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쇠고기 파동이 재협상 국면에 이르기까지 광우병보다 오히려 현 정부의 무능에 훨씬 더 큰 공포감을 느낀다. 협상과정에선 실수가 꼬리를 물었고 내놓는 수습 대책마다 뒷북치기 일쑤였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출범 100일이다. 비슷한 혼란이 반복된다면 남은 4년 9개월이 암울하다"

경향신문의 사설일 법 하지만 오늘자(4일) 중앙일보 30면에 실린 사설 <재협상 국면, 책임지고 내각 총사퇴해야>의 일부분이다. 중앙은 쇠고기 파동을 지적하며 "이번 사태는 내각 전체가 책임질 일이다"며 "외교적 협정을 포기할 만큼 대책도 없고 무능했기 때문이며 국가적 망신이요 추태다"라고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중앙의 사설치고는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다. 이러한 중앙의 변화는 어제자(3일) 사설에서부터 조금씩 감지된다. 그러나 그간의 업적(?)을 무시할 수 없듯, 같은 면에 실린 사설조차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 중앙일보 6월 3일자 30면.
3일자 중앙일보는 30면 사설 <촛불시위 그만하면 충분하다>에서 "한 달여 동안 계속된 시위를 통해 시민들의 의사표시는 충분했다고 본다"면서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쇠고기 문제를 포함한 정국운영 전반에 걸친 종합대책을 마련 중인 것이 그 증거 아닌가"라면서 정부의 대책을 기다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구했다.

중앙은 이어지는 사설 <실패한 100일 인정하고 새 출발 하라>를 통해선 "사태의 근인(近因)은 쇠고기지만 원인은 정권의 신뢰 상실이다"면서 "새 정부가 신뢰만 있었어도 이런 파동은 없었을 것이고 일부가 진실을 왜곡하려 해도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협상 잘못을 보완하고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의 변화는 반가운 일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듯 같은 면에서조차 일관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한계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동아일보에서도 감지된다.

지난 2일 31면 사설 <쇠고기 촛불시위는 '6월 민주항쟁'이 아니다>를 통해 시민들의 거리 행진을 폄하했던 동아일보는 3일자 사설 <李 대통령, 지지율 22%앞에서 고뇌해야>에선 "정부가 한나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쇠고기 고시'의 관보 게재를 연기한 것은 잘한 일이다"며 "지금으로선 국민의 신뢰 회복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 동아일보 6월 3일자 31면.
조선일보도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사설 <청와대 코앞에 밀어닥친 시위대를 보면>에서 "정부가 불법 부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청와대 코앞 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밤새도록 시위를 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라고 했던 조선은 3일 <정부는 여기서 또 잘못하면 모두 물러날 각오해야>, <무역 피해 오더라도 쇠고기 재협상 논의하는 수밖에>를 통해선 사뭇 다른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은 무엇이 자신과 정권을 여기까지 밀려오게 한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겸허한 반성 위에서 국정 전환의 담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 국민이 원한다고 해도 그게 명백히 잘못된 것이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수 있으려면 위대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오늘자(4일) 조선은 더 나아가 31면 사설 <정부는 여기서 또 잘못하면 모두 물러날 각오해야>에서 "대통령 방미(訪美)에 맞춰 쇠고기 협상을 한꺼번에 타결 지은 잘못이 나라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며 "정부는 이번에도 잘못되면 정말 총퇴진한다는 각오로 나라 안과 밖에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조선일보 6월 4일자 31면.
조중동이 변하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오락가락' 헷갈리고 있다. 지난 월요일만 해도 촛불문화제의 '불법'을 운운하며 시민들의 거리 행진을 폄하했던 조중동이 이제는 관보 게재 연기를 칭찬하는가 하면 나아가 이명박 정부에 호된 꾸지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중동의 이런 변화가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의 결과인지, 연일 수 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조중동은 쓰레기"라 외치는 모습에 기가 눌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이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인지했다는 것이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은 국민들로 하여금 직접 촛불을 들고 시청으로, 청계천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 계기도 되었지만 나아가 국민들이 조중동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알아버린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조중동의 변화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며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조중동 너네도 언론이냐"라는 시민들의 호된 꾸짖음을 면키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할 듯싶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 와중에도 '제 버릇 남 못준다'를 또 한번 증명시킨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일 정부가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을 미국에 요청한 것과 관련 "국민이 걱정하고 다수의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당연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한미 쇠고기 협상은 과학적 근거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재협상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입장을 밝혔다.

▲ 조선일보 6월 4일자 1면.
이와 관련, 오늘자 조선은 4일 1면 <'30개월 이상 표시' 의견접근>에서 "물밑 협의를 진행 중인 양국 정부는 기존의 수입조건 합의문을 수정하는 정부 차원의 재협상이나 추가 협상을 하지 않는 대신 민간 업체들간 자율규제에 의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오늘자(4일) 조선의 보도가 어느 정도 방향이 어긋났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를 보도한 오늘자 일부 조간신문을 확인하는 것이다. 굳이 첨언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경향신문 <"한국민, 美쇠고기 더 배우길 희망">
국민일보 <이대통령 "30개월이상 수입중단 당연" 버시바우"재협상 불필요, 한국에 실망">
서울신문 <韓 '30개월이상'금지 요청 美 "재협상 필요성 못느껴">
한국일보 <美백악관 즉각 "우려"표명>
한겨레 <미 '30개월 이상 금지' 사실상 거부>

물론 조선일보가 '단독보도'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버시바우 주한미대사의 발언과 미 백악관의 기류 등을 감안하면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보도'일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다. 그래서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든다. 만약 조선일보의 보도를 미국이 확인했다면 한국의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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