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강도높게 추진될 것으로 예상됐던 방송통신 정책의 '친시장주의' '규제완화' 등 미디어 공공성 훼손의 구체적인 밑그림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한층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오는 12일 예정된 대통령 업무보고를 위해 작성한 '세계일류 방송통신 실천계획' 내부 보고서는 그동안 미디어 공공성 강화를 위해 마련했던 각종 규제의 틀을 손질해 대대적으로 완화하는 시장주의 정책을 뼈대로 하고 있다. 전반적인 정책 방향이 미디어의 산업화와 경쟁 촉진을 위한 규제 풀기에만 집중돼 있어 방송·통신의 공공성과 여론 다양성, 이용자 권리 등이 크게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의 경영개선 필요성 등 공영방송의 위상 재정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은 KBS 2TV와 MBC 민영화를 겨냥한 포석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방통위 "규제 대폭 완화해 방송통신 분야 시장경쟁 활성화"

방통위는 이 보고서에서 방통과 통신 분야의 '규제중심 정책'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통신은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개혁해 요금경쟁 활성화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방송은 디지털 환경에 맞게 규제를 완화해 방송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한다"는 개선방향과 목표를 제시했다.

▲ 지난 3월 26일 방통위 건물 앞에서 현판 제막식을 갖고 있는 초대 방송통신위원들. ⓒ정영은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방송사업에 대한 소유 등 진입규제를 완화하고 광고시장의 독점 구조를 개선해 기업들이 방송 광고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이를 위해 우선 각 방송매체별로 소유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특히 방송매체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의 범위를 자산총액 3조원 미만에서 10조원 미만으로 완화해 대기업들의 참여 기회를 크게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위성방송과 종합유선방송에 대해서는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이 소유할 수 있는 지분을 33%에서 49%까지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종합유선방송과 관련해 전국 케이블사업 권역(77곳)의 15개 권역 이상(5분의 1) 또는 매출액 33%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게 했던 겸영 규제도 '가입자 기준 3분의 1 초과 금지'로 크게 완화한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방안이 실행될 경우 뉴미디어 시장에는 거대 사업자를 중심으로 인수합병 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방통위는 아울러 방송광고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지상파방송의 중간광고 허용범위 확대와 가상광고·양방향광고 도입을 추진하는 한편, 민영미디어렙 도입 등 방송광고공사(KOBACO·코바코) 체제를 개편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방통위가 광고 정책과 더불어 방송광고 기구까지 흡수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는 이 계획은 코바코를 둘러싼 문화체육관광부와의 소관영역 싸움을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 정체성 확립?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

무엇보다 "공영방송의 운영 및 시청률이 저조해 경영개선의 필요성이 지적되고 소유·운영방식에 따른 공·민영간 구분도 불분명하다"며 "공영방송의 위상 재정립 등 정체성 확립이 필요해 오는 12월까지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언론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보수진영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KBS 2TV와 MBC 민영화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기도를 방통위가 노골적으로 받아안으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통신분야에서는 무엇보다 주파수 경매제 도입이 이슈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 정부에서 관리했던 주파수 배분을 시장 기능에 맡겨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이나 공기, 물과 같은 사회적 자산인 주파수를 가장 많은 금액을 제시한 업자에게 넘기는 경매제 도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방통위는 또 포털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를 위해 미디어·검색 서비스의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신문사 등 저작자의 동의없이 기사 제목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뉴스 배치 순서 크기 등의 기준을 공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순위 조작 등으로 포털이 제공하는 검색 순위의 공정성이 미흡하다며 조작 방지를 위한 기술·관리적 조치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용자 권익 향상, 보편적 서비스 확충 계획은 '미흡'

반면 이용자 권익 향상과 저소득층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 확충 계획에선 눈여겨 볼만한 핵심 정책이 제시되지 않았다. 우선 이용자 권익 향상을 위해서는 방송통신 민원시스템을 통합하고 처리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초고속 인터넷의 품질 평가를 실시해 이용자의 합리적인 서비스 선택을 돕겠다는 것이 전부다.

저소득층과 외국인 등 사회구성원이 방송·통신의 혜택을 골고루 받아볼 수 있게 하는 '보편적 서비스' 확충에 대해서는 △영어 라디오 방송 도입 △저소득층 이동전화 요금감면 절차 간소화 △보편적 서비스 기금 설치 검토 △난시청 세대에 위성방송 수신설비 무상 제공 △장애인용 방송수신 보조기기 보급 및 자막방송 편성 확대 △장애인 미디어센터 교육 및 시청자미디어센터 운영 지원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동안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했던 공익적 콘텐츠 지원·강화, 가격 규제 등 핵심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멀고 내용도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화하는 방송·통신 융합 환경에 대비하고, 신규 미디어 서비스 도입에 있어 기존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거대 미디어의 여론독과점을 견제해야 할 방통위가 '산업적 성과'와 '공익적 목표'의 조화와 균형은 무시한 채 노골적인 '친시장주의' 편향을 드러내면서 언론계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총장은 "방통위가 업무보고에 앞서 내부 계획을 언론에 흘린 것은 전형적인 여론 떠보기 수법"이라며 "정부가 공공영역을 차례로 무너뜨리면서 미디어까지 시장과 약육강식의 밀림 공간에 밀어넣는 것은 지난 십수년간 이뤄온 민주주의와 사회적 합의를 뭉개버리는 것이다. 만약 보고서 내용대로 대통령에게 업무보고가 되고 이대로 집행이 이뤄진다면 방통위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