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군요."

1999년도에 방영한 드라마 해피투게더. 흔히 이 드라마를 두고 스타 탄생의 싹을 예감한 최고의 초호화 캐스팅이었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병헌, 송승헌, 김하늘, 전지현, 차태현, 한고은이 이 하나의 드라마에서 함께 열연을 펼쳤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화려한 캐스팅 목록에서는 제외됐지만 이렇게 쟁쟁한 스타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손현주의 열연을 잊지 못합니다. 당시에도 쌩쌩했던 이병헌의 친구라는 캐스팅이 무색하게, 유독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있네 싶었던 그 어리숙하고 미숙했던 첫인상. 유독 부끄러움을 잘 타고 소심한 성격에 말까지 더듬었던, 웃음이 터지면서도 애틋했던 그 모습을요. 하지만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배우가 훗날 어느 해의 가장 뜨거운 감성이 되어 시청자를 울고 웃기게 하며 심지어 그해의 대상을 차지하는 영광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요.

앞서 연기 대상의 수상자를 두고 이변이라거나 반전의 인물을 선택한다는 것이 넌센스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손현주의 대상 수상이란 너무나 당연해서 혹시 불발될까 조바심이 나는 행복한 반전이자 이변이었습니다. 그것은 2012 SBS 연기대상의 대상 수상자, 손현주의 감격에서 더욱 절절히 느껴지는 환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는 수상소감의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히야" 그 짧은 탄식에서 그가 느끼고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너무나 많은 감동과 감사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리고 손현주는 말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군요.“

2012년 5월, 우리 앞에 느닷없이 떨어진 추적자라는 드라마. 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한 전직 형사의 의로운 사투는 2012년 초여름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최고의 화제작이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담아내는 사회적인 메시지와 어느 하나 허투루 흘릴 수 없는 주옥같은 명대사와 문장의 감동을 영상으로 극대화하는 빼어난 연출력은 추적자라는 드라마를 극찬하게 하는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그 시간을 허락받을 수 있었던 배우들의 재발견 때문이었습니다. 손현주, 박근형, 김상중- 그들은 분명 대중의 기억 속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남아있었습니다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아직까지 '현역'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막장드라마라 불리는 불륜극과 같은 한정된 포맷이 아니고서야, 톱스타나 어린 아이돌 배우를 보조해주는 역할이 아니고서야 이토록 매력적이고 잘 만들어진 작품에서 그들이 주연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죠.

"촬영하는 내내 우리 드라마에는 없는 게 너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돌이 없고 스타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우리 드라마에 누가 있느냐면요. 박근형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힘이 바로 '추적자'였습니다. 그리고 손현주와 김상중과 박근형의 열연이었습니다. 이 배우들의 연기력의 우위를 논할 순 없습니다만 특히 주연 배우 손현주의 연기력은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버린 딸의 죽음에 얽혀있는 비리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는 백홍석의 자지러질 슬픔이 그해 손현주 자신이었습니다. 저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상황에서건 백홍석의 내면을 잊지 않았던 그의 서글픈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손현주를 두고서도 저는 불안해해야만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안방극장의 연기대상 시상식을 바라보며 더 이상 연기자가 연기를 잘한다는 사실이 수상의 기준점이 되어야 하는 당연한 상식을 불안해하는 위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얼마나 뜨겁게 시청자를 감동시킨 연기를 보여주었는가는 더 이상 수상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습니다." 손현주의 대상 수상은 상식을 현실화시키는 정의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수상 소감은 감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현주의 곁을 지키는 엠씨 이동욱과 정려원을 비롯하여 장내에 앉은 수많은 동료 선후배 배우들이 그의 말을 집중하는 기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운을 뗄 때마다 박수가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이토록 그 어떤 불만과 의구심 없이 모두가 인정하고 함께 기뻐하며 수상의 영광을 나누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요, 이런 상이 나한테까지 오네요." 손현주는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내내 마치 꿈을 꾸는 사람처럼 벅차오른 마음을 전했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낼 때마다 그의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따뜻함과 진정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흔한 수상 소감의 Thanks to마저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내내 꿈꾸는 사람처럼 얼떨떨해 있었던 그가 마지막 순간 울컥하며 터뜨린 한마디에 급기야 따라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각자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수많은 개미들과 이 상의 의미를 같이 하겠습니다."

마음을 담아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를 보며 문득 추적자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은 백홍석에게 나타난 딸의 환영, "아빠,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아빠는 무죄야."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한 배우의 수상 소식이 그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기뻐하며 감동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주었다는 것입니다. 2012년의 마지막 시간을 이토록 치유 받는 기분으로 마무리하게 해주었던 손현주, 그의 의로운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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