의 의혹에 대해 “민주당 입장에서 명확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재검표를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 역시 “일부 ‘실수’와 정황을 근거로 해서 백만 표 이상의 차이를 무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천동설과 같다”며 “지금 선거 부정 주장들은 지구가 돌고 있음을 명백한 상황에서 우린 지구가 돌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니 다른 것이 돌고 있음이 확실하다고 주장하란 것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궤변’이란 얘기다.

당연히 개표 과정에 일부 실수가 있을 수 있다. 모든 음모론이 그렇듯 선거 부정을 주장하고 있는 이들의 견해만 모아 읽으면, 그럴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아예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 않거나, 개표 과정의 절차에 대한 정확한 검증 없이 정황적으로 상황을 추론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인터넷 상에서 떠돌고 있는 의혹을 7가지로 정리해 일목요연하고, 자세하게 해명했다. 선관위의 설명을 읽고도 여전히 선거에 대한 부정 의혹이 든다면, 이는 패배의 절망감이 너무 깊어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적 인식에 장애가 오고, 합리적 판단 체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다시 성찰해봐야 할 정도이다. 선관위의 입장 정리는 깔끔한 수준이다.

이쯤에서 개표 결과를 부정하고, 민주당을 ‘승리를 도둑맞곤 이를 확인도 해보지 않으려는 무능한 세력’이란 비판을 위한 비판을 거두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일부에선 이 주장을 ‘선동’하고 있는 세력이 과거 ‘창사랑’에서 활동했고, 또 다른 이는 ‘안기부 직원’이었다며 민주당을 대선 패배 부정 집단으로 몰아가기 위한 ‘역 공작’이 아니냐는 역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모든 설왕설래와 논란을 해소하는 방안은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이들이 선관위 해명을 뒤엎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거나 그렇지 않는다면 겸허하게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다.

대선 결과를 이제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으로 다음을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의 결과가 재검표를 통해 다시 입증되어야 할 합리적 까닭은 없어 보인다. 그건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든 정신상태의 발현이거나 승자독식의 정치 구조에서 또 5년을 살아야 함을 인정하기 싫은 집단의 발악처럼 보일 뿐이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재검표를 왜 주장하지 않느냐는 민원 전화 때문에 업무를 보지 못할 지경”이라고 밝혔다. 진실로 입증되지 않을 주장에 발목이 잡혀 일상적인 업무조차 할 수 없게 정당을 괴롭히는 건 지지자의 역할이 아닐 것이다. 별 다른 근거도 없이 대선 결과를 일단 부정하고 재검표를 요구하라는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패배 이후의 모습이 중요한 민주당을 패배 그 자체에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민주당을 패배에 가두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누가 가져갈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가뜩이나 잘 못하는 민주당인데, 이 프레임에서 민주당의 ‘선전’을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해행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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