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지난 4월 3일 프레시안 대표로 전홍기혜 기자가 취임했다. 전홍기혜 대표는 프레시안의 첫 기자 출신 대표이며, 20년 만에 대표 교체로 세대교체의 상징성도 갖게 됐다. 2001년 공채 1기로 프레시안에 입사한 전홍기혜 대표는 정치, 사회, 경제, 국제 분야를 두루 취재했고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다.

프레시안이 출범한 2001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안 한국의 언론 지형은 격변이라 할 만큼 크게 달라졌다. 언론산업과 언론자유의 위기가 공공연히 거론되는 엄혹한 시기에 프레시안을 이끌게 된 전홍기혜 대표는 어떤 각오를 다졌을까. 지난 12일 전홍기혜 대표와 전화 연결해 프레시안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한국 언론의 상황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다음은 전홍기혜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프레시안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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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대표 취임하신 지 한 달 조금 더 지났는데 업무 파악은 완료하셨나요?

“공식 취임한 지는 한 달 됐는데 실질적으로 지난 연말부터 대표 대행을 했습니다. 프레시안이 20년 만에 대표가 바뀌었는데 계기가 크게 두 개예요. 저희가 2013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해서 올해가 딱 10년째 되는 해입니다. 어느 정도 내부 혁신이나 쇄신이 필요한 시기라 박인규 전임 대표가 지난해 가을부터 ‘이제는 너희들이 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준비를 당부했었어요. 그러다가 박인규 전 대표께서 연말에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교체 시기가 좀 앞당겨졌어요. 언론사 대표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걸 하루하루 깨달으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표 대행할 때와 취임 후 차이는?

“대표 대행할 때와 취임한 다음에는 물론 차이가 있죠. 책임감이 다릅니다. 대행할 때는 해당 업무만 했지만 지금은 제가 대표로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거잖아요”

그만큼 부담도 있겠네요?

“네. 한국에서 진보 성향의 독립언론이 살아남는다는 게 정말 쉽지 않잖아요. 제가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들에게 보낸 대표 취임 인사말에서 ‘챗GPT의 등장’에 대해서 말씀드렸어요. 그만큼 언론을 둘러싼 정치, 사회, 과학기술 등 외부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레시안이 돈이 많은 언론사가 아니잖아요. 돈이 없다는 것은 이런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기 힘들다는 의미라서 이런 상황들이 부담스럽죠.”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때는 언론사 대표가 될 거라곤 생각 못 하셨겠죠?

“그런 생각 전혀 안 했죠. 과거에는 정치인‧경제인 등 권력이나 돈 있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워서 근사한 직업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지식인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레기’라는 멸칭을 듣기도 하면서 장시간, 그리고 언제든 동원 돼야 하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직업이지요. 올해 제가 기자 생활 24년 차인데, 처음 기자가 됐을 때는 정의감에 불타는 여느 기자와 똑같았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로서 일해 보니 어때요?

“기자였을 때가 솔직히 더 좋았습니다.”

전홍기혜 프레시안 대표
전홍기혜 프레시안 대표

어떤 점에서요?

“기자는 자기 이름 걸고 일하는 직업인데, 자기 이름 빛나는 게 본인의 성취로만 끝나진 않거든요. 내가 쓴 기사를 통해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보람이 있는 직업입니다. 근데 대표가 되면서 직접적인 일을 통한 그런 보람을 느끼기 어려워졌죠.”

기자 생활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지만 두 개를 꼽고 싶어요. 먼저, 제가 오마이뉴스에서 인턴을 할 때 아동 성폭력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경찰 측은 피해 아동 어머니가 오해해서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 피해 아동의 심리 치료 등의 문제에 대해 기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2년쯤 지나 프레시안 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 그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민사 소송에서 이겼다고, 당시 제 기사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고맙다고 하셨죠.

또 하나는 ‘해외 입양’ 문제를 꼽고 싶습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국내 언론인 중에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심층적으로 취재를 한 언론인이거든요.”

해외 입양에 대해 심층 취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여성, 아동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해외 입양 문제는 처음 취재를 시작할 때는 저도 잘 모르고 있는 이슈였습니다. 한국은 현재와 같은 형태의 해외 입양 시스템을 만든 국가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인데 언론에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어요. 해외입양인들은 입양돼서 당사자들이 외국인이 되는 거죠. 한국말도 당연히 빼앗기고요. 이분들의 입양을 통해 발생한 문제들,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나 가족 찾기와 같은 정체성 문제에 대해 한국에서 답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2007년부터 취재하게 됐습니다.”

해외 입양 문제는 취재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려웠죠. 이 이슈가 이전에 보도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가족을 찾았거나 아니면 가족을 찾지 못해 고통 받거나, 아니면 입양인이 입양된 사회에서 크게 성공했다 등 대부분 개인적인 사연만 알려졌습니다. 궁극적으로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법적, 제도적, 인권적 차원의 접근은 굉장히 부족했습니다. 저는 그런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전문가와 입양인 당사자분들의 도움을 받아 취재하게 됐습니다.”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지 올해로 10년째라고 하셨는데, 그 10년에 대해 평가하신다면?

