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사전적 의미는 맨송맨송하다. 초에 불을 켜면 그게 바로 촛불이니 그럴 수 밖에.

그러나 광화문을 밝히는 오늘의 촛불이라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그것이 모이고 모였으니 그 의미는 더 커진다. 간헐적인 폭우에도 잦아들지 않으니 그 힘이 작아보이지 않는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잔바람이 멈춰선 곳에, 흔들리지만 꺼지지 않는 촛불이 피어오른다. 잔기침에도 몸을 움추리는 촛불의 떨림은 소망의 애절함을 더욱 깊게 한다. 광우병 소가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나락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 지난 3일 촛불집회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2만5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 미디어스
이 뿐이 아니다. 촛불에 리듬이 얹어지고, 박자가 더해지면 그 역시 간절함이 된다. 1978년 정태춘·박은옥이 부른 '촛불'은 소리를 높이지 않는 읊조림으로 아직 기억 속에 생생하다.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 사랑은 불빛 아래 흔들리며/ 내 마음 사로잡는데/ 차갑게 식지 않는 미련은/ 촛불처럼 타오르네/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하략)"

정태춘·박은옥의 주옥과 같은 노래 중에 유독 이 노래가 기억이 나는 이유는 시대를 넘어서도 당시의 간절한 기원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인 지 모른다.

1980년 발표한 조용필 2집 '촛불'('축복'이라고도 함)의 절절함은 가사에 마음이 동한 사람이라면 어떤 경우의 상황변인을 끼워다 맞춰도 다 말이 된다.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연약한 이 여인을 누구에게 말할까요/ 사랑의 촛불이여 여인의 눈물이여/ 너마저 꺼진다면 꺼진다면 꺼진다면/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연약한 이 여인을 누가 누가 누가 지키랴(후략)."

물론 광화문 거리의 촛불집회 현장을 떠올려도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1986년 히트곡인 이재성의 '촛불잔치'라고 다를 리 없다. 게다가 중간에 "부슬부슬 비마저 내리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라는 부문에선 하늘마저 미쳐버려 시도때도 없이 비가 오가는 오늘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이 오버랩된다.

"바람에 별이 떨어지고/ 어둠만이 밀려오면/ 지난날 아름답던 꿈들/ 슬픔으로 내게 다가와/ 행여나 발자국 소리에/ 창밖을 보며 지샌밤/ 내가슴 멍울지게 해도/ 나 그대 미워하진 않아/ 나의 작은 손에/ 초 하나 있어/ 이밤 불밝힐 수 있다면/ 나의 작은 마음에/ 초 하나 있어/ 이밤 기도할 수 있다면/ 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후략)"

역사적 책무에 아무 생각없는 줄 알았던 대중가요 '촛불'의 미묘한 분위기는 그 발표 시점을 놓고 보면, 소름이 돋는 것은 왜 일까. 정태춘·박은옥과 조용필의 '촛불'은 1979년 '서울의 봄', 이재성의 '촛불잔치'는 1987년 6월항쟁과 한해 차이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리듬에 실어 감정을 토해낸 '촛불가'는 시대의 아픔을 실어보낸 '진혼가'요, 시대를 예측한 '예지가'일지도 모를 일이다. 강산이 두세번 지난 오늘, 그 노래들을 간절히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리포터'보다는 '포터'가 더 많아 보이는 세상, '날나리'라는 조사가 붙더라도 '리포트'하려고 노력하는 연예기자 강석봉입니다. 조국통일에 이바지 하지는 못하더라도, 거짓말 하는 일부 연예인의 못된 버릇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보렵니다. 한가지 변명…댓글 중 '기사를 발로 쓰냐'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 데, 저 기사 손으로 씁니다.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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