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방송 결정론’이다. 기시감이 든다.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이던 시절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담론이 횡행하던 때에, 그때도 ‘방송 결정론’이 맹위를 떨쳤다. ‘방송이 장악돼 선거를 졌다’, ‘좌편향 된 방송으로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얘기들이 난무했다.

그리고 그 표현대로라면 ‘장악된 방송’, ‘좌편향 된 방송’을 딛고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다. 이명박 정부는 방송에 처절한 복수를 감행했다. KBS와 MBC에는 대대적인 숙청과 인적 청산이 감행됐고, 지상파 독점 구조를 깬다는 구실로 조중동매가 방송에 진출했다. 숙청과 청산 이후의 공영방송은 사실상 저널리즘으로서의 공정성을 잃었고, 종편 채널들의 편향성은 기가 막힐 정도다. 결국, 이번엔 민주 진영이 ‘잃어버린 10년’을 맞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국민방송’이라는 유령이 지금 트위터를 배회하고 있다. 이름을 대면 대번에 알만한 몇몇 인사들이 열심히 방송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패배를 두고 다시 '방송 결정론'이 횡행하고 있다. 무언가 위무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방송이 타깃이 된 것이다. ‘종편은 중장년층의 나꼼수였다’는 이들은 ‘못 보겠다, 직접 해보자’며 시민 성금 50억 원을 종자돈으로 ‘국민방송’을 해보자고 나섰다.

▲ 페이스북에 개설된 '국민TV' 추진을 위한 미디어협동조합 페이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 계획은 한 마디로 그냥 우스운 얘기다. 정권 교체의 꿈이 달성되지 않은 ‘멘붕’적 상황에서 넋두리나 하소연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무리가 없겠지만 그 이상의 현실적 추동력을 실제 내보려고 한다면 이는 ‘함께 망상을 꾸자’는 권유밖엔 안 된다.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내용적으로도 그러하며, 운동적으로도 그렇다.

현실적으로 제도 방송에 독자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더욱이 그 흐름이 정권에 대한 반대, 정치적 방향성을 바탕으로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1차적으론 비용의 문제이고, 순차적으로 제도의 승인 그리고 시장 논리에 적응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비용의 문제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이미 <미디어스>의 기사(링크)를 통해 짚어진 바 있는데, 50억으로 방송을 하겠다는 건 초등학교 주말 축구리그 선수들을 데리고 월드컵에 진출하겠단 수준의 얘기 밖에 안 된다.

제도의 승인은 더 복잡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제도의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일각에서는 시민방송 RTV를 인수한다거나 혹은 더 원대하게 박근혜 정부 하에서 MBC가 민영화 절차를 밟을 경우 이를 국민주 모금으로 인수한단 얘기까지 하는 모양인데 이는 그야말로 몰염치하거나 무식한 소리 밖에 안 된다. 시민방송 RTV 인수를 말하기에 앞서 그 방송이 어떻게 탄생했고, 왜 소멸되어 가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권한다. 그 과정에서 지금 ‘국민방송’을 말하고 있는 이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얼마나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걸 하지 않았으니 국민방송을 논할 자격이 없단 얘기가 아니라 앞선 실패에서 성찰을 하지 못한 채 덤빈다면 똑같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MBC 인수 운운은 말할 가치도 없다. 지금 좀 구겨져있더라도 MBC는 공영방송이고 행여 시장에 나온다 해도 방송사는 어디까지나 ‘산업’의 영역이다. 제도적 차원에서 공영방송 MBC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게 민영화된다면 누가 인수하더라도 재앙적 결과이다. 더욱이 시원치 않게 보여도 MBC는 미디어 산업 분야의 리딩 기업이다. 이걸 국민주로 인수하겠단 발상을 하고 노력을 모을 바엔 차라리 제련소를 열어 총칼을 만들고 청와대 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혁명을 하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 '국민TV'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우석훈 박사의 트위터 멘션.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걸 추진하는 사람들이 본인들의 ‘망상’을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단 점이다. 언론에 의해 선거에서 패배했단 주장의 당위적 결론으로 방송 건립 운동을 제안하고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안타까운 상황인데, 그에 앞서 대선 전에 언론운동 단체들에서 냈던 각종 보고서나 총괄적인 공약 사항들을 먼저 일독하길 권하고 싶다. 특히, 언론개혁시민연대에서 발행한 ‘나는 미디어 생태계 민주화 대통령입니다’ 공약 자료집을 권한다. 현재 언론이 처한 구조적 모순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망라되어 있다. 굳이, 방송을 직접 하잔 망상을 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들은 이미 도출되어 있다.

지상파 방송이 정치적 언급을 삼가며 특히 정권과 여당에 불리한 프레임을 작동시키지 않았단 비판은 타당하다. 여기에 별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고 봤던 종편 채널들이 중장년층의 ‘나꼼수’로 기능하며 스윙보터들에게 일말의 효과라도 발휘했단 분석도 인지적으로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간 과정을 단박에 생략한 채, ‘우리도 방송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더 큰 열패감의 길로 현재의 좌절감을 몰아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방송을 만들자는 건 당장 뜨거운 주장일 순 있지만, 끝내 적확한 주장일 순 없다.

이번 선거를 ‘방송이 결정했다’는 건 손쉬운 얘기지만 그만큼 검증이 되지 않는 환원적 수순으로 갈음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민주화가 한 판의 승부가 아니라면, 대선의 성패는 몇몇 방송사의 영향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권 교체’의 가치와 당위 외에 모든 것이 소외된 선거, 그래서 이상하리만큼 진영이 결집되었지만 끝내 패배하고 만 선거. 이 선거 뒤의 시민적 움직임과 흐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권 교체’를 외치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던 이들이 좀 더 성찰적으로 고민해주면 좋겠다.

박근혜 시대의 도래 이후 벌써 4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은 ‘깨어있는 시민’들로부터 고립됐고, 트위터 등 뉴미디어로부터도 ‘안정’을 찾지 못했다. 문재인의 패배를 곧 세상의 외면으로 받아들일 만큼 절박하고 위태로운 이들이 있다. 그런 삶들과의 연대, 거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망상’에 앞서, 함께 우선 살수는 있는 현실을 만드는 것으로 그렇게 발을 내딛어야 하지 않을까. 불과, 5년 전 그렇게 비웃었던 한나라당의 ‘방송 결정론’을 답습하며 불타는 복수심의 연대를 구축한들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힘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그나마 아까워서 그렇다. 옛 어른들 말씀이 용쓴다고 될 일이 아닌데 헛심 쓰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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