“프레시안은 규모가 큰 언론사에 비하면 빠르고 유연할 수 있어요. 협동조합 전환과 같은 과감한 도전도 그래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에 협동조합 전환하면서 시도한 것, 약속을 다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생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도 많습니다. 특히 투자와 관련해서는 정말 많은 애로사항이 있고 행정적인 절차도 까다롭고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시안은 유일한 전국 단위의 ‘협동조합 언론’이고, 이것은 프레시안의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대의원이 100명인데 매년 총회를 합니다. 과반이 참석해야 하는데 올해 총회에 70명 가까이 오셨어요. 총회 자리에서 매년 재무제표와 회사 운영 상황이 자세히 보고되고 승인받아요. 이렇게 독자와의 소통과 경영 투명성이 의무적으로 강제된다는 점은 협동조합 체제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3월 4일 열린 〈프레시안 협동조합 2023 정기총회〉 (사진 출처=프레시안 홈페이지)
지난 3월 4일 열린 〈프레시안 협동조합 2023 정기총회〉 (사진 출처=프레시안 홈페이지)

아쉬운 점은 뭐예요?

“저희가 협동조합 전환하면서 내세웠던 목표가 조합원과 후원회원 1만 명인데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후원회원이 줄었다고 알고 있거든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 합쳐서 4천 명인데요. 처음 전환했을 때 비해 줄었죠.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이 영향을 미쳤고, 또 한편으론 독자들이 언론에 후원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후원회원 제도가 주요 방편이었다면 지금은 슈퍼챗을 쏘는 등 마음에 드는 콘텐츠에 직접 돈을 보내는 후원이 더 익숙한 방식이 됐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후원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고민을 내부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 있을 것 같아요.

“후원방식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정해진 건 아직 없습니다. 다만 제가 대표 취임하고 나서 신임 편집국장, 경영국장 등 후배들과 진행한 첫 행사가 영화 <다음 소희> GV행사였어요. 이 영화의 바탕이 된 홍수연 양의 이야기를 프레시안이 가장 자세하게 보도했습니다. 정주리 감독도 당시 기자였는데 지금은 편집국장이 된 허환주 기자의 보도가 중요한 자료였다고 직접 말씀하기도 했어요. 기존에 프레시안에서 하던 행사에 비해 훨씬 대중적인 행사였고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이렇게 조금 더 젊은 프레시안, 외연이 확장된 프레시안을 만들고 싶습니다.”

영향력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원인을 뭐라고 진단하세요?

“일단은 언론 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창간할 때만 해도 인터넷 매체가 많이 없었는데 지금은 만 개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독자들이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해서 기사를 봤는데 지금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을 통해서 주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매체에 실린 기사인지 어느 기자가 쓴 기사인지 인지하면서 읽을 확률이 떨어집니다. 포털에서 무한경쟁을 하는 시스템인 셈이죠. 사실 기자들은 자기가 쓴 기사, 자기가 다루고 있는 이슈가 사회적으로 주목 받을 때 굉장히 힘이 나는데 언론 환경 자체가 이렇게 변하니까 선배 입장에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독려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최근 제가 뉴욕대 교수 스콧 갤러웨이가 쓴 『표류하는 세계』라는 책을 읽었는데, 2000년대 이후 페이스북‧구글‧유튜브 같은 플랫폼들이 주목받으면서 기존 언론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고 이 과정에서 저널리즘이 무너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기존 매체들의 광고 수익이 줄어들고 이것이 저널리스트들의 숫자 감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단순히 기자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시스템의 한 축으로서 언론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이런 변화가 프레시안같이 작은 매체, 또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매체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만 할 순 없을 텐데,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그렇죠. 그래서 내부적으로 이런 변화된 시대에 맞게, 프레시안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독자들과의 소통과 관련한 더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주최로 4월 18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다음 소희' 상영회가 열렸다. 상영회가 끝난 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고(故) 홍수연 양의 죽음을 취재했던 허환주 프레시안 편집국장과 영화를 만든 정주리 감독이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사회자(모더레이터)로 권해효 배우가 함께했다. ⓒ프레시안(이명선)
프레시안 주최로 4월 18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다음 소희' 상영회가 열렸다. 상영회가 끝난 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고(故) 홍수연 양의 죽음을 취재했던 허환주 프레시안 편집국장과 영화를 만든 정주리 감독이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사회자(모더레이터)로 권해효 배우가 함께했다. ⓒ프레시안(이명선)

최근 언론의 위기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현재 한국의 언론 상황은 어떻게 보세요?

“제가 2019년부터 작년 3월까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트럼프 정권 시기를 목격하고 취재했는데요. 그 내용을 정리해서 『아노크라시』라는 책을 쓰기도 했어요. 책 제목인 『아노크라시』는 민주주의와 독재 중간의 굉장히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로 몰려가 무장 난동을 벌인 사건인 ‘1.6 미 의회 폭동’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는 ‘아노크라시’ 상태에 빠졌다고 일부 정치학자들이 주장했어요.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절감한 사실은 언론의 편향성이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며, 상호 악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등장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죠. 푸틴, 시진핑, 보우소나루, 모디, 두테르테 등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불신을 넘어선 분노가 커졌고, 이를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악용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언론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로 오히려 양극화된 정치의 한 극단에 편승해 수익을 꾀하려는 유혹이 더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 대표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지 10년이 됐고 창간한 지는 23년 됐는데요. 어느 조직이나 시간이 지나면 현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유혹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프레시안도 새로워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표로서 프레시안 구성원들에게 우리를 돌아보면서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찾아보자고 얘기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 말씀 나눴던 주제 중 하나인 ‘정치적 양극화’, ‘언론의 양극화’로 인한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와 관련해 미국이 어떻게 가까스로 완전한 붕괴를 막았는가를 살펴보면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양심과 도덕을 지키면서 탈출했습니다. 트럼프가 미국 역사상 두 번 탄핵 소추된 대통령인데 첫 번째 탄핵 사건은 한 고위 공무원의 내부 고발이 단초가 됐어요. 위기일수록 언론이 언론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고 언론 윤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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